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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토끼 Mar 18. 2023

꽃샘 추위

새해 들어 몰아닥친 작은 파도는 사실 겉으로는 안온한 척했지만, 윤주의 마음을 헤집어 놓았다.

경제적 자유를 누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돈에 휘둘려 현실이 휘청거리는 그런 삶은 살지 않을 정도의 여유는 지금 이 나이에 갖추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지금 자신의 모습은 이게 뭐란 말인가!

애써 부정하고 싶었던, 결코 끄집어 내고 싶지 않았던, 그동안 억지로 긍정과 끌어당김을 최대한 잡아당겨 유지해 오던 팽팽한 마음의 끈이 툭 떨어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희망 회로를 돌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모든 의식을 끌어모으고, 아침저녁으로 확언을 쓰고, 듣고, 마음속 일렁이는 파도를 가라앉혀 왔던 필사(必死)의 노력들이, 스스로 눈 가리고 있던 최면이 자꾸 스멀스멀 풀리려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너의 바닥을 인정하라고, 너의 현실을 직시하라고, 자꾸만 윤주를 들썩거렸다.


그동안 그렇게 애써왔던 나의 마음 다스리기가 이렇게 무너져 내리면 안 되는 거다.

그렇다면 요 몇 년간의 나의 노력이 물거품이란 말인가!!

결코 이 뇌의 간사함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된다. 왜냐하면 나는 포유류 뇌의 안정이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나약함에 속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의 뇌를 활용해서 변화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윤주는 스스로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했다.


그동안, 잠재의식에 심기 위해 매일 해왔던 노력들이 정말 이렇게 쓸모가 없는 것이었단 말인가?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꾸 이 감정 뒤에 숨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대로 있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두 마음이 계속 맞물려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중이어서 윤주는 몸만 왔다 갔다 할 뿐, 할 일이 많은 이 시기에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시간을 축내고 있을 뿐이었다.


빨리 새로운 시작을 하라고 마음은 말을 하고 있었고, 뇌는 그냥 쉬어주라고, 지금도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노라고 자꾸 유혹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둘이 정말 너무나 치열하게 경합을 벌이고 있어 윤주는 어찌해야 할까 정리가 필요했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느라 머릿속은 혼란스러웠고, 자꾸 당이 당겼다.


평소라면 하나만 먹어도 질렸을 초코 브라우니와 마카롱을 커피와 함께 계속 욱여넣고 있었다.

그럼에도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건 윤주 스스로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 Nile, 출처 Pixabay                                


시간은 야속하게 재깍재깍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며 계속 일정하게 흐르고 있었다.

겨우내 앙상했던 메마른 나뭇가지 끝에 뾰족이 내민 새싹이 봄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양지바른 곳에서는 하얗거나 은은한 핑크색 매화꽃이, 노란 산수유 꽃이 이쁜 얼굴로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래, 어김없이 봄은 윤주에게도 다가왔던 것이다.

하지만, 꽃샘추위라는 손님을 같이 데리고 왔다.


언제나 그렇듯 봄은 쉽게 살랑살랑 오는 법이 없다.

이제 봄이라고 마음 놓으려는 순간, 매섭고 차가운 바람과 함께 꽃샘추위는 우리를 찾아온다.

맞아, 그렇지, 그런 거지...

꽃샘추위는 다시 생각하면 이제 봄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겨울을 이겨낸 우리에게 그 혹독했던 추위를 상기시켜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너는 그 시린 바람을 헤치고 지금 이곳에 와 있는 그런 존재라고....


윤주는 차가운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지금 나의 계절에도 꽃샘추위가 찾아온 것뿐이구나.... 그뿐이구나....

지금의 시련은 이 추위만 이겨내면 곧 따스하고 화사한 빛나는 봄이 찾아올 거라는 친절하고 스윗한 힌트였구나....


윤주는 얼굴에 스치는 차가운 바람 앞에서 신발 끈을 질끈 동여매고 바람을 향해 한걸음 내 디뎌본다.

어제보다 더욱 만개한 꽃들이 꽃샘추위의 쌀쌀한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윤주를 향해 활짝 미소 짓는다.


어제는 이미 지나간 과거,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 그러니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기로 하자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해 본다.

윤주는 불어오는 꽃샘바람을 헤치며 자신에게 주어진 오르막길을 힘차게 달리기 시작한다.

바람은 차지만, 햇살은 따스한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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