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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작가 Nov 13. 2019

작가의 직업병 2

세상의 모든 활자가 나를 공격한다

"와, 저 프로그램 자막 쓰는 사람은 진짜 영혼을 갈아 넣은 게 분명해. 대단하다!"


언젠가 TV 보면서 그 프로그램의 엄청난 자막에 감탄하며 같이 보던 남편에게 말했더니 

"응? 무슨 자막? 뭐라고 썼는데?"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 TV 보는 거 아니었어? 저 쉴 새 없이 나오는 자막 말이야. 저거 쓰고 만들려면...."

"어, 그러고 보니 그렇네? 난 자막은 안 봐서 몰랐지."


그때 알았다. TV를 보면서 자막을 보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게다가 나처럼 '읽는' 수준으로 자막을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니, 어떻게  TV를 보는데 화면에 보이는 글자를 읽지 않을 수 있단 말이지? 오히려 사람들은 누가 자막을 다 읽냐고 내게 반문했다. 




자막은 하나의 예이긴 하지만 작가의 직업병 중 하나는 활자에 대한 집착이다. TV 자막을 거의 모두 읽듯이 모든 글자를 읽게 된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버스 노선도에서, 지하철 다음 역을 알리는 전광판에 붙은 광고는 물론이요 엘리베이터 구석에 어느 꼬마가 써놓은 삐뚠 낙서까지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글자를 읽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아니라 글자를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도 모르게 오자와 탈자를 알아보는 기능까지 탑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기능이 스위치 온 되는 순간 세상의 모든 글자에게 공격받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아무도 못 알아보는 틀린 글자가 내 눈에만 유난히 크게 박힐 때, 띄어쓰기가 틀린 단어를 발견했을 때 견딜 수 없어진다. 


-친구야 오랜만이야. 시간이 금새 가 버렸네.


오랜만에 문자를 보낸 반가운 친구에게 반갑다는 말 대신 


-친구야, 금새가 아니라 '금세'가 맞는 말이란다.


라고 답장을 쓰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든다면 정상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직업'병'이다.)




"저 사람 아까는 35세로 나오더니 방금은 또 32세로 나오네?"


TV자막의 오류를 또 발견해 내고 마는 나에게 여전히 남편은 심드렁하다.


"그랬나? 35세든, 32세든 뭐가 중요해."


그래,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닌데 나는 매우 궁금해지는 것이다. 저 사람이 과연 진짜 몇 살인지. 32세가 맞는지, 35세가 맞는지. 그리고 나는 안다.  분명 지금쯤 저 팀 작가는 방금 자막 오류를 발견했으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것이다.  제발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기를. 그가 정확히 몇 살인지 궁금해하지 않기를 말이다. 


그런데 미안, 내가 발견했어. 우리는 자막을 읽는 병을 가진 사람이잖아.  



덧. 오탈자를 잘 찾아낸다고 내가 완벽한 쓰기를 하는 사람은 아닙... 니... 다.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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