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에게는 두 개의 얼굴이 있지 않을까?
최소한 두 개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나, 저런 나 모두 합하면 누구나 몇 개씩의 얼굴은 지니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몇 개의 얼굴을 갖고 있는 것일까?
출근하면서 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장착한 또 다른 나로 변신한다.
대부분 기분 좋을 때의 나는 이 착하고 살짝 맹해 보이는 얼굴로 지낸다.
그러기에 나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너무 착해서 살짝 모자라 보이는 그런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을지 모른다. 난 내가 조금 손해 보는 게 싸우는 것보다 낫다는 주의이니 말이다.
하지만, 나도 항상 이렇지만은 않다.
뭔가 불합리한 일을 당할 때라든가, 기분 나쁠 때는 갑자기 호흡이 느려지고 착 가라앉아 순식간에 엄청 논리적인 사람으로 변하기 때문에, 평소 나를 만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상대방이 당황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렇듯 누구나 몇 개의 얼굴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가끔 떠오르는 누군가의 두 얼굴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학창 시절 나는 평소 존재감이 없는 조용한 아이였다.
존재감이 없어서 왕따나 은따를 당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일까?
작지도 크지도 않은, 살이 너무 찌지도 마르지도 않은 중간 체형.
너무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그야말로 평범하고 흔한 얼굴.
그런 외형적인 조건들이 존재감을 지웠던 걸까?
반에는 정말 뚱뚱한 친구가 하나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 친구는 대놓고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고, 일진 무리들의 공식화된 놀잇감이기도 했다.
한창 뭔가가 끓어오르는 사춘기 까까머리 중학생 녀석들의 비뚤어진 욕망의 분출이 그렇게 어긋난 괴롭힘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돼지 냄새난다며 우유를 머리에 붓기도 하고, 걸어가는 그 친구에게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낄낄대기도 했다. 그 친구가 불쌍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대 놓고 편을 들 용기가 없는, 한편으로는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를 대다수의 반 아이들은 그렇게 방관자가 되었을 것이다.
어느 날, 나는 그날따라 마지막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두통이 몰려왔다.
이제 하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참아 보려 했건만 왼쪽 머리가 욱신욱신 아파서 식은땀까지 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선생님께 이야기를 하고 보건실로 가야 했다.
두통약을 먹고 누워 있다가 그만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잠시 후 잠에서 깨어나 보니, 보건실 선생님은 안 계시고 수업 시간이 끝나 있었다.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로 달려갔더니 아이들은 이미 하교를 하고 난 뒤였다.
난, 서둘러 가방을 둘러메고 교실을 나섰다.
햇살은 무심하고 따스하게 세상을 향해 내리쬐고 있었고, 아이들이 빠져나간 운동장은 고요하고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우리 학교 건물은 디귿자 모양으로 되어 있는 빨간 벽돌로 지어진 옛날식 건물로 아이들이 출입할 수 있는 주 출입문이 가운데에 있고, 양쪽으로 부 출입문이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왼쪽에 있는 부 출입문으로 나서면 교문과의 중간쯤에 오래된 창고 건물이 하나 있다. 아이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으로는 그곳이 오래전 화장실이 있던 자리라고 했다.
그곳에서 비 오는 날 누가 빠져 죽었다던가, 그래서 비만 오면 그 건물에서 아이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가 아이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유독 그쪽은 해가 들지 않고 그늘이 져있어 더욱 그 전설이 그럴싸하게 생각되기도 했다.
창고 건물을 막 지나가려는데 어디선가 "야옹~ 야옹~" 하는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고양이를 좋아하는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따라 창고 건물 뒤편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나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 말았다.
늘 괴롭힘을 당하는 뚱뚱한 친구가 거기 있었고, 고양이의 애처로운 울음소리도 거기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친구의 표정도, 그 고양이의 모습도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다.
어떤 기이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내 입을 스스로 틀어막고 살금살금 뒷걸음질을 쳐서 그 자리를 빠져나와 교문까지 전속력으로 숨이 차도록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 후 그 아이가 괴롭힘당하는 걸 보면서도 나는 더 이상 그 아이를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때 나는 무엇을 본 것일까? 제대로 본 것일까?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내가 봤던 그 광경이 제대로 본 건지, 잘 못 본 건지 확신할 수가 없다.
그날 내가 본 건 고양이의 눈에서 흐르는 피와, 뚱뚱한 그 친구의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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