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엄마의 딸은 국어를 싫어한다
대학생일 때, 엄마의 친구가 아들 과외 선생을 구한다며 나에게 소개를 부탁했다. 수학 선생을 구했기 때문에 내가 할 수는 없었고, 하고 싶어도 조건에 맞지가 않았다.
서울대생일 것.
이과 전공생이어야 할 것.
조건에 맞는 친구가 다행히 한 명 있었는데 서울대생이었을 뿐만 아니라 과학고 출신의 수학 영재인 친구였다.(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다.) 엄마 친구의 조건에 백 퍼센트 부합했기 때문에 구하는 사람이나 구해준 사람이나 만족스러운 구인이었다. 아마 서울대 프리미엄에 내 친구 프리미엄으로 과외비도 넉넉히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잊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나서 엄마에게 그 친구분 아들은 과외받고 성적 좀 올랐냐고 물었다.
"애가 과외받는데 엄청 힘들어 한대."
"왜? 숙제라도 엄청 내주나 보지?"
"그게 아니라 애가 수학을 못하는 걸 이해하지 못한대. 왜 이걸 모르냐고 한대."
"하하하! 당연하지! 걔는 수학을 못해본 적이 없는 앤데."
엄마 친구는 수학을 못하는 아들에게 최고의 과외 선생을 붙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수학으로 난다 긴다 하는 대학생을 과외 선생으로 고용하면 아들도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과 많이 달랐나 보다.
태어나서 한 번도 수학을 못해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영재 소리 들으며 살아온 내 친구에게 <수학의 정석> 같이 기본 중에 기본(?)인 책을 공부하면서 그것도 이해 못하는 것이 이해될 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후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오래되어서 잊어버렸지만 이 일은 두고두고 써먹는 웃긴 얘기 에피소드가 되었다.
이 에피소드가 다시 생각난 이유가 있다.
얼마 전 14살 딸이 소설을 썼다며 나에게 보여주었다. 한 바닥짜리 소설이었는데 생각보다 전개가 있고 심지어 주제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그런 소설이었다. 읽으면서 속으로는 꽤 감탄했지만 내가 한 말은 이런 것이었다.
"시작은 좋았는데 끝이 흐지부지네." (처음 쓴 건데 당연하지)
"여기서는 문단을 바꿔야지." (아아 문단이 거기서 왜 나와)
"그리고 이 맞춤법 뭐야? 중학생이 이런 걸 틀리다니." (제발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어)
듣고 있던 딸이 소설을 뺏어 들고는
"아! 내가 왜 엄마한테 이걸 보여줬지?"
당황한 나는
"아니, 잘 썼어! 잘 썼는데 그것만 좀 고치면..."
뒷말은 딸의 방문 소리에 묻혀 들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때때로 엄마가 작가라서 아이가 글을 잘 쓰지 않겠냐, 책은 많이 읽었겠다 얘기를 많이 한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전혀 아니다. 백 퍼센트 문과인 나와는 다르게 딸은 '이과적 아이'다. 수학을 좋아하고 국어와 영어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내 딸일 줄이야.
그래서 아이가 글자를 읽기 싫어하고 맞춤법을 틀릴 때, 책을 읽고도 주인공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때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왜 이런 걸 몰라?
그때 그 서울대생 과외 선생이 생각났다. 그렇게 보면 나도 좋은 선생은 아닌 게 분명하다.
내가 '문과적 아이'를 키운다면 달라졌을까. 어쩌면 수학을 못하는 게 불안해서 서울대생 수학 과외 선생을 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맞춤법 좀 틀리면 어때, 무려 소설을 써서 나에게 보여준 딸인데. (다시는 보여주지 않겠지.)
학생이 수학의 정석을 모르는 게 답답했던 그 친구는 혹시나 문과적 아이를 키우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만 해도 웃기다)
수년간 웃기는 에피소드였던 일이 깨달음을 주다니.
모든 게 내 일이 되어야 알게 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