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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토끼 Apr 29. 2023

출근길 풍경

나는 걸어서 출퇴근을 한다.

집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문구점이 있어, 걷는 동안 매일 변하는 하늘의 색깔과 구름의 모습, 나무들의 변화를 관찰하고, 바쁜 출근길의 활기찬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출근길 즐거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요즘 같은 봄날에는 길가에 화사하게 핀 꽃들이 또 하나의 기쁨을 준다.

활짝 핀 영산홍들이 다양한 색채로 어우러져 눈이 환해진다. 


집에서 나와 3, 4분이면 첫번째 교차로를 만난다.

매일 아침 지나는 이 사거리는 구도시와 신도시로 나뉘는 분기점이다. 이곳을 기점으로 위쪽은 구도시, 아래쪽은 신도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나는 구도시에 살고 있고, 신도시에 가게가 있다.

그런데, 신도시와 구도시를 연결해 주는 대중교통 체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학생들이 통학하기가 너무 불편하다. 

주로 구도시쪽에 중,고등학교가 몰려 있어 부모님들이 차로 데려다 주지 않으면, 30분 넘는 거리를 걸어다녀야만 한다. 그러다 보니 아침 출근길에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초록색 신호를 받고 걸어가는데, 자전거를 탄 중학생 소녀가 따릉따릉 옆을 스쳐 지나간다.

횡단보도가 끝나는 지점에  또 다른 자전거를 탄 소녀가 한쪽 다리를 자전거 페달에 얹고 왼쪽 건널목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조금 후에 한 소녀가 역시 자전거를 타고 두 소녀뒤에서 대기중이다. 

하필 모두 같은 체육복을 입은 자전거를 탄 소녀 셋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풋풋해서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 solebicycles, 출처 Unsplash


한 남학생이 바퀴가 얇은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씽씽 달려간다. 

새로 지은지 몇년 안된 깔끔하고 세련된 상가 건물들이 오른쪽으로 줄지어 서있고, 왼쪽으로는 가로수와 차도 건너편에 아파트가 빼곡히 자리잡고 있다. 

출근길 차량들도 신호에 따라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모두 저마다의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4월의 날씨가 왜이리 변덕스러운지, 어제는 더워서 여름같더니 오늘 날씨는 바람이 불고 쌀쌀하다.

예년보다 일찍 만개한  이팝나무 꽃들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며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인데, 신호등을 세 번이나 만나야 한다.

큰 사거리 신호등하나, 그리고 작은 사거리 신호등 두개.


처음에는 첫번째, 두번째 신호등을 지나 세번째 신호등까지 초록불로 한번에 통과를 하려면 시간이 촉박해서 중간쯤에 마구 달려야했다.

컨디션이 좋을때는 뛰었지만, 컨디션이 별로 일때는 그냥 천천히 걸어서 다음 신호를 기다려서 건너기도 했다.

이상하게 매일 건너는 사거리인데, 어느 날은 여유가 있고, 어떤 날은 뛰어야 한다.

신호등이 켜지는 시간이 달라지는 걸까? 란 생각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럴리가.... 생각해 보니 내 걸음이 문제였다.


하루는 내 걸음이 경쾌했지만, 다음 날은 발걸음이 한없이 느려졌던 것이었다.

그래서 늘 같은 거리, 같은 교차로를 건너는 데도 여유있게 건너거나, 뛰어야 하는 날이 있던 거였다.

그런데, 요즘은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신호까지 모두 가볍게 초록불인 상태에서 한번에 건너간다.

아마도 내 발걸음이 조금 빨라졌나 보다.




어쩌다 나는 아는 이 하나도 없는 이곳 까지 와서 문구점 아줌마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분명 내 인생인데, 나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는 현실속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이렇게 특별할 것 없는, 써지지 않는 글을 오늘도 쥐어짜내어 끄적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건 아마도 그저 평범한 문구점 아줌마로 살지 않으려는 나의 처절한 발버둥일 수도 있다.


처음 교차로 횡단보도에 서 있을 때만 해도 여긴 어디이고, 나는 왜 여기 있는 것일까란 생각에 나도 모르게 속으로 울컥하곤 했었다.

그럴때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어느 때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어느 날은 멋진 구름들로 작품을 만들고, 또 다른 날엔 잔뜩 젊잖게 무게를 잡은 회색빛 얼굴로 나를 한결같이 지켜봐 주고 있었다. 그렇게 하늘을 올려다 보면 왠지 모를 위안을 받곤 했다.



매일 걷는 출근길, 매일 보는 같은 풍경들, 늘 어제와 같은 거리를 지나 다니지만, 나는 더이상 어제의 나로 살고 싶지 않다.  

어제라는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오늘을 맞이 하는 항상 새로운 나로 나아가고 싶다. 

어쩔수 없이 어제보다는 나이들고, 어제보다 낡아 가겠지만, 그 속에서 조금 더 현명해지고, 조금 더 성장하고, 조금 더 행복하고 싶다. 


그렇게 매일 매일 새로운 내가 되어 출근길 풍경을 누리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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