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쯤이었는데…….’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윤소라의 집을 찾던 남자의 눈에, 땅에 떨어진 뭔가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게 보였다. 안경이었다.
‘누가 여기다 안경을…….’
안경은 길바닥에 떨어져 있기 쉬운 물건이 아니기에 남자는 유심히 그 안경을 살폈다.
‘어! 뭐야 이 짙은 파란색 안경테, 어제 보았던 그녀의 안경과 똑같잖아!’
게다가 조금 떨어진 곳에는 편의점 로고가 찍힌 비닐봉지가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봉지 안에서 새어 나온 바나나우유가 아스팔트 위에 한 줄기로 흐르고 있었다.
‘안돼!! 윤소라 씨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
그때 갑자기 골목 안쪽에서 “삐삐삐삐”하는 호신용 경보기의 소리가 들렸다가 이내 멈췄다. 달려가 보니 윤소라는 바닥에, 검은 모자를 쓴 남자는 그 위에서 윤소라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 고통스럽게 저항하고 있는 윤소라의 모습을 보자 피가 거꾸로 솟았다.
“이런 미친 새끼가!”
번개처럼 달려가서 검은 모자를 쓴 남자의 몸통을 향해 킥을 날렸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남자는 나뒹굴어졌고 칼을 놓친 것을 깨닫고는 도망쳐버렸다. 바닥에 쓰러져있는 윤소라가 걱정되어 그를 잡는 것을 뒤로한 채 윤소라에게 다가와 그녀의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괜찮습니까?”
“흐흑,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자신을 구해준 사람의 얼굴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찢어진 옷과 헝클어진 머리를 애써 정리하려 했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흙먼지가 묻은 채로 옆에 떨어져 있던 백팩을 들기 위해 팔을 뻗쳤지만, 허공에 팔만 허우적댈 뿐이었다.
“제가 들겠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한쪽 어깨에 그녀의 백팩을 걸쳤다. 뭐가 들었는지 꽤 묵직했다.
“아아……. 내 안경이 어디 갔지……?”
안경이 없으니 세상이 뿌옇게 보여 방금 일어난 일이 더욱 거짓말 같고 무서웠다.
“안경, 여기 있습니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아까 주운 안경을 꺼내 윤소라의 얼굴에 조심스레 씌워주었다. 안경을 씀과 동시에 그의 얼굴이, 그 착한 눈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어……? 당신은, 어제 그 침입자……?”
“아, 침입자……. 저 맞아요. 그런데 저 나쁜 사람 아니에요. 어제는 정말 죄송했어요.”
“네, 알아요……. 나쁜 사람 아니신 거……. 이렇게 저 구해주셨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걱정이 되어서 혹시나 해서 와봤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남자는 윤소라의 어깨를 자신의 팔로 감싸서 그녀가 자신을 의지해서 걸을 수 있도록 했다.
“잠시만요, 저 칼. 증거자료……. 제 백팩 보시면 가장 앞주머니에 지퍼백 있어요.”
남자는 칼을 집어 지퍼백에 넣은 후 일단 윤소라의 백팩에 넣었다.
“저기 제 간식들이…….”
윤소라의 눈에 아까 산 편의점 간식들이 든 비닐봉지가 땅에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아까 끌려가느라고 손에서 놓친 줄도 몰랐다. 윤소라는 이 상황에서 이걸 챙기는 자신이 살짝 부끄러웠지만, 신기하게도 이 남자와 함께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느낌이 들었다. 어제도 그랬으니까.
B101호 문 앞에 다다르자 윤소라가 먼저 제안했다.
“저를 도와주신 것도 고맙고 제가 아직 혼자 있기가 조금 무서워서 그런데, 잠깐만 함께 계셔주실 수 있을까요……?”
윤소라의 부탁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B101호에 온 두 사람은 다소 어색하지만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온 윤소라의 여기저기에 아까 저항할 때 생긴 상처들이 보였다. 남자는 어느새 구급상자를 찾아 윤소라 옆에 앉았다.
“제가 할 수 있어요.”
윤소라는 아직은 낯선 이 남자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고 싶지 않았지만, 남자는 마치 응급실 의사처럼 이미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이고 있었다. 이렇게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는 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저……. 근데 정말 보고 싶지 않았지만, 그 남자의 눈을 봤어요. 동공이 부자연스럽게 크고 새까맸어요. 피치블랙……. 그 색이요.”
윤소라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역시나, 그렇군요.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막상 윤소라 씨에게 이런 일이 생기니 이제 정말 위험한 수준까지 온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남자는 매우 심각한 얼굴이 되어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듯했고 윤소라도 오늘 있었던 일이 자꾸 머릿속에서 재생되어 또 한 번 작게 몸서리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