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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오쿠다히데오|유쾌한 정신과 의사의 환자치료기

감성토끼의 북리뷰 - 딸이 떨구고 간 책 읽기

by 감성토끼
[작가 소개] 오쿠다 히데오

1959년 일본 기후현 기후시에서 태어났다. 기획자, 잡지 편집자, 카피라이터, 구성작가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쳐, 1998년 40살의 나이에 <우람바나의 숲>으로 데뷔했다. 쉽고 간결한 문체로 인간을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잔혹할 만큼 리얼하게 그려내며, 작품마다 독특하고 매력적인 인물을 등장시켜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주로 일본사회의 부조리나 모순을 배경삼아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독특한 스타일과 소재로 일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상당한 인기가 있는 작가이며, 버스나 지하철에서 읽을때 웃음을 참느라 낄낄거리는 자신을 자주 발견할수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런 유머는 특히 단편과 단편의 리듬감과 유머를 유지하는 활극형식의 길지 않은 장편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남쪽으로 튀어>, <한밤중의 행진>)


오쿠다 히데오의 장편소설 <공중그네>는 유쾌한 정신과 의사 이라부 이치로의 상상초월 환자 치료기로 5개의 짧은 단편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된 장편소설이다.


오랜만에 소리 내어 웃으면서 읽었던, 정신과 환자들과 세상에서 제일 독특한 의사 이라부의 이야기였다. 작가 소개를 보고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찌 보면 우울하고, 암울할 수 있는 정신과 환자들을 소재로 이렇게 유쾌하게 풀어낸 오쿠다 히데오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첫 번째 <고슴도치>는 선단공포증을 갖고 있는 야쿠자의 중간 보스 세이지의 이야기이다.

세이지는 언제부턴가 뾰족한 물건들만 보면 공포에 휩싸였다. 젓가락, 포크, 펜, 연필, 이쑤시개, 우산 심지어 꽁치머리를 보고도 증상이 나타났다.

칼을 무서워하는 야쿠자라니~ 세이지는 치료차 이라부의 병원을 내원하게 되었다.


이라부 종합병원의 신경과는 어두컴컴한 지하에 있었다. 구치소가 떠올라 저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들어와요~!" 문을 노크하자 안에서 괴상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셔츠 매무새를 고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몹시 뚱뚱한 중년 의사가 만면에 미소를 띠고, 1인용 소파에 떡하니 버티고 앉아 있었다. 살갗이 흰 바다표범 같은 용모였다. 가운 명찰에는 '의학박사. 이라부 이치로'라고 씌어 있었다. 원장 아들쯤 되나?

"흐흠~ 세이지라고 합니다." 세이지는 가슴을 뒤로 젖히며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 만나는 상대 앞에서는 저도 모르게 그런 식으로 굴게 된다.

"응, 알아. 접수처에서 들었어. 강박신경증이라면서. 폐쇄? 고소? 아니면 도효(스모를 하는 씨름판)?" - 중략 -

"이봐, 까불지 마, 내가 누군지나 알아. 기오이 파 중간 보스라고."

"소용없어. 병원에서는 대통령이든 노숙자든 똑같은 환자거든."

이라부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뜨거운 콧김이 목덜미를 스쳤다. 대체 뭐야. 이 병원.


야쿠자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의사와 간호사. 세이지는 이 기묘한 의사에게 점점 마음의 문을 열고 고민을 털어놓게 된다.


"원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면 잠재적인 건가?"
"잠재적?"
"마음 한구석에 있긴 한데, 보이지 않게 숨어 있는 부분. 예를 들면, 사실은 야쿠자가 적성에 맞지 않을 지도 모른다거나."

세이지는 입을 다물었다. 양미간을 찌푸렸다. 뭐라? 야쿠자가 적성에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욕설을 퍼부어대면서도 한편으론, '이건 내 본모습이 아니야'라고 느낀다거나."

세이지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설마 그럴 리가 없다.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보다도 그런 질문을 받고도 화를 내지 않는 자신이 더 의외였다. 예전 같았으면 곧바로 발길질을 해댈 상황이었다.

"야쿠자 일이라는 게, 말하자면 고슴도치 같은 거잖아. 항상 상대를 위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 그런 일은 누구든 지치게 마련이니. 그 반대급부로 끝이 뾰족하거나 예리한 물건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됐는지도......."


이 소설의 특이한 점은 우리의 괴짜 의사인 이라부가 환자들의 일상에 적극적으로 개입을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도 세이지와 함께 다른 파 중간 보스인 요시야스를 만나는 자리에 같이 참여를 하게 된다.


그런데, 상대편 요시야스에게도 역시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다. 이라부의 도움으로 그 증상을 알게 되고, 세이지는 이런 정신병적 증세를 가진 야쿠자가 자기 혼자가 아님을 알고 그의 선단공포증은 완화가 된다.


"세이짱뿐이 아니었구나. 예민한 야쿠자 선생이."
"조폭이란 게 원래 그런 거야. 모두들 약한 부분이 있으니까 오히려 죽어라 뻗대는 거지."
"그럼 은퇴하는 건 아니구?" 가즈미가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야,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거둬준 은혜라는 게 있고."
"세이짱 네 오야붕, 몇 살이지."
"여든이 넘었지."
"얼마 안 남았네. 은혜 끝나는 것도."
"너 정말...."

화를 낼 수 없었다. 가즈미가 키스를 했기 때문이다.
가즈미의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세이지의 마음속에는 이제 불안감이 하나도 없다.

몇 년 후, 자신은 평범한 쥐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헌데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두 번째 이야기 <공중그네>는 심리적인 문제로 공중그네를 탈 수 없게 된 서커스 단원 고헤이 이야기,


세 번째 <장인의 가발>은 장인의 가발을 벗겨 버리고픈 충동을 억누르느라 힘든 강박신경증을 가진 의사,


네 번째 <3루수>는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하는 스타 야구선수, 다섯 번째 <여류작가>는 자신이 쓰고 있는 주인공이 전에 등장했던 인물인지 헷갈려 구토까지 하게 되는 로맨스 인기 작가의 이야기이다.


이 다섯 가지 이야기는 정신과 의사 이라부가 담당한 정신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는 환자의 이야기들로 각각 하나의 단편집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131회 나오키상을 받았으며,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심지어 연극으로도 상영되었다고 하니 그 인기가 대단해 보인다.

복잡하고, 유기적인 사회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나는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적으로 힘들어지고 있다. 공황장애를 호소하고 있는 연예인들도 많고, 조금만 둘러봐도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는 현대사회.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한 가지 이상의 문제점을 안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심각할수도 있는 정신병적 병리를 유쾌하고 기발하게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작가의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책을 읽을수록 유쾌하고 기발한 매력덩어리 이라부선생의 매력에 빠져들 것이다. 이런 정신과 의사가 한 명쯤 실제로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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