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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그리움

by 여름의푸른색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이사를 결심했다.

이사를 하고 처음으로 친정에 왔다.

어느 곳을 보아도 나를 난처하게 만드는 빈자리뿐이다.

사람의 빈자리라는 것이 이토록 뭉쳐진 상태 그대로 덩그러니 놓이는 것인지.


지금 이 순간 눈에 보이는 익숙한 모든 것이 낯설다.




가구도 그대로 물건도 그대로인데 주인만 없다. 집안을 둘러보니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그리움이 툭툭 묻어난다. 바로 아빠의 흔적들이다. 주인을 잃은 물건들의 외침이 살갗을 타고 올라와 따끔거린다. 아직 채 정리되지 않아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는 물건들처럼 여기저기에 그리움이 뭉텅이 그대로 놓여있다. 집안의 정체된 공기 속에서도 그득하게 그리움이 묻어난다. 집안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아빠가 떠올라서 마냥 아프기만 하다.

아빠가 쓰던 물건들이 주는 그리움의 농도는 너무나도 짙은 색이다. 이보다 더 짙은 색은 당분간 볼 수 없을 것 같다.




계절이 변했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둘러앉아 아빠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각자가 삼켰던 상실감의 크기, 그 크기를 감히 가늠할 수가 없다. 가족들의 이야기 속에 묻어나는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아빠가 없는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 막상 식탁에 앉으니 두꺼운 굵기로 다가오는 빈자리가 당황스럽기만 하다.




부산에서 서울로 멀리 시집보낸 딸을 1년에 몇 번 보지도 못했지만 친정에 갈 때면 항상 맛있는 음식을 차려두고 사위와 딸을 기다리고 계셨던 아빠. 다 같이 식탁에 둘러앉아 그동안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들. 나에게는 항상 따뜻한 아빠의 부정이 마음의 수위를 찰랑찰랑 채우고 있었다. 흘러넘쳐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아빠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의 나는 아빠의 사랑을 받은 만큼, 딱 그만큼 아프다.

당연하겠지만 당연하다는 사실조차 따갑기만 하다.


상실은 이렇게 따가운 감정이었나 보다.




아빠란 딸에게 완벽히 안전한 지붕이다. 딸은 지붕 아래에서 아빠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난다. 시집을 가서도 멀리 떨어져 있어도 물리적인 거리가 주는 현실감보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안정감이다. 나이테가 여러 겹이라 한 아름 안아보아도 닿지 않는 큰 나무기둥이 나의 뒤에서 묵묵히 버텨주는 것이다. 내가 쓰러지고 무너져도 다시 나를 일으켜주는 작지만 큰 존재이다. 경상도 남자 특유의 무뚝뚝함 속에서도 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 적어도 아빠는 나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면 온몸으로 비를 맞아야 한다. 작은 우산을 들 수도 없기에 도무지 당해낼 재간이 없다.

이제는 사계절을 겪어내며 아빠가 사라진 공간들을 천천히 메워나가야 한다. 시간이 걸리고 과정은 쓰라리겠지만 아빠를 비워낸 자리에 나를 채워 넣는 행위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사진 속에만 존재하는 아빠.

이제야 실감이 난다.

다시 가슴에 구멍이 난 것처럼 허전하다.

아빠의 묵직한 사랑이 그립다.









사진출처 _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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