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이유들에 대하여
01/
한강 작가님의 책 중 3번째로 읽는 작품이다.
한강 작가님의 책을 읽기 전에는 큰 숨을 들이 마시고 읽게 된다.
그만큼 묵직한 작품들의 연속이다.
이 책 역시 읽기 전 각오가 필요했다.
제주 4.3사건을 배경으로 쓴 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보다 조금 느린 호흡으로 진행되었다.
배경은 겨울, 눈 내리는 제주도가 주를 이룬다.
고요함 속에서 끊임없이 내려 쌓이는 하얀 눈처럼 덤덤하게 소설을 시작해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02/
왠지 모르게 나의 학창 시절 모습이 떠올라 고요하게 슬퍼졌다.
딱히 피해 주는 것 없이 내 주변 모든 것이 싫어지던 때.
친구들, 엄마, 나 자신마저 혐오스러웠던 그때.
요즘도 문득 이유 모르게 슬퍼지는 건 이때의 감정이 올라와서인가.
아직도 나는 어리고 여려
삐죽삐죽
모서리 진 부분이 따끔거린다.
03/
아이가 있어서 그런가 이러한 대목에서 몸서리치게 공포스럽고 뜨거운 눈물이 왈칵 올라온다.
아이들이 무슨 죄인가.
아이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한 시련과 아픔과 고통 속에 놓이는지.
아직 제대로 꽃도 펴보지 못한 어리고 여린 생명들이 사그라듦이 가슴 저미도록 시리고 아파진다.
04/
이 책은 사람이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 그 잔혹함이 여실히 담겨있다.
염세주의적인 시선을 넘어 인간혐오증에 빠질 지경이다.
같은 인간인데.
같은 피와 살과 뼈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금도 혐오와 미움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자문하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바랬다.
100% 허구이기를.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어딘가에는 인간이 인간에게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을 휘두르고 있잖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잖아.
가족을 잃은 아픔에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는 가슴을 움켜쥐며 눈물을 흘리고 있잖아.
05/
이 책의 많은 부분에서 인선이란 인물과 새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선의 작고 여린 새 두 마리.
인선은 새를 위해 친구에게 무리한 부탁을 한다.
그리고 새의 '목숨'을 위해 무리한 부탁을 받아들이는 친구.
처음에는 고작 새를 위해 폭설을 거닐며 사람의 목숨을 걸어야 하나 의문이 들었다.
'고작'
고작이라니.
'목숨', '생명'인데.
그리고 동시에 떠올렸다.
사람 목숨도 '고작'이라 여기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작고 여린, 한 줌의 새도
생명이 깃들어 있고
혼이 있고
온기가 있다.
새의 하늘하늘, 여린 날갯짓이
누군가에게는 세상 전부일 수 있다.
생명이란 그런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하찮으면서도
누군가에게는 세상 전부인 것이다.
06/
사랑하는 사람을
차마 보낼 수 없어서
잊을 수 없어서
이별할 수 없어서
소복 소복 끊임없이 내려 쌓이는 눈처럼
가만가만히 외치고 외쳐보는
작은 목소리, 움직임들.
그래서 우리는 작별할 수 없나 보다.
아니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능동적인 표현이 어울린다.
우리에게는
작별할 수 없는 이유들이 너무 많다.
잊을 수 없는 이유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끊임없이 순환하는 물처럼
물, 비, 눈, 얼음으로 나타나
끊임없이 우리 곁을 맴돌겠지.
07/
우리나라 대표 관광지 제주.
나 역시 제주도는 놀러 가는 곳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제주에 가면
전과 다른 느낌일 거다.
나에게 제주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떠올리는
아련한 곳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