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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작가 Jul 24. 2020

러시아의 땅부자 할아버지

톨스토이는 금수저였답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출발해 2시간을 내리 달려 '야스나야 폴랴나'에 도착했다. 

도심을 벗어나기만 해도 숲과 목가적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 러시아의 매력. 더군다나 야스나야 폴랴나는 단순히 톨스토이의 집만 있는 게 아니라 ‘영지’인 만큼 톨스토이 집안의 여러 건물들과 정원, 과수원, 연못 등이 있다. 그래서 야스나야 폴랴나는 이제까지 갔던 많은 박물관과는 다르게 작가의 역사와 발자취를 보는 것은 물론 경치 좋은 야외로 나들이를 간 듯한 느낌을 준다.


“영어 가이드 투어는 예약해야 하나 봐. 러시아어 가이드 투어로 가자. 내가 듣고 알려줄게.”


영지 내에 있는 정원은 그냥 둘러봐도 되지만 톨스토이 박물관은 가이드 투어로만 들어갈 수 있었다. 어차피 영어로 들어도 완벽히 못 알아들었을 텐데 능력자 친구가 통역을 해준다고 하니 개인 가이드가 생긴 것 같다. 역시 친구 하나는 잘 뒀다.


야스나야 폴랴나의 문으로 들어서면 이곳의 상징과 같은 자작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높게 자란 자작나무 끝에 파란 하늘이 걸려 있고 바람은 시원하게 불어왔다. 그 길을 지나면 넓은 영지에 톨스토이의 생가와 외증조부의 집, 과수원, 동네 아이들을 위해 만들었던 학교, 마구간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 풍경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워서 여기에서 살면 글이 저절로 써지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톨스토이는 태어나서 결혼하고 약 50년을 이곳에서 살면서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표작을 썼다고 한다. 


톨스토이 박물관 내부에는 그의 개인 물건과 가구, 책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잘 관리되고 운영되고 있는 박물관을 보니 러시아 사람들이 작가에 대한 자부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심지어 투어를 해주던 가이드도 설명을 해줄 때 말투와 태도에서 톨스토이에 대한 자부심이 흘러넘쳤다. 

러시아어를 모르는 나도 그게 느껴질 정도였다. 


“저 가이드 톨스토이 손녀라도 되나?”

“그건 아닐걸? 왜?”

“저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이 장난 아닌데? 훌륭하고 위대하신 우리 톨스토이 작가님께서는... 이러는 거 같아.”

“맞아. 그렇게 말하고 있어. 어떻게 알았어?”


그래, 인정이다. 그 누구도 아닌 톨스토이니까. 

말로만 들었던 작가의 자취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건 참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마치 글을 쓰다가 방금 산책을 나간 것처럼 잘 보존된 그의 서재를 보고 나면 더 이상 그를 먼 옛날의 남의 나라 작가로만 생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투어 내내 러시아어 통역을 내 귀에 속삭여준 친구 덕분에 알찬 관람을 할 수 있었다. 나도 친구가 통역해주면 윤이 알아듣기 쉽게 요약해서 전해주었다. 톨스토이가 아직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지만 언젠가 톨스토이를 알게 되었을 때 여기에서 보고 들은 것 중 하나라도 기억해주길 바랐기 때문이다. 


“톨스토이가 살던 곳에 와보니까 어때?”

“톨스토이 부자야?”


소감을 물었는데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아이.


“그건 왜?”

“여기가 다 톨스토이 땅이면 엄청 부자잖아.”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말에 웃음이 터졌는데 친구가 친절하게 보충 설명을 해준다. 


“부자 맞아. 원래 톨스토이 외할아버지가 부자였는데 다 물려받아서 톨스토이도 부자였어. 똑똑하네.”


박물관 가이드마저 자부심에 콧대 높였던 국민 작가 톨스토이. 

그러나 9살에 아이에겐 러시아 땅 부자 할아버지로 기억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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