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물고기의 역사

by 나만아는낭만

1. 생선의 눈


어린아이들의 순진무구함에서 비롯되는 무의식적인 행동들은 간혹 의도치 않은 기묘함의 형태로 나타날 때가 있다. 내게는 '생선 눈알'이 그랬다.


어릴 적에 엄마가 저녁 반찬으로 생선을 구워 내놓으시면 재빨리 젓가락으로 눈알부터 콕 찍어 낼름 입에 넣곤 했다. 심지어 동생과 서로 생선 눈알을 먹겠다며 다투기까지 했다. 정작 맛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보다는 누가 먼저 생선 눈알을 점령하느냐 하는 행위 자체가 더 중요했다.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키우기 시작하고, 머지 않아 그 두 마리가 차례로 세상을 떠났을 때 내가 받았던 충격은 자연스럽게 생선의 부릅 뜬 눈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했다.

물고기는 눈꺼풀이 없기 때문에 눈을 깜빡이지 못한다는 엄마의 말, 깜빡임 없는 물고기의 눈은 그들이 살아있기까지만 유효한 것이라고 믿었던 내게, 죽어서도 두 눈을 뜨고 힘없이 수면 위로 떠 있던 모습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돌이켜보면 함께했던 시간 동안 물고기가 보여준 모습은 늘 한결같았다. 울음소리를 내지도 않았고, 하품을 하거나 눈을 감고 자는 모습, 지느러미를 움직여 무엇인가를 붙잡으려는 행동조차 없었다. 나와 물고기 사이의 교감은 조그마한 어항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를 조용히 바라보던 짧은 순간의 정적과 그 속에 흐르던 공기가 전부였다. 한 마디 대화조차 나눠보지 못했지만 그 작은 친구의 죽음은 꽤 쓸쓸했다. 화분의 흙을 파고 묻어주며, 다음 생엔 꽃으로 태어나기를 빌어주었다.


그 때부터 '눈알 점령 놀이'는 중단되었다.

경쟁상대가 없어지자, 동생도 자연스레 목적없는 행위를 멈추었다.




2. 이상한 어른


자라면서 나는 생선 눈알을 뽑아 먹기는커녕 물고기의 눈을 보는 것조차 불편해 밥상 위에 생선요리가 오르면, 휴지조각으로 그 부릅뜬 눈부터 가려버리고 마는 그런 어른이 되었다.

길을 걷다가 횟집을 지나칠 때, 뜰체가 걸린 좁은 수족관 안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보는 것이 괴로워 고개를 돌려버리기도 한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는 생명들.

넓은 바다를 헤엄치던 그들이 어쩌다가 이 도시 한 복판에 오게 되었을까. 그들의 사연을 생각하면 도무지 그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정작 나는 생선을 먹는다. 아주 즐기지는 않지만 토막난 고등어 자반이나 꽁치조림을 먹고 회나 초밥을 특히나 좋아한다.

즉, 눈이 없는 생선이라면 아무런 죄책감이나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어쩌면 내가 두려워하는건, 눈이라는 물성 자체가 아닌 본질에 있을 것이다. 언제나 눈을 뜨고 나를 지켜보는 것, 말하거나 행위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한 본질의 눈. 그것이 두려워 횟집 앞에서는 눈을 피하고, 들어가서는 싱싱한 회를 맛있게 먹는 이상한 어른이 되어버렸다.


차라리 용감하게 젓가락을 들고 생선의 눈을 향해 거침없이 돌격하던 어린 시절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때의 나는, 눈을 바라보는데 주저함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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