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은 학교 졸업식이 있는 달이었다.
갓 입사한 회사의 막내직원이었기 때문에 내년 연차를 당겨서 졸업식에 다녀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나는 졸업사진도 찍지 않았고, 학사모도 쓰지 않았다. 그렇게 별 미련도 없이 학교를 졸업했다.
나의 마음은 이미 학교를 떠나 있었다.
더이상 학생도, 아르바이트생도 아닌 어엿한 한 사람의 사회인이라는 자부심과 그 어렵다는 취업난을 뚫고 '한방에' 취업했다는 자아도취에 빠져 씩씩하게 학교 문을 걸어나왔다.
2. 그랬던 내가 7개월만에 회사를 그만둔 이유
열 아홉살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난 후 새해에 스무살이 되었다고 해서 '짠' 하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다. 법은 그러할지언정 어제와 오늘의 나는 여전히 나일 뿐이니까.
마찬가지로 학교를 졸업하고 다음 날부터 당장 직장에 출근한다고 해서, 내가 사회인이 된 것은 아니었다.
회사에서는 아직 학생인 나를 뽑아 빠른 시일 내 직장인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3개월 간의 수습기간 동안에는 무조건 풀정장 차림에 구두를 신어야만 했다. 날마다 교육일지를 작성하고 신입사원으로서의 아이디어도 발표하게 했다.
나는 함께 입사한 동기 언니와 함께 법인사무국의 후원개발팀에 배치되었는데, 주된 업무는 '후원 캠페인' 이었다.
지하철역이나 번화가 등을 중심으로 부스를 설치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아 정기후원증서를 작성하게 하는 업무였다. 많게는 하루에 20-30만원, 적게는 10만원도 못할 때도 많았다.
정장차림으로 하루종일 바깥에 서서 도로 위의 온갖 먼지를 뒤집어쓰며 하는 일은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한 달에 커피 두 세잔 사먹을 돈만큼만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부해주세요' 라는 멘트를 입에 달고 지내면서도 정작 나는 먹지도 않던 커피를 하루에 두 세잔씩 마시며 버텼다. 내 처지가 거리 위의 비둘기와 다를 바 없이 느껴졌다. 나와 같이 조를 꾸려 다니는 선임들은 정말 이 일을 몇 년씩 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나의 몇 년 후도 이들과 같겠구나.
일이 힘들어도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날마다 거리모금 켐페인을 통해 들어오는 단기성 수익(정기 후원도 어느 날 후원자의 마음이 변해 끊어버리면 그만이었다)을 통해서는 회사에서 이야기하는 성장이며 비전을 이루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캠페인 업무와 별개로 회사에서는 수많은 피드백을 받았다.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목소리가 너무 아기같다' 라는 말이었는데, 아마 또래보다 더 앳되어보이는 외모와 학생 티를 벗어나지 못한 말투도 한몫했겠지만, 아무래도 억울했다.
교수님께서 '이 회사가 너를 좋아할 것 같다' 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뭘까?
아마도 내가 각종 아르바이트를 경험하며 단단해졌으리라고 생각하셨던 것이 아닐까 싶다. 회사도 비슷한 이유로 나를 뽑았을테고.
하지만 회사는 도무지 나를 있는 그대로의 나로 받아들여줄 것 같지 않았다.
반대로 말하면, 나 또한 회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후원개발팀 선배들 중, 회사에서는 거의 영웅적인 대우를 받는 남자 선임이 한 명 있었다.
그의 팀으로 들어가면 하루에 50-60만원 정도 실적은 우습다고들 했다. 거의 다른 팀 실적의 2배씩을 벌어오는데 부장님의 사랑을 독차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동기언니는 그의 팀이었다. 여직원들의 외모 평가와 성희롱적 발언들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는 그의 주된 표적은 팀 막내였던 동기언니였다. 나보다 고작 한 살 더 많았던 언니는 거의 매일을 울면서 회사에 다녔다.
회사에서 가장 인정받고 있는 까마득한 선배를 내부고발할 용기도, 방법도 우린 알지 못했다.
그 땐 몰랐지만 당사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다쳐갔고, 어쩌면 아예 닫혀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 좋은 웃음으로 팀원들을 다독이고 전체 직원회의를 주관할 때면 회의실 안 그 누구보다도 어른이었던 팀장님이 회식 때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골목에서 노상방뇨를 하고, 택시를 타고 집에 가겠다는 나를 따라왔을 때도 어질어질했지만 '와, 이런게 회사생활인건가' 하는 신기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만큼 나는 처음 겪어보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분명히 판단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하지만 내가 어리지 않았어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을 것이라는걸 이제는 안다.
회사에는 퇴사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말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붙잡히지 않을 방법을 고민 끝에 내가 내민 퇴사사유는 지금 생각해도 참 황당하고 스물 다섯 살의 나다웠다.
"결혼하려고요."
그렇게 첫 회사치고 스펙터클했던 7개월의 시간을 뒤로하고 나는 작별을 고했다.
결혼을 축하한다는(?) 많은 이들의 축복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