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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공 Apr 19. 2022

취업준비생으로 살아남기 01 - 취준생의 품위유지

그래도 사람 꼴은 갖춰야지


 학교도 회사도 없는 무소속.

 시간 맞춰 가야 할 곳도, 내야 할 과제도 없다. 완전한 자유 속에서 하루를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 정해진 출퇴근 시간 없이 하루를 내 의지로 굴려야 한다.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시키는 것만 잘하던 나는 갑자기 찾아온 자유와 책임감에 눌려 허우적대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누구나 겪는 취준. 이겨내야 한다. 취업 준비까지 멘털 관리, 체력 증진까지 모두 나의 몫이다.


 취업 준비생인 만큼 생활 반경이 넓지 않다. 사회에 나가기 전 연습 단계인 지금, 주요 업무는 집 지키기 및 장 봐오기 그리고 카페에서 공부하기이다. 20대 초반에 추운 날에도 벌벌 떨며 집어 든 치마나 깔끔하게 핏 되는 바지는 옷장 구석에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나갈 곳도 없는데 옷 사는 건 사치 같았고 집 근처 카페에 가는데 예쁜 옷 입기도 아까웠다. 그래서 나의 선택은 늘 후줄근한 바지에 질끈 묶은 머리! 촌스러운 색 조합은 대충 모른 척하며 길을 나섰다. 나만 빼고 다 각자의 길을 성실히 걸으며 커리어를 쌓는 (것 같이 느껴지는) 험한 세상. 안 그래도 위축되는데 옷까지 낡아있으니 자존감이 떨어졌다. 툭 튀어나온 트레이닝 바지의 무릎 부분을 슬쩍 쓰다듬으며 집어넣어 보지만, 눈치 없이 또 튀어나온다. 나중에 취업하면 염색해야지, 회사 다니기 시작하면 꼭 셋업 슈트를 사야지 다짐하며 행복을 미루다가 나를 잃어버렸다.




 고등학교 때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대학 가면 새로 살 거라며 다 뜯어진 휴대폰 케이스를 계속 썼고, 3분이면 끝나는 눈썹 정리를 시험 기간 이후로 미뤄가며 내내 거슬린 채로 살았다. 아마도 행복을 누릴 자격에 확신이 없었던 것 같다. 대학이라는 목표를 이뤄야 비로소 행복할 자격이 있다는 착각이 나를 지배했었다.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에야 그게 틀렸다는 것을 알았지만, 취업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맞이하면서 또 자격 타령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배운 바는 있었다. 행복에는 자격 같은 게 필요하지 않다고. 지금 나에게 주어진 하루와 먼 훗날 커리어우먼이 된 나의 하루는 어차피 같은 시간이니, 미루지 말고 마음에 드는 하루를 보내자고 결심했다.


 쇼핑을 할 때면 특별하고 화려한 옷을 골랐다. 언젠가 날씨 좋은 날에 입을 확신의 원피스와 어울리는 메리제인을 장만하며 떳떳하게 꾸미고 나갈 일을 고대했다. 하지만 다년간의 학습으로 그런 날은 쉬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내게 중요한 것은 스페셜 데이가 아니라 에브리 데이. 매일매일이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 착장이 편안해야 공부도 잘 되고 여유도 생긴다. ‘편안하지 않은 것은 우아할 수 없다’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뷰티 철학을 곱씹으며 일단 내가 편하게 선택하고 입을 수 있는 것을 골랐다. 취준생이 우아할 것까지는 없지만 어쨌든!

 마침 조거 팬츠의 유행이 시작되어 마음에 드는 조거 셋업을 두 벌 장만하고, 머리에 공들이지 않아도 꽤 정돈된 상태로 보이게 해주는 볼캡도 샀다. 편안하면서 나름의 스타일도 갖추었다고 느껴지니 기분도 좋아졌다. 좋아하는 옷을 입으니 집중도 더 잘 되는 듯한 착각도 생겼다.

매일 입고 싶을 정도로 괜찮은 옷을 사자고 결심한 후에 구입한 백수룩. 흔히 이런 조거 셋업을 집 근처 1마일까지 입기에 좋다고 원마일 웨어 (one mile wear)라고 부른다. 하지만 취준생에게는 이 옷으로 10마일도 문제없다. 



 ‘에브리 데이’의 중요성을 알게 되니 매일의 행복을 챙기려는 범위가 넓어졌다. 플로럴 향의 향수보다는 포근한 느낌의 바디로션을 매일 발랐고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귀여운 양말을 사모았다. 사용 빈도가 높은 물건일수록 조금 비싸더라도 질 좋은 물건을 골랐고 오래오래 썼다. 작은 것들이 모여 하루의 행복도가 올라간다는 것을 경험하니 나름의 가치관도 생겼다. 매일에 집중할 것.


 내게 주어진 당장의 하루에 집중하니 옷이나 신발 같은 것을 제외한 나머지에도 신경을 쓰게 되었다. 오늘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쓸지에 대해서도 더 생각했고, 새로운 한 주를 어떻게 채울지 고민했다. 후회로 가득한 과거와 아득하고 막막한 미래는 잠시 접어두고 매일에 충실하자. 그러면 어떻게든 되겠지! 나에겐 잘 정돈된 에브리 데이가 곧 스페셜 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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