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미워지는 요즘이다.
괜히 무의식이니 리비도니 하는 말을 만들어 놓는 바람에, 35살 먹은 유부녀가 새벽에 벌떡 일어나 "나 왜 또 걔 꿈을 꾼 거지?" 하고 스스로에게 자책 아닌 자책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꿈 내용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배경은 대부분 중학교 3학년 교실이다.
나도 그 애도 여전히 중3이고, 꿈 속에서는 학교에서의 평범한 일상 속 우리 둘만 알았던 장난과 설렘, 다툼이 그 시절의 공기와 함께 그대로 펼쳐진다.
현실에서는 애아빠가 되어있을 그 애가, 꿈 속에서는 여전히 샤프를 돌리며 장난을 걸고, 수업시간에 눈이 마주치면 웃는다. 그리고 나는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 속수무책으로 설렌다.
문제는 나도 이제 남편이 있고, 아이도 있고, 어느 덧 결혼 6년차이며 누구보다도 열심히 현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점.
현실의 나는 아침에 딸아이 등원 준비에 바쁘고, 세수도 못한 채 재택근무로 열심히 일하는 워킹맘이지만, 꿈 속에서는 수학시간에 딴 짓하다가 그 애 눈치만 보는 영락없는 열 여섯 살짜리 여자애다.
마치 우주 너머 평행하는 시간 속의 나를 바라보는 것처럼 그 때의 감정들이 꿈 속에서도 생생하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아주 미친 소리 같지만, 꿈에서 깨고 나면
"잘 살고 있으려나? 연락... 해볼까?" 하는 생각까지 스치고 지나간다.
꿈의 잔향이라는 것은 참으로 비겁하게도 감정만 남긴 채 현실 앞에서 무책임하게 사라진다.
꿈에서 깨고나면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결혼했다는 여자는 어떤 여자인지, 미국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만 들었는데 잘 살고 있는지가 궁금해지지만 곧 아이가 나를 부르는 현실로 돌아오고나면 언제 그런 꿈을 꾸었냐는 듯 모든 것들이 휘발된다.
왜 이런 꿈을 꾸나 억울해서 여러 번 곱씹어보고 생각해본 결과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 시절의 내가 그리운 것이라고.
내가 가장 생생하고 밝았던 시절.
책상에 엎드려 몰래 쪽지를 주고받고, 이유도 없이 웃음이 터지고, 체육시간이든 음악시간이든 겉으로는 티내지 않았지만 신경은 온통 그 애에게로 향하고 있던 매 순간의 설렘들. 모든 가능성이 아직 닫히지 않았다고 믿었던 그 때.
첫 사랑은 그 모든 감정의 '상징'이었을 뿐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일에 치이면서 삶은 어느 새 숙제가 되었다.
하고싶은 일보다 해야하는 일을 해내는 것이 어른이라고 했던가. 오늘과 내일을 비슷하게 살아가는 내 인생의 빈틈을 채우기 위해 무의식이 나의 가장 빛나던 시절을 불러다주는 것이다. (배려는 고맙지만 적당히 좀...)
생각해보면 이건 미련이 아니다.
첫사랑이 다시 나타난게 아니라 내 안에서 잊고 있던 '나'가 다시 부르는 소리였다.
그래서 요즘은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 떠올려본다.
10대 때 자주 들었던 노래를 듣고, 예전처럼 글도 써보고, 추억을 회상하며 혼자 웃는다.
곧 우리 딸이 자라서 비슷한 일을 겪게 되면 엄마도 그랬었다-라고 이야기해줄 날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물론 나는 첫사랑에게 연락하지 않을 것이다.
보고싶은건 그 사람이 아니라, 결국 '그 때의 나'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첫사랑이 꿈에 잠깐 다녀간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