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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작가 Jul 23. 2020

여행 가서 동물원 가본 사람

내가 너를 위해 동물원에도 갔잖아!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급격하게 떨어진 아이의 체력은 좀처럼 빨리 회복되지 않았다. 

조금만 걸어도 힘들다고 투덜대고,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언제 들어갈 거냐고 물어서 나를 기운 빠지게 했다. 뭐라도 잘 먹어야 기운이 날 것 같아 식사 메뉴는 아이에게 맞춰주었다. 하지만 이것저것 시켜놓고 한입 먹어보고 입에 안 맞으면 더는 먹지 않았다. 그럼 남은 음식들은 내가 다 먹어야 했다. 

안 먹는 아이가 걱정되다가도 남은 걸 꾸역꾸역 먹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화가 났다.


“조금만 더 먹어 봐. 응?”


세 번만 더, 두 번만 더, 그것도 싫으면 제발 한 번만 더 먹어보라고 사정해보지만 아이는 제 입에 맞지 않으면 절대 먹으려 하지 않았다.


“이렇게 안 먹고 어떡하려고 그래? 그러다 쓰러지면 어쩔래? 러시아 병원에 실려 갈 거야?”


참다못해 버럭 화를 내면 아이는 마지못해 먹는 시늉을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엄마, 배가 아파서 못 먹겠어.”


이제는 배가 아파서 못 먹겠다고 핑계를 댔다. 

러시아 병원에 실려 갈지도 모른다는 엄마의 협박도 아이의 떨어진 입맛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우리의 여행을 이렇게 축 처진 채 이어갈 수는 없었다. 

아이의 기운을 올려줄 무엇, 저절로 식욕이 돋을 만한 그 무엇을 생각해내야 했다.


“우리 동물원 갈래?”

“동물원? 좋아! 갈래!”


아이가 오랜만에 눈을 반짝였다. 

사실 여행 오기 전부터 모스크바 동물원을 염두에 두고 있긴 했다. 꼭 가보려고 했던 건 아니었고 여행 중에 혹시라도 아이가 흥미를 잃거나 하면 써먹으려고 했던 옵션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가게 될 줄이야. 

동물원에 가는 날 아침, 아이는 모처럼 일찍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모스크바 동물원에는 어떤 동물들이 있는지 에버랜드처럼 놀이기구도 있는지 질문을 해대며 설렘을 감추지 않았다. 

어제까지 입맛도, 기운도 없던 그 아이 맞나 싶게 아침부터 수선을 피웠다. 

그깟 동물원이 뭐라고.




동물원엔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 아이들을 데리고 온 어른들. 아마 외국인은 우리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긴 여행 와서 동물원에 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나도 이전에는 여행지의 동물원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어린이는 입장료 무료.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시내 한가운데 있는 동물원이 어찌나 넓은지 동물 하나 보러 가려면 한참을 걸어야 했다. 표지판에는 코끼리도 있고, 사자도 있다고 하는데 날이 더워서 그런가 걸어도 걸어도 사자는 보이지 않고 새와 원숭이만 보였다. 

그런데도 아이는 신나서 뛰듯이 걸었다. 밖에만 나오면 다리가 아프다던 그 애가 맞나 싶게 잠시도 쉬지 않고 걸었다. 도리어 다리가 아픈 건 나였다. 동물원의 역사가 150년이 넘었다는 게 약간 흥미로울 뿐, 새나 원숭이를 보는 게 전혀 재밌지 않았다.


“우리 잠깐만 앉았다 가자.”

“저기 가면 곰 있대. 빨리 가자.”


잠시 쉬는 것도 못 참고 보채는 아이에게 솜사탕 하나를 들려주고서야 겨우 앉을 수 있었다. 

솜사탕을 다 먹을 때까지가 나의 휴식 시간이다. 

다행이라면 솜사탕이 아이 키의 절반은 될 것 같은 대륙 스케일이었다. 아이고, 다리야. 


“동물원 오니까 좋아?”

“응. 재밌어.”


진심이 가득 담긴 아이의 대답을 들으니 조금 미안해졌다. 

그동안 나 따라다니며 박물관이나 성당 다니는 게 얼마나 재미없었을까? 지금 딱 내 심정과 같겠지? 

그동안 툭하면 다리 아프다, 언제 갈 거냐 하던 아이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알겠다. 


왜 즐거운 여행을 하지 않느냐고 다그친 내가 미안했다. 


그게 하란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미처 몰랐다. 너는 아마 지금 가장 즐거운 여행을 하는 중이겠지?

하지만 이놈의 동물원은 하루에 다 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가도 가도 끝없이 나오는 동물들에 지치고야 말았다.


“우리 이제 그만 갈까? 엄마 너무 힘들다.”

“싫어!”


단호하게 싫다고 하는 아이에게 조금 화가 났지만 오늘은 참기로 한다. 

오늘 동물원은 앞으로 남은 ‘재미없는’ 여행에 대한 보험이니까. 


내가 너를 위해 동물원에도 갔잖아! 


아마도 이 말은 여행 내내 써먹을 주문이 될 것이다. 

치사해도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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