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토끼의 북리뷰 - 딸이 떨구고 간 책 읽기
1997년 11월 21일, 베로니카는 드디어 목숨을 끊을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세 들어 살고 있는 수녀원의 방을 구석구석 청소하고, 난방을 끈 다음, 이를 닦았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다.
첫 번째 이유. 그녀의 삶은 이제 모든 것이 너무 뻔했다. 젊음이 가고 나면 그다음엔 내리막길이다. 어김없이 찾아와서는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노쇠와 질병들. 그리고 사라져 가는 친구들. 이 이상 산다고 해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고통의 위험만 커질 뿐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보다 철학적인 것이었다. 신문과 텔레비전을 통해 그녀는 세상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그러한 상황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자신이 세상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미친 사람이란 자기 세계 속에서 사는 사람이야. 정신분열증 환자, 성격이상자, 편집광처럼 말이야. 다시 말해 뭇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이야."
"당신처럼요?"
"하지만, 시간도 공간도 없고 그 둘의 결합만 있다고 믿었던 아인슈타인, 또는 대양 저 너머에 절벽이 아니라 다른 대륙이 있다고 확신했던 콜럼버스, 또는 인간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장담했던 에드먼드 힐러리, 또는 독창적인 음악을 창조해냈고 다른 시대 사람들처럼 옷을 입고 다녔던 비틀스. 이 모든 사람들. 그리고 다른 수많은 사람들 역시 그들 자신의 세계 속에서 살았어."
"미쳤다는 건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해. 마치 네가 낯선 나라에 와 있는 것처럼 말이지. 너는 모든 것을 보고, 네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식하지만 너 자신을 설명할 수도 도움을 구할 수도 없어. 그 나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건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느껴본 거예요."
"우린 모두 미친 사람들이야. 이런 식으로든 저런 식으로든."
이 세상에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