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피랙

6화

by 블루베이글

“엄마, 오늘 마트에 일하러 꼭 가야 해요? 쉬는 날인데…….”

중학생인 아들이 출근 준비를 하는 엄마에게 다가와 말했다.

“알잖아, 마트는 이런 날 더 바쁘다는 거. 엄마가 김치찌개 끓여놨으니깐 데워서 먹고 게임 너무 많이 하지 말고, 알았지? 올 때 송편 사 올게, 아들~.”

아들은 묵묵부답으로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채 엄마를 보았다. 가족이라고는 단 둘 뿐이지만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에게 아들과의 오붓한 시간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려웠다.


추석 전날이라 오전인데 벌써 동네마트에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동네마트지만 가격이 저렴해 꽤 붐비고 별의별 사람들이 물건을 사러 들르는 곳이었다. 캐셔로 일하는 유수현에게 오늘도 고된 하루가 펼쳐질 예정이었다.

“빨리 좀 계산하라고. 왜 이렇게 느려!”

눈을 부라리며 윽박지르는 남자 손님 앞에서 유수현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폭력적인 남편과 이혼한 지 3년이나 흘렀지만, 아직도 어른 남자의 과격한 목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뛰고 숨이 잘 쉬어지질 않았다.

‘이제 이거만 바코드 찍고 술 냄새 진동하는 이 남자를 얼른 보내자…….’

마지막 물건에 바코드를 찍는데 그가 한마디를 더 했다.

“에이 씨, 이래서 동네마트는 오기가 싫어. 아주 느려 터졌어!”

남자는 주목을 끌어 유수현을 창피 주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주변을 쓱 둘러보며 아까보다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캐셔에게 한 번, 소리치는 남자에게 한번, 오가는 사이 유수현은 하던 행동을 멈추고 자신의 가방에서 벤토린 에보할러(천식 완화제)를 찾았다. 몇 번 들이마시자 다시 숨이 쉬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남자가 마지막 일침을 날렸다.

“아주 생쇼를 하네. 하라는 계산은 안 하고 뭘 들이마시고 서 있어, 미친 X!”

그때 유수현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남자를 노려보았다.

“으아앙, 엄마! 저 아줌마 눈이 이상해……. 너무 무서워…….”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여자아이가 자기 엄마 뒤로 숨으며 울기 시작했다.

유수현의 동공이 확장된 상태로 검게 변해 있었다.

그 눈을 보고 놀란 얼굴을 한 사람들이 단체로 일시 정지가 되었을 때, 유수현은 손에 꽉 쥐고 있던 바코드 스캐너로 남자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친 후 가방을 챙겨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트를 뛰쳐나왔다.

너무 일찍 집에 돌아온 엄마를 반기기도 전에 아들은 엄마의 눈을 확인하고 깜짝 놀라 그대로 굳어버렸다.

“엄마, 괜찮아? 엄마 눈이 …….”

“어서 방으로 들어가! 어서!!”

유수현의 절규에 아들은 방에 들어와 문을 잠갔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핸드폰 검색창에 ‘확장된 검은 동공’을 치자, 최근 일어난 성폭행 사건 기사와 함께 연관 사건들이 게재되어 있었다. 댓글에는 이런 사람들을 봤다는 증인들의 글이 수두룩했고 한 번 이런 증상이 발생하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추측성 글도 있었다. 아들은 하나뿐인 엄마가 괴물이 된 건 아닌지 두려움과 슬픔에 울다 잠이 들었다.



“딩동딩동~”

‘이 시간에 누구지? 혹시 최민혁 씨가 찾아왔나?’

아침부터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화들짝 놀란 윤소라는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 구 세 요……?”

“택배 왔습니다.”

이제까지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문 앞에 놓고 가 주세요. 감사합니다…….”

일단 택배기사님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대답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수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쾅쾅쾅!!”

밖에서 문을 세게 두드리기 시작했고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윤소라는 두려움에 떨며 핸드폰과 호신용 경보기를 손에 쥐고 욕실로 들어가 안에서 문을 잠갔다.

‘누군가 현관문을 세게 두드리고 있어요, 최민혁 씨 도와줘요!’

이렇게 문자를 보내고 112에 신고를 하려는데, 현관문이 열리고 집 안으로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욕실 안 수납장에는 여벌의 운동화와 카드 등을 숨겨놓았다.

‘일단 무조건 여기서 나가야 해!’

맨발을 운동화에 쏙 집어넣고 외부와 통하는 작은 창문을 열어 탈출에 성공한 윤소라는 통화 버튼을 누르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윤소라의 전화를 받은 최민혁이 다급하게 물었다.

“여보세요? 윤소라 씨? 소라 씨 괜찮아요? 내가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어요!”

“저 지금 막 집에서 나와 편의점을 향해 도망치고 있어요. 최민혁 씨도 그쪽으로 오세요, 알았죠?”

“네! 부디 조심해요, 윤소라 씨!”

“네, 최민혁 씨도요.”

서로의 안녕을 비는 그 짧은 통화로 윤소라는 초능력을 얻은 듯 용기가 솟아올랐다. 이제껏 숨고 피하는 삶을 살았지만 더는 그렇게 살 수도 없고 살고 싶지도 않았다. 이젠 두려운 존재들을 맞서야 하는 때가 왔고 최민혁 씨와 함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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