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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작가 Jul 27. 2020

1일 1쉐이크쉑

모스크바의 아이러니한 맛

한국에 쉐이크쉑(shake shack) 버거가 처음 들어왔을 때 사람들이 햄버거 한번 먹어보겠다고 줄을 몇 시간씩 섰던 적이 있었다. 당시 햄버거 가게 앞에 줄 선 풍경이 뉴스에서 나올 만큼 화제가 되었는데 햄버거가 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줄까지 서면서 먹을까, 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거기까지 갈 일은 없어 먹을 일은 없겠구나 했다. 

그런데 그 쉐이크쉑 햄버거를 다른 데도 아닌 모스크바에서 만났다. 


아르바트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딱 마주친 쉐이크쉑 버거 매장은 참 아이러니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지금이 냉전 시대는 아니지만 미국 뉴욕에서 온 햄버거를 다른 곳도 아닌 모스크바에서 먹는다는 게 어쩐지 좀 비현실적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줄까지 서서 먹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는 곳인데 여기는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안 그래도 얼마나 맛있는지 궁금했는데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엄마, 너무 맛있어!”


아이가 햄버거 하나를 뚝딱 해치우며 연신 맛있다고 했다. 치즈가 잔뜩 올라간 감자튀김에 밀크셰이크까지 먹어가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렇게 맛있어? 사실 나는 엄청 기대했기 때문인지 맛은 있지만 줄까지 서서 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아니었나 보다. 

하긴 이제껏 맥도널드 치즈버거만 먹어본 9살 아이에겐 인생 최고의 햄버거가 될 수밖에.


“우리 내일도 또 오자.”

“그렇게 맛있었어? 그래, 또 먹자.”


사실 지나가는 말로 한 약속이었는데 아이는 정말 다음 날에도 쉐이크쉑 버거를 먹고 싶다고  했다. 

한두 번이 아니라 진짜 하루 한 끼는 쉐이크쉑 버거를 먹을 정도로 매일 먹자고 졸랐다. 

그때 우리가 묵었던 집도 쉐이크쉑 버거 매장이 있던 아르바트 거리에 있었다. 

하지만 2㎞ 정도 되는 아르바트 길 양 끝에 서로 위치했다. 

게다가 아르바트 거리는 보행자 전용으로 차가 다니지 않는 거리. 

집에 있다가 갑자기 쉐이크쉑 버거가 먹고 싶다고 하면 왕복 4㎞를 걸어서 갔다 와야 했다.


“오늘은 먹지 말자. 내일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먹자.”

“나는 지금 먹고 싶은데. 엄마 먹자, 응?”


평소 입이 짧아서 뭘 먹고 싶다고 한 적이 없는 아이가 이러니 뿌리치기가 어려웠다. 

그래, 먹고 싶으면 먹어야지. 

그래서 우린 모스크바에서 쉐이크쉑 버거를 처음 봤던 그날부터 매일 한 끼는 쉐이크쉑 버거를 먹었다. 

밖에 있을 때는 일부러 그곳을 지나가며 먹고, 또 집에 있을 때도 왕복 4㎞를 걷는 것을 감수하고 먹었다. 

육즙 가득한 패티와 콜라도 아닌 밀크셰이크와 먹었던 감자튀김의 폭탄 칼로리가 왕복 4㎞를 걸을 수 있게 하던 에너지였으려나. 


“엄마, 이거 한국에도 있어?”

“있긴 있는데 한국 가면 못 먹을 거야. 그러니까 여기서 많이 먹어.”


정말 우리는 여행을 다녀온 이후 한 번도 쉐이크쉑 버거를 먹지 못했다. 

이젠 매장도 많이 생기고 줄 서서 먹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왠지 우리에게 쉐이크쉑 버거는 모스크바에서 먹어야 하는 음식처럼 느껴진다. 쉐이크쉑 버거 하면 모스크바가 떠오르는 아이러니한 추억


그래서 아이는 가끔 이런 농담을 내게 하곤 한다.


“엄마, 우린 쉐이크쉑 버거 먹으러 러시아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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