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7일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베스트셀러 책을 읽으면서 문득 오래된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 문구점을 시작했을 때 우리 부부는 어떤 꿈과 환상에 부풀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 문구점이 아이들의 아지트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가게에 게시판을 만들어 아이들이 서로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약속도 전하는 멋진 문구점을 상상했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작은 테이블을 놓아, 엄마들이 모여서 차도 마시고 수다도 떠는 그런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었다.
어디까지나 상상 속의 내가 원하는 문구점이었다. 현실은 8평 작은 공간이라 뭘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지만....
그때만 해도 장사가 처음이었던 나와 남편은 모두에게 더할 나위 없이 친절했으며, 아이들의 말을 잘 들어주었다. 그러자 몇 명의 아이들이 늘 찾아와 주저리주저리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저 엄마 아빠가 어떻게 섭섭하게 했는지,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들, 친구와의 사소한 다툼 등.... 정말 그야말로 소소한 이야기들이었다.
처음에는 같이 공감해 주고, 리액션 해주고 정말 정성을 기울여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런데, 이 일이 반복되자,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당장 내 휴식시간이 없어졌고(그때의 나는 투잡이었고 남편은 매일 밤 12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었다), 가게 일에도 방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점점 아이들에게 거리를 두게 되었고, 바쁘니 다음에 이야기하자는 식으로 그 아이들을 떼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든 적정한 선이 있어야 하고, 그 선을 지키는 건 힘이 드는 거라는 걸 그때 알았다.
그래서 불편한 편의점의 독고 같은 알바생은 사실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야간 알바라는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 봐도 손님과 그렇게 깊은 교감을 나눌 시간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추운 야외 테이블 손님을 위해 난로를 켜주고, 폐기 같은 걸 챙겨주는 정도의 작은 마음을 나누는 일은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문구점을 할 때 나는 아이들이 모두 순수하고 착한 존재들인 줄 알았었다.
그런데, 모든 아이가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내가 아이들에게 했던 이야기 중 "너 아홉 살 맞아? 열아홉 살 아니지?" 이런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생각했던 아홉 살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아무래도 아이들에 대한 환상이 있었나 보다.
아이라면 그저 순진무구한 존재라고만 알고 있었다.
당시, 문구점은 계산대가 출입문에서 멀리 떨어진 안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많이 몰리는 시간에 물건들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물건을 훔쳐 갈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에,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그랬으니 없어진 물건들이 많았으리라~ 나중에 와서 고백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 사이에서 저 문구점은 물건 훔쳐 가도 모르는 문구점이라는 소문이 퍼져 그렇게 복작거렸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아이들끼리 이런 정보들이 암암리에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으니까....
그래서 아이들이 많이 몰릴수록, 물건 없어지는 것들도 많아지고, 파손율도 높아졌다.
지금도 아이들이 가게 앞에서 시간을 많이 보낼수록 쓰레기가 쌓이기도 한다.
어떤 손님이 "아이들을 좋아하시죠?" 하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으면 문구점 못할 것 같거든요~" 이런 말씀을 하신다.
내가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을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물론 어른 상대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아이들이 낫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좋아하는 걸까?
아이들이 이쁠 때도 미울 때도 있다. 싫을 때도 역시 그래도 순수하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
아이들의 넘치는 에너지가 피곤할 때도, 힘이 되어줄 때도 있다.
그래도 아이들을 좋아하니 지금까지 문구점을 꾸려 나가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불편한 편의점의 독고 씨 만큼이야 못하겠지만, 그래도 우리 문구점을 찾아 주시는 고객분들이 행복하기를, 건강하기를, 편안한 하루하루가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웃음이 넘치는 문구점, 행복한 문구점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나의 욕심일까?
그런 문구점이 되려면 무엇보다 나부터 행복하고, 웃음이 넘치는 사람이어야 할 것 같다.
행복한 문구점은 행복한 주인장이 있는 문구점이어야 하지 않을까?그래야 그 문구점을 찾은 손님들도 더불어 행복한 기운을 느낄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블로그 댓글 중>
- 문구점을 시작하시면서 아이들과 대화도 나누시고 아름다운 모습이 엿보이네요┈༝༚༝༚♡゙
손버릇이 안좋은 아이들때문에 손해도 보시고..
동심으로 돌아가 순수함이 느껴지는 하루네요.
- 아이들을 아무리 이뻐하고 좋아해도 일이 되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는것 같아요.^^ 그냥 일이니까 하는거죠.
제가 일하는 곳에서도 아이 말만 믿고 일을 진행했다가 그아이의 거짓말로 인해 해당학교에서 엄청난 항의가 들어왔습니다. 하...정말 그당시 그 어린녀석이 어른들을 그렇게 속일지는 상상도 못했어요. 애나 어른이나 선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걸 느끼게 해 준 일이었습니다 ㅡ.ㅡ
- 문구점을 시작하실 때의 마음가짐이 너무 고운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나, 동네 엄마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에요.
ㅎㅎ, 근데 아이들 중에도 아이 같지 않은 애들이 많은가 봐요.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도 너무 많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