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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작가 Aug 07. 2020

책 읽는 남자

그에게 애틋한 마음이 생겼다

크라쿠프에서 다시 바르샤바로 가는 기차가 막 출발하려고 할 때, 서너 명의 남자가 기차에 탔다.

우리 뒷자리에 앉은 이들은 자기 몸만큼이나 큰 배낭을 메고 있는 게 여행자들인 게 분명했다.

땀 냄새를 풀풀 풍기며 가방을 올리고 내리며 떠들썩한 남자들. 20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수염을 기르고 꾀죄죄한 행색이었지만 그 또래 아이들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런 젊은 친구들을 볼 때면 나는 어쩐지 애틋한 마음이 들곤 한다.




예전에 스위스 여행을 할 때, 마터호른 전망대에서 나와 친구들은 커피값도 아까워서 해가 드는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런 우리에게 어떤 한국인 부부가 커피도 아닌 점심을 사주셨다.

이유는 그냥 ‘자식 같아서’였다.

그때는 생각지도 못한 공짜 점심이 횡재 맞은 것처럼 좋았을 뿐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 그분들이 말했던 ‘자식 같아서’가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커피값을 아끼는 우리가 안쓰럽다기보다는 우리를 격려하는 한편 그들의 지난 젊은 날에 대한 보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그분들만큼 나이가 든 건 아니지만, 아이와 함께 여행을 다니다 수없이 마주치는 젊은 여행자들에서 나는 나의 지난날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내 아이의 미래를 그들에서 보곤 한다. 괜히 가서 말을 걸고 싶거나 커피 한잔쯤 사주며 여행 잘해,라고 말하고 싶은 이 애틋한 마음이 스위스에서 만난 그분들의 마음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수선스럽게 자리를 정리하던 남자들이 기차가 출발하자 곧 조용해졌다.

다들 잠이라도 든 걸까 살짝 뒤를 돌아보니 세상에! 그들모두 책을 읽고 있었다. 거지꼴을 하고 기차에 타서는 책을 읽는 남자들이라니. 저 배낭에 책을 넣고 다니는 거야?

나는 갑자기 그들이 무슨 책을 읽는지 너무 궁금했다. 휴대폰을 꺼내 셀카를 찍는 척 좌석 사이 벌어진 틈으로 뒷자리에 앉아 있는 남자의 책을 찍었다. 그리고 확대해보니 ‘카뮈’라는 글자가 보였다. 가이드북이라도 읽는 걸까 했더니 카뮈를 읽는 남자라니.


“엄마, 사진 왜 찍어?”

내가 찍은 사진을 확대해서 보고 있으니 아이가 물었다.


“어? 어…. 저 아저씨들이….”

“왜? 잘 생겼어?”


어? 미처 얼굴은 못 봤는데…. 아마 잘생겼을 것 같지 않니? 기차에서 카뮈를 읽는 남자라면 못생겨도 잘생겼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 말이지.


“너 엄마가 여행하는 동안 읽으라고 했던 책 다 읽었어?”

“… 아니.”


갑자기 책 얘기는 왜 하냐는 듯 당황하는 아이. 여행 중에도 틈틈이 읽으라고 겨우 한 권 가져온 책도 다 안 읽었다는 아이에게 갑자기 화가 난다.  


낼모레면 여행 끝나. 그전까지 다 읽어야 해. 알았지?”


아이가 한숨을 쉰다.

남들에게도 자주 애틋해지는 내 마음은 왜 유독 아이에게만은 이토록 단호한 걸까.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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