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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토끼 May 13. 2023

지켜지지 않은 약속

지난주, 글을 발행하지 못했다.

매일 글을 발행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분들에 비하면 일주일에 한편의 글을 쓰는 건 너무 쉬울 줄 알았다.

설마 일주일에 한편의 글도 완성 못할 일은 없으리라는 자만심이 있었다.

작년에 <문구점 아줌마의 세상 이야기>도 주 1회씩 꼬박꼬박 연재했으니 말이다.

지금 내 스마트에디터에는 20여 개의 글이 저장되어 있긴 하다.

하지만, 한두 줄 달랑 쓰여있거나, 반 정도 이야기가 진행되었거나, 결말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았거나 하는 이야기들뿐 이어서 발행을 누를 수 있을 만한 글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한 주 동안 새로운 글을 단 한 줄도 쓸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한 주, 한 편의 이야기를 쓰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말았다.

어쩌면 이렇게 될 줄 미리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뭔가 마음이 정리가 안되고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2023년을 맞아 나는 뭔가 올 한 해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보내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

올 초 이사를 무사히 마쳐 일단 사는 환경이 바뀌었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은 이전의 나와 크게 바뀐 게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나로 살 수 있는지, 좀 더 성장하는 삶을 살 수 있는지 그걸 고민하고 있는 중이었다.

게다가 이상하게 글이 늘지 않는 것도 또 하나의 고민이었다. 


내가 쓴 글들이 이상하게 맘에 들지 않았다.

이만하면 괜찮아라는 생각이 드는 글이 별로 없었다.

이런 걸 글이라고 발행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마 요즘 나 자신이 맘에 들지 않아서 그런 걸 테다.

게다가 상상력이 어찌나 빈곤한지, 엽편소설은 단 한 편도 쓸 수가 없었다. 

그동안은, 스스로의 단점까지 이게 나인걸 어쩌라고? 정신으로 살아오던 나였는데, 요즘은 왠지 내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1g의 살도 덜어내지 못한 채, 번번이 식탐에 지기만 하는 자신도, 뭔가 술술 매끄럽게 매력적으로 써지지 않는 글도 자꾸 스스로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런 내가 무슨 글을 쓴다고....

자꾸 초라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초라해지는 자신을 방치해 두고 있었다. 그러니, 무슨 글이 써지겠는가!

발행 버튼을 누르는 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행위였다.

잘 쓰지는 못했어도 나의 진심이 담긴 글이니 괜찮다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 행위였다.


그렇게 약속을 지키지 못한 지난주에 나는 문구점 문을 연 후 처음으로 평일날 문을 닫고 바다를 보러 다녀왔다. 비 예보가 되어 있어 잔뜩 찌푸린 하늘 아래 파도는 세차고 높았다.

그 바다를, 잔뜩 성나 으르렁대는 파도의 세찬 소리를 하염없이 눈에 담고, 가슴에 담고 돌아왔다.



그래도 마음속 공허가, 뻥 뚫린 구멍이 메워지질 않았다.

생각해 보면 남들이 통과의례처럼 지나가던 갱년기를 나는 사느라 바빠 경험하질 않았었다.

갱년기 따위 느낄 겨를조차 없이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그 제2의 사춘기가 느지막이 내게 온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거라면 이제서야 좀 나를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말일까?


나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건 뭐가 있을까? 그래서, 책을 몇 권 읽었다.

조 디스펜자의 <브레이킹, 당신이라는 습관을 깨라>가 와닿았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면서 어떻게 다른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

폐부를 찌르는 문장이었다.

조 디스펜자 박사는 명상을 권유했다.

이번에는 명상에 관련된 책을 빌려왔다.

그렇게 명상을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았다.


처음이어서 잘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기에 영상의 힘을 빌려 아침에 일어나 일단 5분 명상을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호흡도 엉망이고, 머릿속도 엉망이다. 

이 명상을 통해 나는 더 나은 나로 거듭날 수 있게 될까?

지금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될까?

그래서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지만 발행 버튼을 누를 수 있을 만큼의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을까?

어쨌거나 나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스스로 어겼다.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지켜지지 않은 채 스러져 가는 많은 약속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지켜지지 않은 약속에 내가 한 표를 더하고 말았다. 

나 스스로에게 했던 약속이었기에, 더 화가 나고 속상하기도 하지만 이미 어그러진 약속을 부여잡고 있으면 뭐 하겠는가!아예 그냥 한 달을 쉬어갈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글을 발행하지 못한 일주일 내내 마음이 무거웠기에 그 무게를 더할 자신이 없었다.


약속은 그 약속이 지켜졌을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온전하게 채워진다고 생각한다.

약속을 지키는 데 있어 개인의 사사로운 사정은 핑계에 불과하다. 

지켜졌는가 지켜지지 않았는가의 결과로 존재하기에 지켜졌을 때 더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일이 된다. 


이미 깨져버린 약속은 돌이킬 수 없다. 

그러니, 그 깨져버린, 지키지 못한 약속을 곱씹어 과거의 후회를 지금 현재에 가져올 필요는 더더욱 없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은 이미 지난 과거이고, 그 약속을 깬 나 역시 이미 지나버린 과거의 나이니까....

그래서 이제 지켜지지 않은 약속은 잊어버리기로 했다.

앞으로 매주 글을 쓰겠노라 약속하지는 않겠다.

이미 지켜지지 않은 약속이므로....


그저 매주 무사히 발행 버튼을 누를 수 있을 만큼의 나에 대한 사랑과 용기가 있기를, 그래서 마음에 차지 않는 글일지언정 보듬어 안을 수 있기를, 그렇게 나의 글을 잉태할 수 있기를 그저 바랄 뿐이다.

지금까지 발행 버튼 누르는 일이 이렇게나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못난 글을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발행 버튼을 누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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