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토끼의 북리뷰 - 딸이 떨구고 간 책 읽기
[작가 소개] 타케모토 노바라
마이너리티에 속하는 소녀 문화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것으로 유명한 저자는 어릴 때부터 ‘건담’ , ‘프라모델’ 대신 ‘들장미 소녀 캔디’와 ‘베르사이유의 장미’에 열광하고 소녀 문화에 심취, 자신만의 독특한 미학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로 오토메 문화의 카리스마적 대변자로 자리를 굳힌다.
타케모토 노바라는 이들 소녀 문화에 대한 독자적인 세계관으로 오토메(소녀)들을 다룬 에세이를 발표해오다가 2000년 소설 『미싱』을 발표하며 등단했고, 다음 해 『미싱』에 수록된 단편 이 영화화되었다. 2002년 『시모츠마 이야기-양키 소녀와 로리타 소녀』를 발표하여 대중적인 작가로 인정받았고, 2003년에는 『에밀리』를 발표하여 제16회 미시마 유키오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딸이 독립하면서 집에 두고 간 책을 읽고 블로그 서재에 넣기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 책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제가 리뷰하는 책이 오래된 책들이 많습니다
정말 소녀소녀 한 책이구나 생각했는데 작가가 로리타 문학의 대변자로 자리를 굳힌 분이셨네요.
3개의 단편들이 모여 있습니다.
두 이야기도 재미있으니 직접 읽어 보시길 바라면서 이 책의 제목인 에밀리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처음에는 풋풋한 사랑 이야기인가? 생각했지만, 글을 읽어 나가면서 뭔가 불편하면서도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우선 여주인공 에밀리는 어렸을 때 성추행의 충격으로 남자 공포증에 걸린 중학생 소녀입니다.
흔히 로리타룩이라 부르는 프릴과 레이스를 듬뿍 사용한 원피스나 니트 상의, 딸기 또는 체리, 왕관 그리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브로 사용한 Emily Temple Cute의 옷만이 유일한 소녀의 안식처였습니다.
그러나 이 옷을 입은 사진이 우연히 패션잡지에 실리면서 친구들로부터 '에밀리'라 부르며 왕따를 당하게 됩니다.
볼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한 군데에서 한 명이 던지는 것이라면 피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이 온갖 방향에서 볼을 던지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중에서 공 몇 개는 나를 맞춥니다. 몸에 맞으면 1점, 얼굴은 5점, 맞아서 내가 쓰러지면 10점, 그렇게 하는 와중에 이 스파이크 공격은 모두의 유희로 변해갔습니다.
우리 반뿐만이 아니라 특별활동 부서에서도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게 되면, 학교 안의 누구라도 내가 공인된 '왕따'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교정을 걷고 있으면 2층에서 "에밀리"하고 부르는 소리와 함께, 머리 위로 침이 떨어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만, 학교에서의 싫은 일들도 에밀리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패션의 거리 하라주쿠를 걸을 때만은 다 참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Emily Temple Cute의 옷을 입은 에밀리를 칭찬해 주는 한 남학생을 만나게 됩니다.
이 남학생은 그녀의 일 년 선배로 그림을 그리는 호모 섹슈얼 성향을 가진 사람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차이코프스키, 오스카 와일드, 베를렌느, 랭보, 마르셀 프루스트, 앙드레 지드, 서머셋 모옴, 장 콕토, 앤디 워홀, 키스 해링...... 세다 보면 끝도 없어. 호모 섹슈얼이었던 예술가는. 그렇다고 해서, 모든 예술가가 호모 섹슈얼인 것도 아니니까 호모 섹슈얼이란 사실이 예술가의 특권인 것도 아니야. 괜찮아. 처음엔 당혹스러웠어. 어떻게든 부정하고 싶었거든. 나 자신을 의심하고 저주했어. 하지만 있지. 곧 그런 기분은 잠잠해졌어. 자랑으로는 생각하지 않지만, 호모 섹슈얼이란 사실을 부끄럽다고도, 나쁜 짓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아. 그렇게 태어나버린 것이니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거야."
에밀리는 선배 남학생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어느새 자신도 어렸을 때 당한 일을 털어놓을 만큼 가까워졌고, 둘은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만나 함께 있게 됩니다.
우리들은 그날부터 소각로 뒤편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이 끝날 때까지, 함께 나누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중략-
당신은 때때로 점심을 먹고 나면, 가져온 스케치북을 펼쳐 울타리 저편의 풍경을 스케치했습니다. 보슈 말고도, 얀 반 에이크 등 좋아하는 화가와 그 작품 이야기를 하면서.
당신은 아무래도 중세의 화가에 마음이 끌리는 모양입니다. 당신 입에서 나오는 화가 이름은 거의 몰랐지만, 나는 당신이 미술에 관해 열심히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것이 무척 좋았습니다. 온화한 표정으로, 온화한 말투로, 그럼에도 열정적으로 말하는 당신의 미술론을 듣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러다, 에밀리가 어느 날 혼자 남학생을 기다리며 소각장 뒤에서 빵을 먹고 있는데 평소 에밀리를 괴롭히던 무리들이 나타나 강제로 소각로 안에 에밀리를 집어넣고 소각로 뚜껑을 닫고 밖에서 잠가버리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뒤늦게 소각로에 온 남학생은 에밀리를 구해주고 격분해서 에밀리의 반으로 달려가 일을 저지른 리더를 걷어차고 의자를 집어던져 유리창을 깨뜨린 후 학교를 떠나게 됩니다.
이 일이 벌어지고 며칠 뒤 에밀리는 남학생과 만났던 하라주쿠 거리를 배회하다 남학생을 다시 만나게 되고, 자기가 좋아하던 예전의 선배에게 호모라는 이유로 비겁하고 굴욕적인 일을 겪게 되어 비참해진 남학생은 에밀리와 하룻밤을 보내게 됩니다.
사람들은 우리들의 이 하룻밤을 도대체 뭐라고 부를까요. 그런 건 모릅니다. 그러나 확실히, 이 밤, 나와 당신은 섞였습니다. 그것은 결코 결합도 아니었지만, 섹스도 아니었지만, 우리들은 확실히 섞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연애와 이 하룻밤을 플라토닉 한 것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틀립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몸과 몸을 포개는 것에 의해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알았으니까요. 삽입이라는 의식은 행하지 않았을지언정, 나와 당신은 서로의 몸을, 확실히 서로를 원했으니까.
아마도, 나는 당신과 만나기 위해서 이 세계에 탄생한 것입니다. 당신과 이렇게 섞이기 위하여, 생명과 몸을 건네받은 것입니다. 테어나 길 잘했어. 이 잔혹한 세상에 태어난 것은, 분명 당신과 만나기 위한 것이었군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는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마침내 당신은 슈퍼 러버스의 옷을 벗고, 스스로의 리비도 Libido를 받아들여줄 사람을 만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Emily Temple Cute의 옷을 입지 않게 될지도 모릅니다. 일생을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맞대면서 살아갈 가능성은 현저하게 적을 것입니다.
이 밤으로 나 또한 알 수 없는 수많은 계절 속을 손으로 더듬으며 걷고, 구르고,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손되고, 스스로를 잃어버리겠지요. 그렇지만 그때는, 반드시 돌아옵니다. 이 성스러운 밤으로.
소설 속의 상황이 아닌 현실에서 중2, 중3 학생의 이런 일탈 이야기라면 분명 많은 논란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작품은 작품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네요.
뭔가 평범하지 않은 두 주인공 왕따 여학생과 호모 섹슈얼 남학생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사랑은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하고 있죠. 사람들이 쉽게 인정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논란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이 세상에서 아웃사이더인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그렇기에 더욱 안타깝고 서글퍼집니다.
그들이 함께 할 수 없겠지만, 하룻밤의 진실한 사랑으로 힘겹게 각자의 세상에서 살아나갈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누구에게도 행복해질 권리는 있으니까요.
부디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