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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토끼 Jul 15. 2023

장마철 풍경

요즘은 자연의 순리대로 매년 찾아오는 여름 장마철이다.

장마철의 날씨는 두 가지로 나뉜다.

비 갠 날, 비 오는 날.


비 갠 날은 기온이 30도가 넘어가지 않아도 습도가 높아 끈적하고 덥다.

후덥지근하고 불쾌지수가 높아진다. 햇빛이라도 내리쬐면 그야말로 숨이 턱턱 막힌다.

방과 후 문구점에 들어오는 아이들의 얼굴은 빨갛게 익어 있다.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있기도 하다.

탱글탱글한 두 볼은 마치 토마토 같기도 하고, 잘 익은 사과 같기도 하다.


나는 사실 에어컨 바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하루 종일 에어컨 밑에 있다 보면 정신이 몽롱해지고 몸이 나른해진다.

이런 상태일 때 하이텐션 삼총사가 문구점에 들어오면 상대하기가 살짝 버겁다.


초등학교 3학년 같은 반인 유진이, 나은이, 아영이는 늘 셋이 붙어 다닌다.

사는 아파트도 다 다른데, 어떤 점이 서로 마음에 들어 단짝 친구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긴 하다. 그건 바로 텐션이 다른 아이들보다 유난히 높다는 점이다.

같이 다니다 보면 행동이며, 말투며, 억양마저 닮아서 어느 한 아이의 텐션에 물든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삼총사들은 내가 자신들의 이름을 알아주고 불러주는 걸 좋아한다.

처음에 각자의 이름을 알려주면서, 올 때마다 내가 이름을 기억하는지 확인하고는 했다.

아이들은 나에게 그저 손님 1,2가 아닌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었나 보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 서로 싸운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조잘대다 떠난다.

참 별일 아닌 걸로 다투기도 잘하고 화해도 잘하는 삼총사이다.


나에게로 와 꽃이 되고 싶었던 아이들이지만 아이들은 참새를 더 닮았다.

나는 매일 참새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방앗간 주인이 된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장마철 하면 대부분의 날씨는 오늘 같이 비 오는 날이다.

우산을 쓰고 평소 다니던 산책길을 한 바퀴 돌고 왔다.

비를 머금어 한결 진하고 깊어진 오솔길을 나 홀로 걷는 기분은 나름 괜찮다.

아무도 없는 나만의 숲을 가진 기분이 들어 부자가 된 것만 같다.




중간에 점점 빗줄기가 거세지더니 가게에 다 왔을 때 쏴아하고 본격적으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역시 나는 운이 좋네 생각하며 거세게 쏟아지는 장맛비를 바라본다.

가게 앞 아스팔트 위로 타닥타닥 쏟아져 내리는 비가 마치 프라이팬 위의 기름이 끓는 것처럼 보인다.

이 비를 뚫고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려온다. 새들은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는다....


가게 앞 공터에 누군가 몇 가지 작물을 심어 놓았다.

안쪽으로 여러 가지 작물이 있고 - 이름을 잘 모른다 -, 밖으로 빙 둘러서 옥수수가 심어져 있다.

그 옥수수는 어느새 쑥쑥 자라 벌써 키가 제법 컸다.

기다란 잎자루 안쪽에 아직은 알갱이가 여물지 않은 그저 초록 잎 같은 옥수수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

뜨거운 여름 햇살과 퍼붓는 비를 번갈아 맞으며 이 안에서 알알이 여물고, 맛난 옥수수로 자라겠지....


참 경이로운 일이다.



장마철에 내리는 비는 시원해서 좋다. 하지만, 집중호우가 지속되면 비로 인한 사망이나 침수로 인한 피해가 발생한다.

어찌 해마다 매번 같은 뉴스가 반복되는지, 아무리 대비를 해도 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부족하기만 한 우리네 인간이 아닌가 싶다. 

부디 많은  피해없이 무사히 이 시기가 지나갔으면 좋겠다.


장마철에도 식물들은 쑥쑥 자라고, 아이들도 쑥쑥 자란다.

나도 저 식물들처럼, 아이들처럼 쑥쑥 자라나고 싶다.

그래서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하고 지혜로운, 마음 씀씀이가 넉넉한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지금은 눅눅하고, 꿉꿉한 장마철이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세차게 장맛비가 내리고 있다.

가게 앞 우산꽂이에는 오늘도 주인 잃은 우산 하나가 덩그러니 꽂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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