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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토끼 Aug 05. 2023

주인 잃은 농구공

며칠 전, 가게 문을 막 닫으려고 정리하는 시간에 남매가 들어왔다.

누나와 남동생.

남동생의 손에는 농구공이 들려 있었다.

두 아이는 각자 이것저것 물건을 고르더니 계산을 하고 나갔다.


이미 퇴근 시간이 조금 지나 있어 밖에 내어 놓았던 진열대와 뽑기 통을 가게 안으로 들여놓은 상태였기에 그 아이들이 나가자마자 포스기 마감을 하고 불을 껐다.

신발을 갈아 신고 나와 주 출입문을 안에서 잠그려는 순간, 농구공이 한쪽에 있는 걸 발견했다.

아까 남동생이 들고 있던 바로 그 농구공이었다.


어떡하지? 바로 공을 찾으러 오려나? 그렇다고 언제까지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고....

전화가 오던지 아니면 내일 찾으러 오겠지 뭐~

나는 불을 끄고 문을 잠그고 퇴근을 했다.


다음날 바로 농구공을 찾으러 올 줄 알았는데,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남매는 나타나지 않았다.

왜 공을 찾으러 오지 않지?

설마 어디에 둔 건지 잊어버린 걸까?

나는 농구공이 잘 보이도록 아이스크림 통 위쪽 공간에 농구공을 살포시 올려놓았다.


주인 잃은 농구공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인 잃은 농구공은 가게 한편에 그대로 놓여 있다.

가끔씩 아이들이 질문을 한다.


"이 농구공 파는 거예요?"

"아니~ 누가 놓고 간 거야~~"

"그럼 제가 가져도 돼요?"

"그래도 되겠니?"

"아니요~~~"


아이와 함께 온 엄마도 질문을 한다.


"이 농구공은 새 농구공이 아닌 것 같아요"

"네~ 주인 잃은 농구공이에요. 누가 놓고 갔는데 찾으러 오질 않네요. 왜 안 오는 걸까요?"

"어디 있는지 모르는 거 아닐까요?"


처음에는 그 남매의 얼굴이 또렷하게 기억이 났었다.

자주 오는 단골손님이었으면 금방 알았을 텐데, 어쩌다 오는 아이들이어서 보면 알 수 있지만, 확실하게는 모르는 그런 아이들이다.

여기서 또 약간의 안면인식 장애 초기 상태가 발동이 된다.

시간이 갈수록 이제 그 아이들의 얼굴이 가물가물해진다.

누나랑 같이 온다면 알 수도 있겠지만, 동생이나 누나가 따로 온다면 못 알아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그 아이 중 누구라도 농구공을 잘 볼 수 있도록 눈에 띄게 놔둔 것이다.


농구공은 가격이 저렴하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공이 아직은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쌩쌩하다.

그런데도 아직 찾아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1.  공을 어디서 잃어버린 건지 모른다.  

2.  다른 지역이나 먼 곳에 사는 아이들이다. 

3. 찾아가는 게 귀찮아서 그냥 새로 사기로 했다.  

이 세 가지 중에 해당되기는 할까?


나는 언제까지 이 농구공을 보관해 놓아야 하는 것일까? 한 달? 두 달?

얘들아, 농구공 문구점에 있단다.

빨리 기억해!!

개학하면 올 거니?

얼른 찾아가렴~~



© markusspiske, 출처 Unsplash


<<어느 농구공의 꿈!!>>


한 소년이 있었다. 이 소년은 소심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수줍음이 많아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주위에 친구가 없었다.

소년에게 친구는 오직 생일날 선물 받은 이 농구공뿐이었다.


외롭거나, 속상할 때마다 소년은 농구공을 들고나갔다.

통통 공을 튕기며 드리블 연습도 하고, 슛을 쏴 보기도 하고....

그렇게 땀 흘리며 뛰다 보면 기분이 상쾌해졌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소년은 농구공에게 그날 있었던 하루 일을 종알종알 얘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소년과 농구공은 친한 친구가 되어갔다.


그런데 어느 날 물건을 사러 간 문구점에서 그만 농구공은 그 소년과 헤어지고 말았다.

누나와 물건을 사던 소년이 계산을 하면서 바닥에 내려놓은 농구공을 두고 가버리고 말았다.

어찌 된 일인지 소년은 하루, 이틀, 일 주, 이주, 한 달이 넘어도 농구공을 찾으러 오질 않았다.


농구공은 모두 퇴근하고 조용해진 문구점 안에서 밤마다 소년이 자신을 들고 이 무더위에 양뺨을 빨갛게 물들이며 뛰어놀던 그 순간,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던 그 목소리를 꿈꾸며 소년을 기다렸다.

하지만 소년은 오지 않았고, 문구점 아줌마는 한 달이 넘자 어쩔 수 없이 농구공을 밖에 내놓았다.


지나가던 말썽꾸러기 녀석이 농구공을 날름 주워갔다.

이제 이 농구공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나는 아이스크림 통 진열대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주인 잃은 농구공을 보며 잠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결국 농구공과 소년의 이별로 끝이 나게 될까?

그렇게 되지 않도록 이 농구공이 그 소년을 만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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