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한달

(진주성-진양호-남해해오름 예술촌-미조항-상주은모래 해수욕장-보리암)

by 파랑새 앵선

남해의 아침은 고요와 함께,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뜨는 태양이, 어제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 주는듯,

내 마움과 몸을 열어주며 따듯하고 포근하게 떠오른다.

창 너머 멀리 보이는 바다는 아직 아침 안개에 젖어 있지만 잔잔히 출렁이는 파도는 바다가 살아 있음을 말하며 통통배가 지나가는 바다길 뒤로 행복이 졸졸 따라가고 있다.

유난히도 키 큰 해송은 세월을 말하며 , 늘 거기 그 자리에 있음을 애써 자랑하듯 그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고, 해송밑에 작은 나무들은 아름다운 단풍색으로 갈아입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 모든것이 자연의 이치임을 새삼 깨달으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아가는 자연을 만드신 위대한 신의 섭리를 다시한번 깨달으며 감사함을 보낸다.


아침은 늘 우리에게 새로운 기대를 갖게 하며, 무엇인가를 준비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이번 여행이 정말 행복하고, 따듯한 여행이 되기를 기도하며 나도 나의 아침을 준비해야겠다.


이 먼 길을 운전해 주겠다고 따라나선 아들과, 그저 묵묵히 응원해주는 남편을 위해 된장찌개를 끓이고, 두부를 부치고, 준비해온 밑반찬을 더해서 남해의 첫 아침상을 차려야겠다. 따둣하고 맛있는 아침식사는 하루를 더욱 자신감 있게 시작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오늘은 진주에 가서 KTX 타고 집으로 가는 아들을 배웅하기위해 진주로 여행계획을 세웠다.

사랑하는 아들 ! 알랴뷰!


진주성

촉석루는 고려말 진주성을 지키던 지휘소였고, 공민왕때(1365) 세워져, 일곱번의 중수를 거쳤으며, 6.25때 소실된것을 1960년 재건 하였다 한다. 임진왜란떼 왜적이 침입하자 지휘본부로 사용하였으며, 평화로울때는 과거를 치르는 시험장으로 쓰여졌다고 하니,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장소인 것이다.


진주 하면 우리는 논개 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깊고,

불붙는 열정은 사랑보다 강하다.

아! 강낭꽃 꽃보다 더 푸른 그 물결위에,

양귀비꽃보다 더 븕은 그 미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 논개의 시 비 -


촉석루 바로 앞 절벽 아래에 작은 섬 처럼 떠있는 의암(가로세로 3m정도)이 오늘도 외로이 떨어져, 한가로이 흘러가는 강물들만이 논개의 나라사랑을 아는듯, 스치며 안아주며 보듬어 주면서, 유유히 흐르고 있다.

진주성이 함락되자(임진왜란 3대첩중 하나)왜적들은 자축연을 벌였는데 관기였던 기녀 논개는 열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깍지 낀 손가락이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가 위해) 왜장 에야무라 로쿠스케 를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져 조선여인의 기개를 휼륭히 보여 주었다 한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기품있는 논개의 초상화를 보며 존경심을 더해 묵념을 했다.

시대를 잘 타고 났다면 훌륭한 여성 지도자가 되었을 논개를 향해.....

촉석루


의암



















국립 진주 박물괸

가야 문화로 가득 채워진 박물관에서 상감 모란무늬

납작병에 한참이나 정신을 빼앗겼다.얼마나 아름다운지......

흰색도 아닌것이 노란빛도 아닌것에 그 모란문양이 다시 모란으로 피어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같이 잔이라도 나눌 친구를 기다리는 듯 여유있는 색상과 세련되었지만 따듯한 자테로 그리움을 말해주고 있었다.










진양호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풍경은 얼마전 다녀온 백두산 천지의 물 색깔을 닮아 있었다. 섬 구비마다 물결을 휘감는 아름다운 곡선이 다음섬으로 연결 된 그 자연스러움에 다른 생각들을 놓아버리고 그저 멍하니 바라본다.진주시의 남강과 덕천강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서부 경남의 유일한 인공호수이며, 진양호 공원, 어린이 교통공원, 진양호 일주도로, 동물원등이 있고, 홍수조절과 상수도 곤개용수, 공업용수로 쓰이는 귀한 호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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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역에 아들을 내려주고 , 다시 남해를 향해 핸들을 잡는다.

고고한? 남편을 옆에 태우고.......


해오름 예술촌

막상 올라가보니, 커피 전문점들이 몇개 있고, 뜰에는 석고상 몇 작품이 객들을 맞이한다. 위쪽으로 예술촌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는 전시장과 작업장이 있다. 아직 미완성 처럼 보이지만 작가들의 열정과 사랑과 인내가 언젠가는 예술 촌 다운 에술인의 마을로 다가서기를 기대하면서 미조항으로 향했다.













미조항

미조리에 위치한 미항(美港) 으로 "미륵이 도운 마을" 이라는 전설에서 유래했다 한다. 주변에 호도, 조도와 작은섬 16개가 옹기종기 모여 더욱 아름다운 해안선을 만들어 내는 미항이다.

유난히 많은 선착장의 배들을 보고 갓 잡아올린 싱싱한 해산물 시장을 찾았지만, 횟집 간판들만이 클로즈 업 되고 있었다. 제주 에서도 남해에서도, 부두에 가면 만날수 있었던 싱싱한 생선들과의 조우는 이제 없어지고, 회 센타 좁은 수족관에서 몸부림 치고 있는 생선 몇마리만 만날수 있을 뿐이다. 나도 웬지 갑갑하다.


상주 은모래 해수욕장

모래는 아주 섬세하고 고와서,마치 밀가루를 쏟아 놓은듯 부드러웠다.

늦은 오후 햇살이 바다를 비추고, 밀려오는 잔잔한 파도는 고운 모래들을 옮기며, 바다물결에 떠밀려온 고동들이 모래사장에 누워 밀려온 여행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모래 사장엔 젊은이들이 뒤섞여 공을 차며, 서로 이기려고 소리 질러가며 웃어대는 웃음소리와, 공차는 소리와, 파도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평화의 나팔을 불며, 모래 사장에 떠밀려온 고동의 숨결까지도 함께...

언제나 이 모습으로 있어 주렴......

보리암

미조항을 거쳐 상주 해변을 찾아 드라이브 할때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높은산 꼭대기에 있던 큰 바위 덩

어리였다.

"저 산위에 있는 바위 좀 봐오! 자세히 보면 밑에 금이 가 있는데 떨어져서 구르면 이 섬이 어떻게 되는거지? 굉장히 위험한데? 어떻게 산 꼭데기가 바위로 되어있지?

"허허 떨어지기야 하겠어" 언제나 긍정적인듯? 무심한듯?한 남편의 대답이다.

그곳이 보리암!

좀 무리인듯 하지만 오늘 보리암까지 보고 싶은마음에 보리암으로 향한다.

보리암에 대한 검색없이 무작정 오른 나의 용감?함으로 오르는 경사도가 70도는 넘을듯한 이찔하고, 가파른 길은 끊임없이(3KM) 이어지고 있었고, 베스트 드라이버로 자인하는 나는 나도모르게 기도부터 하기 시작했다.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발밑에 엑셀을 아주 힘껏 밟아도, 차는 겨우겨우 스스로의 한숨을 토해내며 기어오른다. 입구에 위험한 도로라는 안내문 하나가 절실한 도로였다.

아뿔사! 주차장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것을...


차에서 내려 다시 걸어오르기를 20여분, 아까 보았던 그 바윗덩어리!

그 밑에 보리암! 이럴수가!


683년 원효대사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태조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하였다는 보리암은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와 함께 3대 기도처 이기도 하단다.

보광전, 간성각, 산신각, 법종각, 요사채, 삼층석탑(경남유형문화재 74)등이 있고, 무엇보다 보리암에서 바라보는 남해는 아득함으로, 그리움으로, 벅참으로, 내 가슴을 파고 들었다.

-보리암-

어느새 저녁무렵!

시골길은 금방 어두워 진다. 어두움이 밀려오며, 내 피곤함도 밀려오지만, 저녁바람이 코끝을 쨍하게 간지럽히고, 밭 이랑에 캐다남은 고구마 덩쿨은 서로 뒤엉켜 풍만한 새끼들을 엉덩이 아래로 주렁주렁 매달고선 해산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풍만한 가을!


고갯마루 넘어 어느덧 숙소!

현관문을 열었다.

아! 쉼이 있는 곳이여...... -보리암-



(몇년전 남해 한 달살이 일기장 을 다시 열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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