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토끼의 북리뷰 - 딸이 떨구고 간 책 읽기
[작가 소개] 오쿠다 히데오
1959년 일본 기후현 기후시에서 태어났다. 기획자, 잡지 편집자, 카피라이터, 구성작가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쳐, 1998년 40살의 나이에 <우람바나의 숲>으로 데뷔했다. 쉽고 간결한 문체로 인간을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잔혹할 만큼 리얼하게 그려내며, 작품마다 독특하고 매력적인 인물을 등장시켜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주로 일본사회의 부조리나 모순을 배경삼아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독특한 스타일과 소재로 일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상당한 인기가 있는 작가이며, 버스나 지하철에서 읽을때 웃음을 참느라 낄낄거리는 자신을 자주 발견할수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런 유머는 특히 단편과 단편의 리듬감과 유머를 유지하는 활극형식의 길지 않은 장편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남쪽으로 튀어>, <한밤중의 행진>)
이라부 종합병원의 신경과는 어두컴컴한 지하에 있었다. 구치소가 떠올라 저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들어와요~!" 문을 노크하자 안에서 괴상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셔츠 매무새를 고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몹시 뚱뚱한 중년 의사가 만면에 미소를 띠고, 1인용 소파에 떡하니 버티고 앉아 있었다. 살갗이 흰 바다표범 같은 용모였다. 가운 명찰에는 '의학박사. 이라부 이치로'라고 씌어 있었다. 원장 아들쯤 되나?
"흐흠~ 세이지라고 합니다." 세이지는 가슴을 뒤로 젖히며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 만나는 상대 앞에서는 저도 모르게 그런 식으로 굴게 된다.
"응, 알아. 접수처에서 들었어. 강박신경증이라면서. 폐쇄? 고소? 아니면 도효(스모를 하는 씨름판)?" - 중략 -
"이봐, 까불지 마, 내가 누군지나 알아. 기오이 파 중간 보스라고."
"소용없어. 병원에서는 대통령이든 노숙자든 똑같은 환자거든."
이라부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뜨거운 콧김이 목덜미를 스쳤다. 대체 뭐야. 이 병원.
"원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면 잠재적인 건가?"
"잠재적?"
"마음 한구석에 있긴 한데, 보이지 않게 숨어 있는 부분. 예를 들면, 사실은 야쿠자가 적성에 맞지 않을 지도 모른다거나."
세이지는 입을 다물었다. 양미간을 찌푸렸다. 뭐라? 야쿠자가 적성에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욕설을 퍼부어대면서도 한편으론, '이건 내 본모습이 아니야'라고 느낀다거나."
세이지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설마 그럴 리가 없다.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보다도 그런 질문을 받고도 화를 내지 않는 자신이 더 의외였다. 예전 같았으면 곧바로 발길질을 해댈 상황이었다.
"야쿠자 일이라는 게, 말하자면 고슴도치 같은 거잖아. 항상 상대를 위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 그런 일은 누구든 지치게 마련이니. 그 반대급부로 끝이 뾰족하거나 예리한 물건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됐는지도......."
"세이짱뿐이 아니었구나. 예민한 야쿠자 선생이."
"조폭이란 게 원래 그런 거야. 모두들 약한 부분이 있으니까 오히려 죽어라 뻗대는 거지."
"그럼 은퇴하는 건 아니구?" 가즈미가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야,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거둬준 은혜라는 게 있고."
"세이짱 네 오야붕, 몇 살이지."
"여든이 넘었지."
"얼마 안 남았네. 은혜 끝나는 것도."
"너 정말...."
화를 낼 수 없었다. 가즈미가 키스를 했기 때문이다.
가즈미의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세이지의 마음속에는 이제 불안감이 하나도 없다.
몇 년 후, 자신은 평범한 쥐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헌데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