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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작가 May 15. 2020

아빠와 밥

아빠의 슬픔은 엄마의 밥이었다

엄마가 떠나고 혼자 남은 아빠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내게 밥통을 사 오라고 시킨 것이었다. 장례식을 끝낸 후, 이 기분이 슬픔인지 피곤인지 분간도 안 되는 그 황망한 때에 느닷없이 꺼낸 말이 '밥통'이라니. 

솔직히 그 순간 아빠가 미웠다. 


엄마는 병이 발견된 지 겨우 40일 만에 떠났다. 가벼운 폐렴이라고 오진했던 유명 대학병원 교수는 항생제와 기침약을 처방했지만 폐의 하얀 점들은 염증이 아니라 췌장암이 폐로 전이된 것이었다. 폐렴인 줄 알고 병원에 입원했던 엄마는 퇴원하지 못하고 그렇게 떠났다. 

엄마의 병명을 처음 알았을 때 아빠의 첫마디는 이제 나 어떻게 사냐,였다. 그 말이 내게는 앞으로 홀아비가 될지도 모를 자신의 처지를 걱정하는 것처럼 들렸다.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아내를 두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자신의 안위라니. 물론 아빠의 마음이 그게 전부가 아님을 알면서도 아빠가 미웠다. 


아빠가 밥통을 사 오라고 한 것은 집에 전기밥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누르기만 하면 밥이 되는 전기밥솥을 쓰지 않았다. 밥이 되는 동안 딸랑딸랑 추가 울리는 압력 밥솥으로 밥을 했다. 그것도 한 끼에 맞는 양만 했기 때문에 엄마에겐 딱히 전기밥솥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엄마는 없었고 아빠가 압력밥솥으로 밥을 해 먹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빠에겐 밥통이 필요했다. 쌀을 씻어 넣고 누르기만 하면 저절로 밥이 되는 그런 밥통 말이다. 


아빠를 위해 내가 고른 밥통은 3인용 전기 압력 밥솥이었다. 혼자 밥을 해먹을 아빠에게 고급 기능이 많은 밥통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IH니, 무쇠내솥이니 하는 최신형 스펙도 밥맛에 큰 차이를 둘 것 같지 않았다. 그저 아빠에게는 밥을 해줄 엄마 대신 누르기만 하면 밥이 되는 밥통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전기밥솥은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다. 그깟 밥을 하는데 뭐 이리 비쌀까, 밥에 맛이라는 것이 과연 있는 걸까. 무엇보다 엄마를 잃은 딸에게 고작 밥통을 사 오라고 시킨 아빠가 미워서 나는 대충 골라서 사다주었다.


"밥이 너무 푸석푸석하다."

"하루만 지나도 밥에서 냄새가 난다."

"쌀이 안 좋은지 밥통이 안 좋은지 모르겠다."

"밥맛이 너무 안 좋다."


아빠는 내가 밥통을 사다 드린 후 나만 보면 새 밥통으로 한 밥이 입에 맞지 않는다며 불평을 했다. 어제는 질어서 싫고, 오늘은 되어서 싫다고 했다. 또 저녁에 해놓은 밥을 아침에 먹으려고 하면 냄새가 나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혹시 밥통의 문제인가 싶어 AS 기사를 불러 수리를 요청했다. 


"고객님, 밥솥에는 크게 문제가 없습니다. 온도 유지도 잘 되고 있고 기능에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AS기사는 이런저런 테스트를 해보더니 제품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밥이 질면 표준량보다 물을 적게 넣고 냄새가 나면 밥을 너무 오래 보온해두지 말고 바로 먹으라는, 누구나 다 아는 방법을 말해주었다. 이상 없는 제품에 불만을 토로하는 고객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처였을 것이다. 


"우리 애들 엄마가 밥을 해줄 때는 그런 걸 전혀 못 느꼈는데 그럼 밥통이 잘못된 거 아니오? 어떻게 밥이 몇 시간만 지나면 냄새가 나. 내가 밥을 잘 못해서 그런 거란 말이오?"


아빠는 AS기사를 다그치며 따졌다. 옆에 있던 내가 괜히 무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럼 사모님은 어디에 밥을 하셨나요?"


AS기사의 질문에 아빠가 갑자기 싱크대 찬장을 열어 엄마가 쓰던 압력솥을 꺼냈다. 


"이거, 이걸로 밥을 했지. 여기에 하면 밥이 윤기가 흐르고, 밥 냄새가 얼마나 구수했다고. 반찬이 없어도 밥맛으로 밥을 먹을 정도로 맛있었는데......"

"아빠, 그만 하세요! 기사님한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당황한 내가 아빠를 말리자 아빠는 엄마의 압력밥솥을 손으로 쓸며 마지막 말을 중얼거렸다.


"미안합니다. 집사람이 얼마 전에 하늘나라로 갔어요."


이후에도 아빠의 밥에 대한 집착은 계속되었다. 밥통에 대한 불만을 계속 토로하는 통에 참을 수 없어진 나는 햇반을 사다 드렸다. 전자레인지에 2분만 돌리면 갓 지은 밥맛이 난다고 하니 차라리 이걸 드시라며 데우는 방법도 알려드렸다. 


"밥에서 냄새가 나서 못 먹겠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빠는 햇반을 두어 번 드시더니 밥에서 냄새가 난다고 했다. 짜증이 난 내가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러냐며 목소리를 높이자 아빠가 또 중얼거렸다.


"이런 밥을 데워 먹는 내 처지가 슬프다."


어디에선가 들은 얘기로는 아내를 잃고 혼자된 남자가 가장 상실감을 느낄 때가 아무도 없는 불 꺼진 집에 들어설 때라고 한다. 퇴근 후 현관에 들어서면 막 지은 밥 냄새와 음식을 준비하느라 도마에 칼질하는 소리가 환청으로 들린다고 했다.

아빠도 엄마와 함께 했던 40년 간 그런 소리와 냄새를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다. 매일 다른 찌개와 국을 끓이고 압력밥솥에 밥을 지었던 엄마. 딸랑딸랑 추가 돌아가면 밥이 되는 구수한 냄새가 집안에 가득 퍼졌다. 진밥을 싫어하는 아빠를 위해 고슬고슬한 밥을 하기에는 그 구식 압력밥솥이 적당했을 것이다. 

때때로 밥솥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지가 생길 때면 엄마는 주걱으로 적당히 굳은 누룽지를 긁어내어 접시에 담아두었다. 이미 저녁으로 배가 불렀지만 우리 가족들은 식탁을 지나며 누룽지를 하나씩 집어 먹었다. 딱딱해진 누룽지를 입안에서 오래도록 씹으며 맛보았던 눌은밥의 고소함과 달콤함. 엄마의 부엌을 보기만 해도 그 냄새와 맛이 저절로 떠올랐다.  


아빠도 그렇게 매일 불 꺼진 집에 들어서며 엄마의 부엌 환청을 들었을까. 

아빠에게 아내의 부재는 제대로 된 밥의 부재와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밥맛을 따지는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깟 밥이 뭐라고 아내를 떠난 보낸 슬픔보다 맛있는 밥 한 끼가 본인에겐 그렇게도 중요하단 말인가. 엄마의 병명을 들으며 오히려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던 그때처럼 아빠가 미웠다. 차라리 엄마를 떠나보낸 충격과 슬픔에 입맛을 잃고 시름시름 앓았다면 아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빠, 이제 엄마가 해주던 그런 밥은 먹을 수 없어요. 내가 해도 엄마처럼 그렇게 못해요. 이제 그만 적응하셔야해요. 엄마는 이제 없잖아요."

"그래...... 엄마는 이제 없지......"


내 말에 아빠가 고개를 끄덕이며 울었다.  답답해서 짜증을 내며 말했지만 아빠의 눈물을 보자 순간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를 잃은 일흔의 아빠. 느닷없는 밥맛 타령으로 자식들을 힘들게 하던 아빠의 그 모든 불평불만은 슬픔의 다른 표현이었지도 모른다. 40년간 먹으며 익숙해진 아내의 밥맛을 찾았던 건 그 부재를 부정하고 싶은 아빠의 그리움이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슬픔이 옅어져 그리움마저 희미해질까 봐 아빠는 아이처럼 그 밥을 찾았을까. 가끔 엄마의 밥이 먹고 싶은 날이면 나도 모르게 아빠의 눈물이 같이 떠오른다. 이제 아빠의 밥타령은 줄었지만 당신의 그리움은 줄지 않았음을 알기 때문이다.  

구수하고 달콤했던 엄마의 밥. 하지만 이제 내게 엄마의 밥은 아빠의 눈물을 더해 영원히 소화되지 않을 먹먹함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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