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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사람일까.

by 여름의푸른색




드디어 이 질문에 도달했다.


줄곧 나를 괴롭히던 이 질문.

글을 쓰면서 마주하게 되는 많은 상황 속에서 가장 많이 마주쳤던 이 질문 말이다.




글을 쓰는 것이 즐겁다.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다가와 다정히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따뜻한 글을 쓰고 싶어졌다.

무거운 글을 읽으면 나도 같이 무거워지고 뾰족한 글을 읽으면 뾰족함이 다가와 다시 글을 읽기가 두려웠다.

적어도 나의 글을 읽고 뒤돌아설 때 편안한 마음으로 이 페이지를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이런 글도 때론 필요할 것 같아서.




나는 사실 아직도 어떤 감정과 마주하는 것이 두렵다. 고통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이 감정의 돌덩이를 받아 든 나는 무게도 크기도 버거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가끔 용기를 내어 다시 돌덩이를 들어 올려보아도 마찬가지다.

아빠에 대한 감정이 그러하다. 관련된 글을 쓸 때면 하루 종일 1리터의 눈물을 뽑아내고 끝이 난다. 유난도 이런 유난이 따로 없다.


부모의 고통이 살갗으로 전해지는 시간은 담담하고 싶어도 도무지 무뎌지지 않는 아픔의 시간이다.

물론 나 이전에도 많은 사람이 겪었을 고통이고 나 이후에도 많은 이가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같이 공감하고 나누며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만으로도 상처에 얇은 거즈 한 겹을 덮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한 겹을 위해 글을 쓴다. 나의 글이 나에게도 다른 이에게도 거즈 한 겹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어느 날 우연히 보았을 때 약간의 흉터만 남긴 채 깨끗하게 아문 상처를 바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글로 마음을 받았다. 궁금했던 이의 소식이 전해지던 그날이 생각난다. 묵묵히 고통을 삼키고 있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내가 겪었던 힘듦과 결이 같았기 때문이다.

경험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 그이의 고통을 알아차려 마음을 건네고 싶은 것, 그게 나였다.


부침을 겪는다. 아니 심하게 겪었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 사람들 속에서 자유형을 하던 나는 수영장 모서리에서 발차기 연습만 하고 있었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럼에도 선한 사람들은 곁에 남기 마련이고 우리의 시간이 쌓이는 소중한 계기가 되어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항상 보고 싶은 그런 사람 말이다.




남편이 나의 지인들을 만나게 되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근데 있잖아 지현이 진짜 착하다.

응 엄청 착하지? 내가 원래 착한 사람 좋아해.


그렇다. 나의 주변은 선함으로 채워져 있다.

심성이 곱고 태어나기를 선하게 태어난 사람. 얼굴에서도 말에서도 표정에서도 선한 기운으로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그런 따뜻한 사람들속에서 살아간다. 나는 당신에게 티끌만큼의 나쁜 마음이 없어요라고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나는.


그렇게 지내다 보니 자꾸 보인다. 착한 사람 내면이 깊은 사람들이. 무엇보다 여린 사람들이.

그래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마음을 전하게 된다.




반대로 나는 착한 사람인가?

그건 아니다. 나는 매일 착한 사람들 속에서 선함을 잃지 않으려 무던히 애쓰는 사람이다.

강강 약약을 즐기는 타입이라 부딪히면 와장창 깨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함부로 내 감정을 모두 꺼내어 드러내지 않는다. 그냥 나의 악함은 잘 봉인해 두고 죽을 때까지 꺼내고 싶지 않다. 정말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



선한 사람 속에 있으면 그 선함이 전해져 하루에 1 만큼씩 변해간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하면 나에게도 좋은 에너지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변해왔다. 나는. 나라는 사람은.

그래도 불쑥 악한 내가 고개를 들면, 잘 달래서 다시 봉인해 둘 만큼 이제는 여유가 생겼다. 꾹 눌러 닫은 감정의 상자에 열쇠를 채워두고 오늘도 착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다른 이에게도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서 그의 하루도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글에도 온도가 있다. 나는 오늘 보글보글 끓는 뜨거운 마음을 글로 받았다.

글을 쓰기까지 그 감정을 잘 담아 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글을 쓰는 내내 나를 떠올렸을 테지, 도대체 이 감사한 마음을 어쩌면 좋을까.


도저히 글로 담아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아침이다.

그와 만나 시원한 소맥을 말아 회포를 풀어야겠다.

그렇게라도 해야만 이 감정이 전달될 것 같다.



장맛비가 시원하게 쏟아지는 제주의 아침.

이 비를 함께 느끼고 있을 그에게

나의 글을 보낸다.


이거 그린라이트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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