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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토끼 Jul 01. 2023

구름이 흐르듯

매일 하루에 한 번 이상은 하늘을 본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나의 습관 중 하나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곳 평택에 이사 와서부터 생긴 습관인 것 같기도 하다.

그전에는 하늘 한 번 쳐다볼 새도 없이 그렇게 살았으니까....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곳....

뻥 뚫린 도로와 잿빛 아파트들 사이에서 마치 나만의 섬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늘 사람들을 만나며 살지만, 정작 마음 털어놓을 지인은 주위에 없다.


매일 출퇴근을 하며 뭔지 모를 답답함과 외로움을 함께 느끼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 시선은 저 멀리 하늘을 향해 있었다.

청명한 하늘에 앙증맞게도 구름이 매일매일 다른 얼굴을 하고 나를 맞아 주었고, 그렇게 하늘을 보며 구름을 보다 보면 맺힌 마음이 구름처럼 천천히 조금씩 흘러가기 시작했다.


구름은 지구의 대기에 떠다니는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서 생긴 자연현상 중 하나이다.

지표면과 닿아 있으면 안개, 지표면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구름, 산중턱에 구름이 걸려있을 때 그 산에 올라가 있는 사람에게는 안개가 된다.


구름의 모양은 우리네 인생사처럼 참 다양하다.

뭉게구름, 솜털구름, 양떼구름, 새털구름, 비늘구름, 면사포구름, 먹구름.... 생긴 모양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붙일 수 있다.

평택에 와서 사람과의 관계는 그저 문구점 주인과 손님으로서의 관계가 전부일뿐이었다. 

하지만, 사람 사는 일이 늘 그렇듯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

덕분에 나는 저절로 자연과 친해지게 되었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구름을 보는 기쁨을 알게 되었고,

그저 '새'로 지칭되었던 새들이 얼마나 다양하게 존재하는지를 알게 되었고 - 아쉽게도 그 많은 새들의 이름까지는 아직 모른다 -,

평소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많은 나무들도 발견하게 되었다.  

이팝나무, 조팝나무, 십자모양의 하얀 꽃이 피는 산딸나무,  마치 공작새 깃털 같은 모양의 꽃을 피우는 자귀나무, 하얀 종 같은 꽃이 피는 때죽나무도 모두 새로 알게 된 나무들의 이름이다. 

하지만 아직도 모르는 나무 투성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참 자연에 둔감한 사람이었다.

지금도 초록은 그저 풀이요 나뭇잎이며 가게 앞 공터에 누군가 심어 놓은 작물들도 그 이름을 잘 알지 못한다.

키가 큰 옥수수와 약간 보랏빛을 띠는 녹색식물이 가지라는 건 알지만, 다른 것들은 열매가 달리기 전엔 모두 같아 보인다.

나에게는 사람도 그렇다. 안면인식장애까지는 아니지만, 사람도 여러 번 만나야 확실하게 인식하는 면이 있다. 가게 주인으로서는 핸디캡이라고 할 수 있다.


오죽하면 마스크를 쓰고 다닌 몇 년 동안 그전 얼굴을 잊어버렸을 정도일까?

가게 건너편 베이커리카페 사장님이 마스크를 벗었을 때, 나는 계속 새로 온 알바생으로 오해를 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나에게 인사를 하는 알바생을 보고 처음 보는 알바생이 나를 어떻게 알고 인사를 하지? 하다가 나중에서야 그 알바생이 사장님이었다는 걸 깨닫게 될 정도였으니 아마 안면인식장애의 전 단계는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손님들도 마찬가지이다.

마스크에 가려져 있던 입매 부분이 드러나자 더 이상 내가 알던 분이 아니라 모두 새로운 손님이 되었다. 

안면인식장애라기보다 나의 관찰력 부족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사람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일지도....


© zvessels55, 출처 Unsplash


하지만, 구름을 관찰할 때는 세심한 편이다. 

구름은 어느 날은 생각보다 빠르게, 때로는 답답할 만큼 느리지만 쉬지 않고 흐른다.

오늘 나의 하루도 쉼 없이 흘러간다.

흐르는 구름을 잡을 수는 없다.

살면서 가끔은 너무 애쓰지 말고 

저 하늘의 구름처럼 자연스럽게 흘려보낼 줄 아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구름이 흐르듯, 나의 삶도 어딘가로 흘러간다.


구름이 비가 되어 흐르고 그 물방울들이 다시 수증기로 모여서 구름이 되듯 자연은 늘 돌고 돈다. 봄이 지나 여름이 오고 무더운 여름을 이겨내야만 결실의 계절 가을이 온다. 그 가을 뒤엔 휴식과 생명을 안으로 품은 겨울이 찾아온다. 이렇듯 자연은 끊임없이 순환을 거듭한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구름이 흐르듯 그렇게 오늘 하루를, 지금 이 순간을 그저 묵묵히 흐르며 살아내 보기로 하자.

오늘 나는 하늘에 떠 있는 한 조각 구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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