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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작가 Aug 25. 2020

보르조미가 흐르는 보르조미

조지아에서 온천하기 

러시아에 갔을 때 탄산수를 무심코 마셨다가 뱉어버린 적이 있다. 천연 광천수 특유의 철분 맛, 마치 입술을 깨물어서 피 맛이 나는 그런 맛이 났다. 그 물의 이름이 ‘보르조미’였다. 

당시에는 단순히 탄산수 브랜드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보르조미(Borjomi)는 조지아의 도시 이름이었다.

 예전부터 광천수로 유명한 도시로 조지아 3대 수출품 중 하나가 내가 마셨던 보르조미 물이라고 한다.

물이 좋은 곳이니 당연히 온천과 휴양으로도 유명해서 차이콥스키와 푸시킨이 휴양하러 오기도 했다.

 비록 멋모르고 마셨다가 뱉어버리긴 했지만 그렇게 유명한 물이 나오는 곳이라면 조지아에 왔는데 안 가볼 수없다.


스위스에 갔을 때 산에서 떨어지는 폭포를 보며 친구들과 에비앙이 흐르고 있다며 농담을 했는데 보르조미에는 정말 ‘보르조미’가 흐르고 있었다. 보르조미 국립공원에 가니 천연 광천수를 직접 마실 수 있는 샘이 있었다. 


“우웩! 이게 무슨 맛이야!”


역시나 한 모금 마셔본 윤이 물을 뱉었다. 탄산수도 이상하다며 잘 못 마시는 아이에게 보르조미 광천수는 강렬한 맛이었을 것이다. 맛 본 경험이 있는 나도 여전히 잘 마시기가 어렵다. 


“이게 몸에 얼마나 좋은 건데 그러니. 여기 봐봐. 당뇨, 고혈압, 피부병에도 좋고….”

“거의 만병통치 구만.”


아닌 게 아니라 러시아의 장군이 피부병으로 고생하다가 여기에 와서 온천욕을 한 후 말끔히 나았다거나, 총독의 딸이 죽기 직전이었는데 보르조미 물을 마시고 살아났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기는 했다.    

맛에는 영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온천이라면 좀 얘기가 다를 것 같았다. 마침 우리가 묵는 숙소는 구소련 시절 온천욕으로 치료를 하던 요양소를 개조해 만든 호텔이었다. 여전히 온천을 운영 중이라고 해서 예약을 해두었다.


보르조미의 온천은 우리가 생각하는 온천과는 좀 달랐다. 

온천욕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병원처럼 자신의 상태에 맞는 처방을 받아 소금이나 향을 넣은 개별 욕조에 들어가는 식이었다. 직원들도 하나같이 다 흰 가운을 입고 있어서 정말 병원처럼 보였다. 

목욕가운을 입고 처방전 같은 종이를 들고 복도를 걸어가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우리 무슨 환자 같다.” 

“예전에는 진짜 아픈 사람들이 와서 병원처럼 치료를 받았대.”


지정된 방으로 들어가자 직원 아주머니들이 처방전을 보고 목욕 준비를 해주었다. 대단한 건 아니고 월풀 욕조 같은 개인 욕조에 소금과 향을 넣어 물을 채운다. 그리고 들어가면 끝.


“어린이는 다른 방으로 가야 해요.”

처음에 예약할 때 당연히 대욕장이 있는 온천인 줄 알고 아이의 자리도 예약했는데 우리가 들어간 방에는 욕조가 1개밖에 없었다. 


“다른 방으로 가야 한다는데 혼자 갈 수 있겠어?”

“싫은데….”


아이는 당연히 싫다고 했다. 낯선 외국인 아줌마를 따라 엄마도 없는 방에서 혼자 목욕을 해야 한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의 자리는 취소해야겠다 싶었는데 윤을 기다리고 있던 직원 아주머니는 우리의 얘기가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아이를 다른 방으로 데려갔다.


“엄마…!”

“어, 어! 괜찮을 거야! 그냥 목욕하는 거야!”


왠지 아이를 잡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아이는 그저 낯선 환경에 겁을 내는 것뿐이지 사실 물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멀리 가지도 않았다. 커튼으로 가려진 옆 방이어서 아이의 소리가 다 들렸다. 윤의 긴장한 얼굴이 보지 않아도 그려졌다. 


라벤더 향을 더한 따뜻한 보르조미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그간 여행의 피로가 풀리는 것 같다. 카즈베기에서 보르조미로 바로 갈 방법이 없어서 트빌리시로 다시 가서 보르조미로 왔다. 

카즈베기에서부터 미니버스를 타고 와서 피로가 꽤 누적된 참이기도 했다. 


“예스! 땡큐!”


옆방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라고 물어봤길래 예스, 땡큐라고 대답한 걸까? 어지간해서는 아무리 쉬운 말이라도 영어로 말을 하지 않은 아인데, 혼자 있으니 어쩔 수 없긴 없었나 보다. 혼자 욕조에 앉아 있는 것도 낯선데 말을 거는 외국인 아줌마를 대하고 있는 윤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아까 아줌마랑 무슨 대화 했어?”

“아, 그냥 별말 안 했는데.”

“예스, 땡큐 하던데?”

“아…. 행복하냐고 물어보던데?”

“행복하냐고? 어떻게 물어봤는데? 응? 영어로 뭐라고 했는데?”

“아유 해피…. 됐어?”


이 녀석, 아유 해피도 알아듣고 대답도 할 줄 안단 말이로군. 

그깟 게 뭐라고 난 또 막 아이가 기특해지려고 한다. 


“예스하고 어떻게 땡큐까지 붙일 생각을 했어?”

“아, 엄마… 그만요.”


1절만 해야 한다는 걸 나도 모르게 자꾸만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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