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남해 유배 문학관에서 김만중 울 만나, 노도(유배지)로 향하다)

by 파랑새 앵선

남해 유배 문학관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유배지에서 탄생한 유배문학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문학관은 절망 속인 삶 속에서 남겨진 글들이었다, 소달구지를 타고 먼 유배지로 가족을 두고 떠나야 하는 그 심정이 절절히 글이 되어, 시가 되어, 아픔을 대신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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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 김만중은 맹자의 어머니와 비유되는 어머니의 희생적 가르침에 14세 때 진사로 초에 합격하고, 16세에 진사 일등으로 합격하며, 1665년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 수찬 등을 역임하고 암행어사로 활동했다.

임금 앞에서도 직언을 불사하는 강직성으로 관직을 박탈당하기도 한 김만중은 결국 숙종 임금에게 인현왕후를 몰아내고 희빈 장 씨를 불러들인 사건을 두고 상소를 올렸다가 남해로 유배로 가게 된 것이다.

유배지에서 어머니에 생일날에 어머니를 그리며 썼다는 시


"오늘 아침 어머니가 그립다는 말을 쓰자 하니 글자도 되기 전에 이미 눈물이 앞을 가리네

몇 번이나 붓을 적셨다가 던져 버렸는고, 문집에서 남해시는 마땅히 빼어 버려야 하리"

- 김 만 중 -

그의 어머닌 윤 씨는 영의정을 지낸 문익공( 文翼公) 방(防)의 증손녀이고, 이조참판의 딸로 그의 교육 열정은 남편 없이 살아가는(정축 호란 때 순절) 궁색한 살림에도 서책을 구입할 때 가격 고하를 묻지 않았으며, 이웃에 사는 홍문관 서리를 통헤 책을 빌려 손수 등사하여 교본을 만들기도 하고, 직접 가르치기도 하였다 한다. 이렇게 훌륭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그 마음이 하도 절절하여 읽는 내내 내 가슴에 눈물 한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내게도 그렇게 훌륭한 어머니가 계셨는데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어머니는 돌아가셨으니 이 불효를 어찌 감당하랴?


<구운몽>은 자신의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쓴 것으로 한글로 집필되었고, <사 씨 남정기>는 인현왕후를 옹호하기 위한 정치소설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역사 속의 <사씨남정기>는 명나라 때 있었다는 이야기를 소설로 만든 역사소설이라고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글을 사랑하고 한글로 쓰여졌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특히 <서 포만 팔>은 수필, 시화 평론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김만중의 사상적 편력과 박학한 지식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쓰이기도 한다.


"풍파가 거친 탓일까?

반년을 두고 서찰이 끊겼네

지금 내 병환은 낙조처럼 깊어만 가는데.

내 죽어 강변에 버려질 백골은 누가 거두어줄까?

만 목이 앞다투어 얼어 드는데

밤새 무심한 해풍만 뇌성처럼 우는구나

등잔 앞에 홀로 앉아 주역을 읽나니

한번 흘러간 세월은 돌아올 길 없구나"

-김만중의 글에서-

이렇게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며, 56세 나이로 쓸쓸히 남해 외딴섬에 유배로 생을 마감한 천재 시인 김만중의 나라를 사랑하는 충언과, 어머니를 사랑하는 따듯한 마음, 그리고 우리글을 사랑하는 그 깊은 헤아림이 남해의 물결이 되어 길이길이 후손들에게 간절히 이어지기를 바라며....

나는 김만중이 유배되었던 섬을 가보기로 했다.


노도

남해도 섬인데 남해에서 또다시 배를 타고 가야 하는 노도(아주 작은 섬)로 유배를 당한 김만중의 좌절감과 상실감은 얼마나 컸을까? 섬을 반 바퀴쯤 돌아 내려가는 중턱에 김만중의 생가는 옛 모습이 아니고 재현된 모습으로 있었다.

마당에 심은 동백나무는 너무 자라 바다를 가리고 있었고, 툇마루에 낡은 밀짚모자만이 주인을 잃은 듯 세월을 지켜내고 있으며, 방문은 열어 볼 수 없어서, 김만중이 쓰던 책상이나 책이나 어느 것 하나 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재현된 초가집 툇마루가 산새들이 앉았다가는 쉼터일까 싶다.

이 답답한 섬에서 그는 볼 수도, 갈 수도 없는 그리움을 글로 남기며 얼마나 뼈아픈 눈물을 흘렸을까?

멀리 보이는 바다를 보며, 밤이면 무섭게 휘몰아치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많은 세월을 몸부림치며 견디어 냈을 그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지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230개의 돌계단을 쌓아 놓은 김만중의 무덤을 향해 헉헉 거리며 올라갔건만, 거기엔 돌 몇 개 올려놓고 무덤자리라는 표시만 있었다. 따듯한 봉분이라도 보려나 올라왔건만, 이름 석자 새겨진 비석이라도 보려나 올라왔건만 쓸쓸한 낙엽만이 뒹굴고 돌 몇 개 자리하고 있다니!

슬픔이 밀려왔다.

시인의 무덤이 없어서,

시인의 글이 없어서.....

230개의 돌계단을 하나씩 세면서 내려온 무거워진 발걸음은 노도를 떠나는 내내 나를 붙잡고 놓지를 않아 그저 바다만, 바다만, 바라보았다.


(몇년전 남해의 일기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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