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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파울로 코엘료

감성토끼의 북리뷰 - 딸이 떨구고 간 책 읽기

by 감성토끼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이 책은 작가 자신의 정신병원 입원 경험을 토대로 쓴 소설로 2009년에 미국에서 영화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1997년 11월 21일, 베로니카는 드디어 목숨을 끊을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세 들어 살고 있는 수녀원의 방을 구석구석 청소하고, 난방을 끈 다음, 이를 닦았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다.


슬로베니아 출신 베로니카는 수면제 네 통을 집어 들고, 알약을 물도 없이 한 알 한 알 삼켰다.

그녀의 죽음에 대한 의지는 확고했고, 서서히 정신을 잃었다. 젊고 아름다운 그녀의 나이는 24세였다.

베로니카가 죽기로 결심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 번째 이유. 그녀의 삶은 이제 모든 것이 너무 뻔했다. 젊음이 가고 나면 그다음엔 내리막길이다. 어김없이 찾아와서는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노쇠와 질병들. 그리고 사라져 가는 친구들. 이 이상 산다고 해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고통의 위험만 커질 뿐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보다 철학적인 것이었다. 신문과 텔레비전을 통해 그녀는 세상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그러한 상황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자신이 세상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이 세상을 살기 싫은 이유는 사람마다 다양할 것이다. 한때 죽음을 꿈꿨던 치기 어린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나와 친구는 사람이 나이 먹으면 추해진다는 사실에 절망했고, 당돌하게도 오래 살기 싫다는 말을 했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른까지만 살자고 약속을 했다.


왜 서른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십 대에 죽기는 너무 젊은 느낌이 들어서였을까? 그 당시 서른 살은 우리에게 멀기만 한 미래처럼 보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둘 다 그 나이를 훌쩍 넘기고 어찌됐든 지금까지 살아 내고 있다.



베로니카의 자살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그녀가 눈을 뜬 곳은 빌레트라는 정신병원이었고 그녀는 일주일밖에 자신의 삶이 남지 않았음을 의사에게 듣게 된다.


이곳에서 그녀는 세 사람을 만난다.

한때 미친 듯 사랑했지만, 지금은 어디에 살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한 남자 때문에 우울증과 광기로 입원한 제드카, 40년 동안 변호사로 일하다 공황장애로 입원한 마리아, 브라질 주재 유고슬라비아 대사를 아버지로 둔 에뒤아르는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었다.

"미친 사람이란 자기 세계 속에서 사는 사람이야. 정신분열증 환자, 성격이상자, 편집광처럼 말이야. 다시 말해 뭇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이야."

"당신처럼요?"

"하지만, 시간도 공간도 없고 그 둘의 결합만 있다고 믿었던 아인슈타인, 또는 대양 저 너머에 절벽이 아니라 다른 대륙이 있다고 확신했던 콜럼버스, 또는 인간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장담했던 에드먼드 힐러리, 또는 독창적인 음악을 창조해냈고 다른 시대 사람들처럼 옷을 입고 다녔던 비틀스. 이 모든 사람들. 그리고 다른 수많은 사람들 역시 그들 자신의 세계 속에서 살았어."

"미쳤다는 건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해. 마치 네가 낯선 나라에 와 있는 것처럼 말이지. 너는 모든 것을 보고, 네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식하지만 너 자신을 설명할 수도 도움을 구할 수도 없어. 그 나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건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느껴본 거예요."

"우린 모두 미친 사람들이야. 이런 식으로든 저런 식으로든."


미친 사람의 정의는 무엇일까?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들은 모두 정상인 것일까?

복잡한 현대사회는 점점 정상과 비정상을 확연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점점 광기 어린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일까? 얼마 전 "정인이 사건"만 해도 그렇다.

그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너무도 끔찍하게 정상의 얼굴을 하고 그런 미친 짓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어렸을 때는 흑백이 너무나 분명하다. 좋은 편 나쁜 편의 구분이 명쾌했다.

그런데 자랄수록 세상은 회색으로 물들어 간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그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 복잡한 세상이 어찌 흑백으로만 구분될 수 있으랴만 때로는 그 단순 명료함이 부럽기도 하다.


제드카와 마리아는 자신들의 병을 이겨내고 사회로 돌아가고, 베로니카와 에뒤아르도 사랑의 힘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극복하려 한다.


길어야 일주일밖에 삶이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베로니카와 정신분열로 입원한 에뒤아르는 둘이 함께 사랑의 도피를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결말은 내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나라면 좀 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파울로 코엘료는 사랑이야말로 모든 걸 이겨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과연 이 젊은 연인의 앞날이 어찌 될 것인지는 직접 책으로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감히 죽음을 꿈꾸었던 그 시절의 나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박제되어 있을까? 아니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일까!!

치기 어린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리워진다. 그 빛나던 시절에 같이 죽음을 논하던 친구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하고, 보고 싶다.


이 세상에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

-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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