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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토끼 Mar 25. 2023

인연(因緣)

가게를 하는 윤주는 가끔 드는 생각이 있다.

사람과도, 물건과도 어쩌면 모든 우주의 섭리가 인연이라는 끈으로 이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들이 인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니 초조하거나 불안해할 일은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한동안 팔리지 않던 커플 인형이 있었다.

이 커플 인형이 처음 입고 되었을 때는 들어오는 대로 톡톡 손님들 손에 들려 나가던 나름 힙한 상품이었다.


수제느낌이 나는 둥글넓적한 얼굴에 부드러운 털실로 된 갈색 머리에 모자를 쓴, 청바지와 체크 셔츠를 입고 깃발을 든 남자 인형과, 구불거리는 노란 머리에 헤어밴드를 두르고 청 원피스를 입고 작은 곰인형을 들고 있는 여자 인형이 커플처럼 구성된 인형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장식장 한 귀퉁이에서 이 커플 인형은 주인을 만나지 못한 채 한동안 먼지가 쌓여갔다.


윤주가 가끔 먼지 쌓인 포장지를 새걸로 교체해 주는 동안 이 인형 커플은 그저 가게 안의 장식품처럼 늘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빈티지한 인형이었기에 어쩌면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더 있을 수도 있겠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화창한 오후, 한 차분해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다.

한참을 둘러보시다가 그 커플 인형을 보여달라고 하시더니 얼마냐고 물어보신다. 

이제서야 이 커플 인형이 주인을 만났구나 윤주는 생각했다.

아주머니는 "서재 책들 사이에 진열해 놓으면 예쁘겠죠?" 물어보신다. 

늘 붙어 있던 아이들이라 따로 하나만 어딘가로 팔려갔다면 왠지 마음이 안 좋았을 거 같다는 생각에 한 쌍을 같이 데려가시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어느 햇살 따스한 서재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들 한편에 사이좋게 자리하고 있을 인형 한 쌍이 오늘따라 눈에 아른거리는 윤주였다.

이렇게 작은 인형 하나도 인연이 닿아야만 판매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가 사는 삶이야 어떻겠는가!

이사를 할 때도 인연이 닿는 집이 있듯, 사람도 그러할 것이다.

불교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500겁의 인연이 닿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1겁이라는 시간은 반경 15km²의 성 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운 후, 100년에 1알씩 집어 내어 그 겨자씨가 다 없어지는 시간보다도 더 긴 시간을 말한다고 한다.


옷깃만 스쳐도 그러할진대, 가게를 찾아오시는 손님 한 분 한 분은 아마 윤주와 전생에 어떤 깊은 인연들로 이어져 있던 분들은 아니었을까?


5~6세 되어 보이는 꼬마와 아빠가 같이 가게를 찾아왔다.

꼬마가 포켓몬 카드를 사려고 하니, 아빠가 놀지도 않고 버리면서 그걸 왜 사냐고 한다.

꼬마는 이번에는 카운터에 놓여 있는 키링 캡슐을 사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 캡슐은 포켓몬 키링이 아닌 춘식이 키링 캡슐이었다. 지난번에 포켓몬 키링 캡슐을 산다고 하니, 아빠가 있는 거 또 나오면 어떡하냐고 못 사게 한 기억이 떠올랐다.

아빠는 아들과 함께 그렇게 가게 문을 나선다.

참, 저 손님은 우리 가게와 인연이 없는 분이네~

윤주는 그렇게 생각했다.


언젠가 그 꼬마와 아빠에게도 인연이 닿는 물건이 있을 때가 있겠지....

옷깃만 스쳐도 1겁의 인연이라니 이 꼬마와 아빠와는 몇 겁의 인연으로 이어져 있는 것일까? 올 때마다 물건을 구입하는 건 아니지만, 벌써 몇 번째 가게를 찾아오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가게를 찾아와 물건까지 구입하시는 손님들이 더욱 감사한 윤주였다.


어느 날, 그 꼬마가 아빠와 다시 가게를 들렀다.

다행히도 꼬마가 원하는 포켓몬 키링 캡슐이 있었고, 꼬마는 세심하게 캡슐 하나를 골랐다. 저 캡슐안에 꼬마가 원하는 캐릭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윤주는 생각했다.

드디어 몇 번이나 어긋났던 꼬마와 포켓몬 키링의 인연이 닿는 순간이었다.


꼬마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가게안에 너울거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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