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이 글을 다 쓰면 나는 죽을 것이다

by 블루블라썸

이 글을 다 쓰면 나는 죽을 것이다.


처음 이 틀은 잠이 안 왔다.

최근 이 틀은 잠이 쏟아졌다.


오늘은 혼자 두 시간을 걸었다.

한번 도 쉬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고 걷고 또 걸었다.


맨발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겨우 한 번 신발을 벗어 확인하고 최대한 나에게 묻고 물어 샐러드를 포장했다.


그리고 도착한 작은 공원.

이곳에 와서야 겨우 발걸음을 멈춰 의자에 앉았다.

키 작은 나무들이 적당한 그늘 아래 10월 초의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바람이 딱 알맞다.


7년 만에 이곳에 왔다.

그때의 기억이 나를 이곳으로 인도한 것은 맞지만 결코 그때의 너 때문은 아니다.

가을바람에 천방지축으로 날뛰던 그때의 나 때문이다.


옛날 일은 차지하고 보더라도 요새의 나는 딱 중,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다.

오랜만에 실감하는 공허함, 리얼리티의 실종, 감각의 상실, 이대로 사라져도 상관없다는 생각까지.

다 끝난 줄 알았고 잊었다 여겼던 터라 나조차 생경하다.

그러한 나의 당황스러움에도 이것들의 존재감이 여실히 느껴져 어찌할 바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어떻게 빠져나왔더라.

어떻게 잊었더라.


구체적으로 생각나지 않지만 꽤 많은 사람의 노력과 헌신이 오랜 시간 쌓여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마치 물방울이 파도를 이뤄 물 밖으로 밀어내듯 그렇게 나를 살렸으리라.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그러한 인연을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조금 절망스럽다.

문득 이제는 스스로 나 자신을 일으키고 싶다가도 역시 아직은 누군가의 구원을 더 바라고 있는 나임을 발견한다.

정답은 머릿속에 있지만 어쩐지 고집부리고 싶은 마음이다.


H양처럼 통찰로 마무리 짓고 싶은데 이 이상 생각나는 게 없다.

땀이 식어 몸이 조금 춥고 차 소리와 바람 소리가 뒤 섞여 들리고 뒹구는 낙엽을 별생각 없이 바라보는 것 외에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알 게 뭐야, 될 대로 되라지.

나는 내 삶을 던졌다.

'던졌다'라고 하면서 제때 출근하고 기본적인 영양섭취와 수면을 유지하고 위생 관리는 하는 내가 괜스레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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