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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작가 Aug 28. 2020

어느 유튜브 지식인의 여행

11살의 쇼핑 리스트

일본은 전적으로 아이가 선택한 여행지였으므로 여행 가서 하고 싶은 것들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동안 엄마 따라 박물관이며 미술관 다니는 게 재미없었다면 스스로 재미있는 여행 스케줄을 짜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마, 살 게 있으니까 돈키호테에 가자.”


아이가 말한 오사카 여행의 첫 스케줄은 돈키호테였다. 

돈키호테는 우리나라로 치면 다이소 같은 잡화점인데 여기까지 와서 겨우 거기에 가자니 조금 실망했다. 

가까이에 오사카성도 있고 하다못해 난바에 가면 유명한 글리코 상도 있는데 말이다. 


“돈키호테가 뭐 하는데 인 줄은 알지?”      

“그럼, 알지. 살 게 있다니까.”


혹시나 놀이동산으로 알고 있는 건 아닐까 해서 물어봤는데 살 게 있어서 가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대체 돈키호테에서 아이가 사고 싶은 건 뭘까?




세상의 모든 물건을 다 파는 것 같은 돈키호테는 물건으로 가득한 미로 같았다. 

아이는 미로를 돌아다니면서 본격적인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고르는 것들은 곤약 젤리, 코로로 젤리 같이 한국에도 있지만 일본에서 훨씬 싸게 파는 간식이었다. 

친구도 주고, 사촌 동생들도 주겠다며 몇 봉지를 담고는 저녁에 본인이 먹을 것도 알뜰하게 챙겨 담았다.

 한국에서는 못 보던 신기한 과자나 장난감들 앞에서는 홀린 듯 눈을 떼지 못했다. 

쇼핑 리스트를 챙겨 왔지만 리스트에 없는 수많은 물건이 윤을 유혹하는 듯했다. 


“이제 다 샀어?”


물건의 미로 속에서 멀미가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는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계속 돈키호테를 쑤시고 다녔다.


“아직 못 산 게 있는데. 그게 어디 있지?”


그 많은 젤리와 오사카에서만 나온다는 벚꽃 향 립밤과 처음 보는 과자들을 사고도 아직 살 게 남아 있단다. 

그게 뭔지 말은 안 하고 돈키호테의 미로를 헤매는 아이. 

슬슬 인내심의 한계가 오는 것 같았다. 


“찾는 게 뭔데? 엄마가 찾아볼 테니까 말해봐.”

“그게… 여기 어디 있을 것 같은데.”


아이는 화장품 코너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계속 뭔가를 찾았다. 

화장품을 찾는 건 아닐 텐데 대체 윤의 쇼핑 리스트에는 뭐가 있는 걸까.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다그치는 엄마의 목소리가 이전보다 한 음 올라간 걸 느꼈는지 아이가 주머니에서 종이쪽지를 꺼냈다. 

아이가 만든 쇼핑 리스트였다.


“곤약 젤리, 샀고. 코로로 젤리도 샀고. 니베아 립밤, 샀고. 그리고 이건 뭐야? 시루콧토?”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 쇼핑 리스트에 있었다. 

과자 이름인가 싶어 아이에게 확인을 하니 약간 쭈뼛거리는 게 느껴진다. 뭔가 수상했다. 


“그거, 돈키호테 가면 꼭 사야 한다고 해서….”

“그니까, 이게 뭔데?”

“화장솜.”


화장솜이라고? 순간 내가 잘 못 들었나 싶어 확인을 하니 내가 생각하는 화장솜이 맞단다.


“화장솜을 왜 사?”

“그거 좋대. 여기 오면 꼭 사라고 그러던데.”

“누가?”

“유튜브에서.”


아! 이 어린 유튜브 지식인을 어찌할까요! 


모든 정보를 유튜브에서 얻는 아이를 농담삼아 '유튜브 지식인'이라고 부르곤 했다.  

여행 전에도 오사카 여행 유튜브를 매일 보길래 여행 스케줄 짜는데 도움되겠지 하는 마음에 그냥 두었다. 

엄마처럼 가이드북 보면서 여행 준비하라는 건 아이에게 너무 고리타분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이런 엉뚱한 쇼핑리스트를 작성하다니. 

어이없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화장솜 뭐하는데 쓰는지는 알아?”

“몰라. 화장할 때 쓰는 건가?”

“그래 뭐, 화장할 때 쓰는 거 맞긴 하지. 그럼 너한테 필요해, 안 필요해?”

“음… 나는 화장 안 하는데.”

“그럼 안 사도 되겠네?”

“…응.”


돈키호테에서 꼭 사야 한다는 그 화장솜은 결국 사지 않고 나오면서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남들이 좋다고 너한테도 다 좋은 건 아니야. 
유튜브에 나오는 것들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돼.  
너한테 필요한 것과 아닌 걸 구분할 줄 알아야 해. 
그걸 구분 못 해서 오늘 같은 일이 생긴 거지. 
너한테 필요 없는데 좋다고 다 살 수는 없잖아. 


분명하고 싶은 말은 이런 거였는데,


“너 앞으로 유튜브 금지야!”


그 모든 말이 함축된 이 말이 나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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