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점 주인 애경의 시간은 일반인들의 시간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1월이 한 해의 시작이지만, 애경에게 있어 시작은 신학기가 있는 3월이 진정한 일 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45일에서 50일 가까이 되는 긴 겨울방학 동안 애경은 아침 8시 출근, 저녁 8시 퇴근의 패턴이 방학 모드로 들어가 아침 10시 출근, 오후 7시 퇴근이 되었었다. 이 꿀같은 세 시간의 여유를 누릴 수 있어 방학을 기다리는 애경이다.
이렇게 긴 겨울잠을 자고 난 후 3월 초 단 며칠의 신학기 매출을 위해 2월은 준비 기간이나 다름이 없다.
2월 한 달 동안 미래를 예측해서 물건을 주문하고, 정리하고, 만반의 준비를 마쳐야만 한다.
언제나 사람의 일이 그렇지만 늘 반복되는 일이건만, 완벽하게 흡족하게 마무리되는 법은 없다.
늘 어떤 물건은 모자라고, 어떤 물건은 남아돌게 마련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 어찌 딱딱 들어맞을 수 있을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일 년 중 문구점 안에 물건이 제일 많이 쌓이는 달, 손님들이 제일 많이 방문하는 달, 제일 매출이 많은 달이 바로 3월 신학기이다.
그래서 3월이 되면 늘 긴장과 설렘이 같이 찾아온다.
정신없이 몰려오는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여유 있는 2월의 시간들은 그래서 마치 태풍이 몰려오기 전의 고요함 같은 느낌이 든다.
이번에는 남편이 마침 일이 바빠, 어쩔 수 없이 멀리 사는 딸을 소환해야만 했다.
딸은 자신의 일을 며칠 뒤로 미루고 혹은 당겨서 처리하고 정신없을 엄마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었다.
이번에는 신학기 손님들을 위해 귀여운 노랑 병아리 볼펜을 준비해 두었다.
모든 분들께 드릴 수는 없고, 일정 금액 이상 되시는 분들께 골고루 나눠 드리기로 했다.
생각 못 한 작은 선물은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수량이 생각보다 적었던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3일의 태풍이 몰아치고 남는 건 몸에 남은 피로와 한 해의 가장 높은 매출이다.
다행히 이번에 지금까지의 최고치를 경신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애경은 문구점을 찾아와 주신 모든 고객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평소 애경은 자신이 친절한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친절하다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하다'라고 나와 있다.
친절하다의 뜻을 애경이 굳이 찾아본 데는 이유가 있었다.
평소 스마트 플레이스를 별로 이용하지 않다가 휴무일 때문에 수정할 일이 있어 검색을 하게 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분이 리뷰에 키 작은 문구점 주인이 친절하지 않고, 인상도 좋지 않고, 아이들을 돈으로 본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적어 놓은 걸 발견하게 된 것이다.
애경은 나름 그동안 손님들에게 친근하게 대했다고 생각을 했던 터여서 정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심지어 그 손님은 두 번이나 다녀가셨는데 애경에 대한 적대감이 처음보다 두 번째 더 심해진 거였다. 도대체 어느 분일까? 어떤 점을 보고 그렇게 생각을 한 걸까?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하는 그 짧은 순간에 애경을 다 파악했다고 생각한 걸까?
처음에는 기분이 정말 나빴지만, 애경은 자신이 그 사람이 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화가 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싶었다.
그 사람이 애경을 어찌 생각하는지는 그 사람의 몫이고, 그 사람 마음 때문에 애경이 기분 나쁠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마침 애경이 기분 좋지 않은 표정으로 있었던지, 아님 인사를 제대로 못했던지, 가격이 맘에 안들었던지 그 사람이 그렇게 부정적으로 느꼈을 이유가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손님들이 생각하는 친절하다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애경이 생각하는 친절의 조건보다는 분명 더 높은 조건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애경은 자신의 가게를 찾아주시는 모든 분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고, 번영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매일 손님을 위한 확언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런 진심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건 그의 몫이니 굳이 부정적인 말들에 휘둘려 기분 나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애경의 생각이었다.
애경은 친절한 웃음을 머금고 복수를 다짐하는 친절한 금자씨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웃으며 속마음과는 다른 지어낸 친절을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그녀의 가게를 찾는 분들이 모두 잘 되기를 늘 기원하지만, 거짓 웃음으로 친절을 포장하지 않는 불친절한 문구점 아줌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애경의 가게를 좋은 마음으로 찾아와 주는 손님들, 애경을 친절하다고 생각해 주는 고객분들도 분명히 계실 거라고 믿는다.
이번 신학기는 매우 성공적으로, 나름 역대급 기록을 경신하며 마무리를 했다.
불친절한 주인의 불친절한 문구점으로서는 너무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정말 파김치가 된 것처럼 피곤하지만, 기분은 날아갈 듯하다.
애경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늘 누구에게나 친절한 문구점 아줌마가 아닌, 때로는 불친절한 인간적인 문구점 아줌마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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