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피랙

5화

by 블루베이글

갑자기 두 사람의 배에서 동시에 꼬르륵 소리가 났다. 심각했던 두 사람의 얼굴에 쑥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괜찮다면……. 우리, 뭐 좀 먹을까요? 소라 씨도 먹고 기운을 차려야 할 것 같은데.”

“제 이름이 소라인 거 어떻게 아셨어요??”

“아, 어제……. 책상 위 머그컵에 쓰여 있는 이름을 봤어요. 그 이름 맞죠? 윤 소 라. 죄송해요……. 그리고……. 혹시 궁금하실지 모르지만, 제 이름은 최민혁입니다.”

“우와, 멋진 이름이다……. 최. 민. 혁.”

윤소라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그 말을 들은 최민혁은,

“방금 제 이름이 멋지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말해준 사람은 소라 씨가 처음이에요.”

최민혁은 자신의 이름을 윤소라가 불러주었을 때 그녀와 자신이 어떤 특별한 인연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소라는 얼른 냉장고를 열어 떡볶이 밀키트를 꺼낸 후 청양고춧가루까지 첨가해서 매콤 달콤한 떡볶이를 만들었다.

'행복한 기분으로 떡볶이를 먹는 일상이 이렇게 소중할 수가 있을까!' 윤소라도 최민혁도 표현은 안 했지만 같은 마음이었다. 이 마음은 떡볶이를 먹은 후 믹스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이어졌다. 어쩌면 자신들을 이어준 것은 이 믹스커피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 순간, 윤소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정말 궁금했는데, 이제야 물어보네요……. 어제는 왜 여기 침입... 하셨어요?”

“아, 저도 어제는 왜 그랬는지, 제 행동을 이해할 수 없지만……, 몸도 마음도 너무 지친 상태로 이 다세대주택 앞까지 왔고, B101호의 문이 반쯤 열려있는 것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발길이 여기로 향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모르는 사람 집에 함부로 들어가고 그럴 분은 아닌 것 같은데, 분명 인생이 엄청나게 곤란해진 거 맞죠? 저처럼요…….”

“윤소라 씨처럼 밝고 사랑스러운 분의 인생이 곤란에 빠졌다니요?”

“저는 외출을 안 해요. 아니 못 해요. 원래는 출판사 편집자로 직장을 다녔는데……, 이제는 여기 B101호가 제 은신처예요.”

윤소라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밝은 미소를 보이며 최민혁의 스토리를 듣고자 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형이 하나 있는데, 한 달 전쯤 자신을 찾지 말라는 마지막 문자만 남기고 사라졌어요.”

“어머, 그래서요?”

믹스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착한 눈에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 윤소라가 물었다.

“형이 사라진 이유를 저는 알아요.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어요. 가족이 다 함께 아침식사를 하는데 아버지께서 별거 아닌 일로 분노하며 식탁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집어던지셨어요. 어머니와 저와 형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처음이라 모두 얼음이 되었고 우리의 시선은 모두 한 곳을 향했어요. 바로 아버지의 눈이었어요. 동공이 이상하리만치 크고 까맸어요. 그 일이 있은 다음에도 아버지는 이해불가한 행동을 반복했고 어머니는 두려움에 미국에 있는 친정으로 가버리셨고 형은 가출했고 저도 형을 찾기 위해 곧 집을 나왔어요. 사실 우리 가족은 겉으로만 괜찮은 가족인 척했지 속은 각자의 세상에서 살고 있었어요. 그래도 아버지니깐 끝까지 곁에 있고 싶었지만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더 이상 일상을 이어나갈 자신이 없었어요. 아니, 불가능했어요.”

“그럼 형은 아직 못 찾은 거죠?”

“네, 옥탑방에 살면서 아침이면 일어나 집요하게 범인을 쫓는 형사처럼 골목 이곳저곳을 뒤지고 다녔어요. 그러다가 윤소라 씨의 집에 들어오게 된 거예요.”

“어제는 진짜 놀랐어요. 이 동네가 정말 조용하고 한적해서 택배기사님들 외에는 그 시간에 사람 그림자는 찾을 수도 없거든요. 반지하라 환기를 시키고 싶어 정말 오랜만에 잠깐 문을 열어두었는데, 민혁 씨가 들어온 거예요.”

“정말 죄송해요. 소라 씨가 얼마나 놀랐을지, 제가 잠시 미쳤었나 봐요. 그나저나 이제 점점 바깥세상의 상황이 악화될 거예요. 절대 문을 열어놓고 있으면 안 돼요. 아주 잠시라도요.”

“네, 이젠 그럴 일 없어요.”

“오늘 소라 씨 혼자 괜찮겠어요?”

“아까는 정말 많이 놀랐지만, 저 이제 괜찮아요. 이제 외출도 안 할 거고, 도서관도 편의점도, 아무 데도…….”



최민혁은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고 무슨 일이 있으면 곧바로 연락하라고 신신당부를 한 후 윤소라의 집을 나섰다.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옥탑방에 도착에 옥상에 서서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담배를 피우며 연기에 날숨을 숨겨 대기 중으로 보냈다. 하얀 연기가, 지상과는 달리 한없이 평화로운 밤하늘로 흩어졌다.

‘형도 찾아야 하고 윤소라 씨도 걱정되고……. 아버지는 혼자 잘 계시는 걸까?’

봄이고 밤인데, 잠을 청하는 최민혁은 겨울이고 낮이었다. 한동안 잠 못 이루고 뒤척이다가 소라 씨의 예쁘고 착한 눈을 떠올리자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정오 뉴스. 첫 번째 소식입니다. 어젯밤 어두운 골목길에서 20대 여성 한 명이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CCTV에 찍힌 용의자의 얼굴을 공개합니다.”

어제의 일 때문에 욱신거리는 몸으로 욕실에서 겨우 양치질을 하던 윤소라는 거실에 켜 놓은 TV 화면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저 얼굴은! 어제 나를 성폭행하려 했던 그놈이잖아!’

윤소라의 착한 눈이 이글거렸다.

‘그럼 아직 안 잡혔다는 소리인데, 조만간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게 분명해.’

뉴스앵커는 말을 이어갔다.

“용의자의 얼굴에서 특이하다고 할 만한 점이 발견되었는데요, 범죄학 교수님과 연결해서 말씀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자료화면에서 보시다시피 이 용의자의 동공이 정상인보다 확장되어 있고 색도 완전한 검은색입니다. 인간의 동공은 빛의 양에 따라서 뿐만 아니라 감정적 요인에 의해서도 그 크기가 달라지는데, 이는 자율신경계가 감정에 의해 자극을 받게 되면 동공의 크기가 변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스트레스나 공포를 느낄 때 동공의 크기가 커지는데, 그런 상태가 해소되었을 때는 동공이 원래의 크기로 돌아오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용의자는 특이하게도 동공의 크기와 색이 비정상적인 상태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네, 교수님. 그럼 왜 이런 증상이 발생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정확한 원인은 추적조사를 통한 연구가 진행되어야 알 수 있겠지만, 제 소견으로는 우리 사회가 가진 수많은 문제점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있는 와중에 이제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오늘 교수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TV에서는 다음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윤소라의 머릿속은 온통 아까 그 범죄학교수의 말로 꽉 차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동안 왜 자신이 세상과 고립되어 살 수밖에 없었는지 이제야 누군가 입증해 주는 것 같아 속이 후련하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더욱 막막한 기분이 들어 깊은 한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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