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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작가 May 11. 2020

고양이 집사의 현(실 자각) 타(임)

고양이가 나를 피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불안한 마음이 든다.  

제발 이 아침이 오지 않기를 어젯밤 잠들기 전 빌었는데, 또다시 아침이라니. 

아아 오늘 아침을 어떻게 시작한단 말인가. 

나의 우울한 하루가 또 시작된다.  


내 불안과 우울의 원인은 우리 집 고양이다.

며칠 침을 흘리며 밥을 잘 안 먹어 내 걱정을 사더니 결국 구내염이 재발된 우리 집 고양이 앰버. 고양이에게 구내염은 흔한 질병이기도 하지만 잘 낫지 않고 자주 재발해 집사들을 애태우는 병이다.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집으로 오는 길, 아픈 고양이와 함께 나도 조금씩 병이 들기 시작했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과연 이 난관을 잘 극복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밀려왔다. 


나를 두려움으로 몰고 가는 그것, 고양이에게 약 먹이기이다.



고양이에게 약을 먹이는 것은 대체로 쉽지 않아서 간식에 섞어서 먹이는 것 같은 평범한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눈치 빠른 녀석들은 냄새만 맡고도 약이 섞인 건지 다 알아내고 나중에는 약을 섞지 않아도 그 간식을 절대 먹지 않는다. 고양이 약 먹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입을 벌려서 재빨리 캡슐을 목구멍 가까이 밀어 넣는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어렵지만 익숙해지면 제일 간단하고도 쉬운 방법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절대 익숙해지지 않고 쉽지도 않은 일이 바로 그 방법이다. 녀석을 잡고 입을 벌리기까지도 쉬운 일이 아닌데 어떻게 캡슐을 입안으로 (그것도 목구멍 가까이) 밀어 넣을 수 있는지. 

입을 벌리는 데까지는 여러 번 성공했지만 약을 깊게 넣지 못해 고양이는 순식간에 퉤! 하고 뱉어 버리고는 손이 닿지 않는 소파 밑으로 도망가 버리고 만다. 


고양이가 도망간 후 남은 건 녀석의 빠진 털과 난장판이 된 거실 바닥, 그리고 녀석이 발버둥 치며 할퀴어서 상처 투성이가 된 내 손과 팔 뿐이다. 그 와중에 녀석의 침에 녹아 흐물거리는 캡슐을 주워다가 다시 먹이려고 말리고 있노라면 현타가 오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가!




약 먹이기 전쟁이 실패로 끝나고 난 후 만 12시간이 지나도록 고양이는 소파 밑에서 나오지 않았다. 혹시나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몇 번씩이나 엎드려서 소파 밑을 들여다보았다. 그럴 때마다 녀석은 움찔하며 벽 쪽으로 더 몸을 바짝 붙였다. 


야, 누가 보면 내가 너 잡으로 온 사냥꾼인 줄 알겠다!


이쯤 되면 저 말 못 하는 고양이 녀석에게 인간적으로 서운함이 든다. 나 좋다고 매일 쫓아다닐 때는 언제고 내가 약 먹이느라 좀 잡았다고 나를 피하다니. 내가 다 너 아프지 말라고 그러는 건데...... 그만 마음이 상해서 에라 모르겠다 나도 방으로 들어가 자려고 누웠다. 


"당신이 들어가니까 앰버가 나와서 밥도 먹고, 볼일도 봤어."


뒤늦게 들어온 남편이 누우며 말한다. 

세상에! 이런 배은망덕한 고양이를 봤나! 내가 들어가기만을 기다렸단 말이야? 나는 종일 걱정했는데!

울분이 나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이건 거의 자식 잘 되라고 뒷바라지했더니 부잣집 여자한테 홀랑 넘어가서 가난한 엄마 배신하는 아들을 둔 심정이랄까? (앰버는 사실 암컷이지만)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며 누워 잠을 청한다. 

그래, 이 위기만 지나면 다시 너는 나를 좋아하게 될 거야. 분명히.


그런데, 그런데 내일은 어떻게 약을 먹이지?

아아 내일이 오지 않기를. 

이 밤이 그냥 계속되기를.


아픈 고양이가 내 하루를 지배하는 나날. 

내 우울과 불안이 녀석의 아픔과 함께 짙어진다는 걸 아무도 모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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