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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토끼 May 27. 2023

도깨비한테 홀린 날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우리 어렸을 적의 운동회 풍경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학년별로 돌아가면서 체육대회가 열리는 5월이다.

문구점 앞 초등학교가 요즘 체육대회 시즌이다.

달리기, 줄다리기 등을 하는 걸 보면 운동회와 별반 다르지 않긴 하지만, 운동회의 그 흥겨움과 설렘은 많이 축소된 듯하다.

요즘은 아이들만의 잔치로 끝이 나기 때문이다.

엄마들 몇몇 분이 문 닫힌 학교 앞에서 옹기종기 아이들의 체육대회를 구경하기도 한다.

달리기 시합에서 1등을 해도 아무런 상이 없는 점도 참 아쉽다.


몇 주 전 가게 앞 학교 선생님께서 6학년 체육대회가 끝나는 날 아이스크림을 좀 배달해 줄 수 있느냐고 문의 전화가 오셨다.

학교가 바로 가게 앞이니 어려울게 뭐가 있을까?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주문을 받았다.

6학년 아이들이 모두 230명인데 이틀에 걸쳐 체육대회가 열려서 목요일 115개, 금요일 115개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우리 가게에 납품하는 아이스크림 과장님께 필요한 양을 말씀드렸더니, 문제는 우리 가게 아이스크림 냉동고 크기가 작아서 한꺼번에 그 양을 넣어둘 수가 없다고 하셨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목요일, 금요일에 반씩 들어와 주겠다고 하셔서 해결이 되었다.

아이스크림은 한 상자에 35개씩 들어 있다. 낱개로 들어올 수는 없으니 8박스를 4박스, 4박스 나눠서 가져다주겠다고 하신다.


드디어 목요일!!

탱크보이 배 맛, 키위맛 반반으로 들어와서 3개의 박스에서 각각 6개를 빼고, 한 개의 박스에서 7개를 빼면 25개가 빠지니 남은 수량은 115개일 터였다.

그래서 각각 그 수량만큼 빼서 뺀 수량을 체크를 했다.

그런데, 두 번을 세도 25개가 아닌 27개였다.

뭐지? 내가 왜 두 개를 더 뺐을까? 분명히 세 박스에서 6개, 한 박스에서 7개를 뺀 것 같은데.... 생각하며 2개를 상자에 다시 넣었다.


그리고 산책을 다녀왔다.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여 흐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비 예보가 있었다.

해가 쨍쨍 내리쬐는 것보다는 시원해서 좋지만, 비가 많이 오면 안 될 텐데....

작년보다 유난히 흐드러지게 피어난 빨간 장미들을 감상하며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다.

자리에 앉아 있는데 아까 그 2개가 자꾸 거슬리는 거였다.

안되겠다 싶어 남은 박스의 아이스크림 개수를 일일이 다 세어 확인을 했다.

한 박스는 29개, 다음 박스 29개, 다른 한 박스도 29개 그런데 남은 한 박스에 30개가 들어 있었다.


모두 합하면 117개?

이상하다. 왜 두 개가 더 들어있을까?

혹시 몰라 아까 빼놓은 아이스크림을 다시 세어 보았다.

그런데, 이럴 수가!!

25개가 남아있어야 할 탱크보이가 23개밖에 없었다.

두 번, 세 번을 세어보아도 23개였다.


그럼 박스에 두 개 더 들어 있는 게 맞았네? 결국 두 개를 다시 뺐다.

애초에 처음에 제대로 아이스크림을 뺐던 거였다.

그런데, 그때는 왜 25개가 아닌 27개였지?

분명 두 번을 세었는데도 27개였단 사실이 여전히 의아하기만 했다.


© artic_studios, 출처 Unsplash


그때 갑자기 하늘이 컴컴해지더니 비가 쏟아졌다.

이런, 비가 이렇게 많이 오면 안 되는데~~~

세차게 쏟아지던 비가 다행히도 10여 분 후에 뚝 그쳤다.

잠시 후에는 보슬보슬 내리더니 급기야 하늘이 조금씩 개기 시작했다.


나는 시간에 맞춰 아이들이 시원하게 먹을 아이스크림을 배달하러 갔다.

운동장에는 반마다 빨강, 보라, 흰색, 핑크 각각의 칼라로 반티를 만들어 입은 아이들이 나를 보며 입을 모아 크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 일부 아이들이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며 나를 반겼다. 아니, 아이스크림을 반길 걸까?

이렇게 무사히 아이스크림 배달을 마쳤다.




살다 보면 누구나 그런 날들이 있다.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던 물건이 잠시 후에 마치 누군가 몰래 갖다 놓았던 것처럼 그 자리에 떡하니 있었던 경험들 한두 번은 있지 않을까?

오늘이 바로 그런 날들 중 하루였다.

도깨비에게 잠시 홀렸던 그런 하루 말이다.


도깨비는 어둡고 습한 것을 좋아해 비가 내리는 곳에 주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습도 높고 흐린 오늘 도깨비가 나타나 잠시 나를 홀렸던 것일까?

어쨌든 무사히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전해 주었으니 되었다.

행복하고 신나게 체육대회를 마치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마지막 초등학생으로서의 추억을 한 뼘 쌓을 수 있으면 되었다.

도깨비가 이 정도의 장난으로 그쳐 주어 그 또한 너무 감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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