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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푸른색 May 05. 2023

비 오는 어린이날, 뭐 해?

테이프 공 공장을 차려봅니다

사진출처_Unsplash

질겅질겅 한 감기가 오래도 간다.

남편도 걸리고 둘째도 걸리고 첫째도 걸리고 도돌이표가 따로 없다. 이제 내 차례인가?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비 오는 연휴를 맞이한 어린이날 아침.

소보다 차분한 습기를 머금어 고요한 거실에 베르가못 향을 톡톡톡 떨어뜨려 오일캔들이 켜 둔다. 아로마향이 기분을 상쾌하게 바꾸고는 타닥타닥 습기를 태워 바싹한 공기를 만들어내는 시간.






얼마 전 집으로 초대했던 '커피 잘 만드는 예쁜 여자'에게 연락이 왔다. 이 여자에게는 훔치고 싶은 아들이 있다. 듬직하고 배려심 있는 이 아들은 보면 볼수록 매력 덩어리에 남자다운 우직함이 있다. 어머님이 누구니? 노래가 절로 나오는 이 아들이 우리 집 첫째에게 택배를 보냈다는 연락이 왔다.



어린이날에 맞추어 도착한 따끈따끈한 택배.

택배상자에서도 커피 향이 그득하다.

집에 왔을 때 알콩달콩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던 오빠에게 택배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첫째는 오매불망 택배를 기다렸다.

아침부터 브런치를 부여잡고 씨름하는 엄마대신 아빠에게 택배박스 오픈을 요청하는 첫째.


"아빠 박스 좀 열어주세요"


해결사 느낌으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남편은 샥샥 두 번의 칼질로 택배 상자를 열어주었다.

그리고 시작된 테이프 공 만들기!

둘째야 자세가 꼭 이래야만 속이 후련했냐~(영화 해바라기_김래원)


테이프 공 공장에 고요한 침묵이 흐른다.

공장장과 직원 단 둘 뿐이지만 빠르게 돌아가는 손과 발.

아무리 시대가 변해서 AI와 챗gpt가 난무해도 아날로그를 이길 수는 없다. 공장장과 직원은 내일이 없을 것처럼 힘차게 테이프 공을 말아 올린다. 우리의 땀과 노력은 끈끈이 테이프가 남긴 투명한 비닐만이 알겠지. 수북하게 쌓여가는 비닐 부분을 본 엄마의 잔소리.


"끝나면 잘 치워야 해"


와장창 감성이 파괴된다.

공장장은 짧은 눈길을 한 번 보내고는 다시 집중한다. 직원은 어느새 도망가고 없다. 이 틈을 노린 새로운 경력직 직원, 바로 아빠다. 퇴사선물로 테이프 공을 색깔별로 받고 싶다는 경력직은 최근에 테이프 공에 입문하여 특별한 경험을 한 후, 테이프 공만 보이면 맹수처럼 달려들어 끈기 있는 자세로 공 하나를 뚝딱 만들어 낸다.

다시 시작이다. 공장장과 경력직의 불꽃 튀는 대결. 

나는 이런 소소한 일상이 감사하다.






코로나로 잃어버린 시간이 많아진 후, 기념일의 소중함이 더 깊이 다가온다.

그래서 작은 이벤트라도 충실히 챙겨주고 싶다.

환장의 에버랜드도 롯데월드도 아니지만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즐기는 무한한 시간이 있다면 이게 최고의 어린이날이 아닐까.


첫째 둘째에게 소리를 질러 본다.

"오늘 동물의 숲 실컷 해!"


꺅꺅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의 소박한 웃음을 가만히 보게 되는 행복한 어린이날 아침이다.



(멀리서 예쁜 마음을 담아 먼 곳까지 보내준 멋진 아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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