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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 요가원에서 생긴 일

by 여름의푸른색


이곳은 장마다. 오늘도 일기예보에는 비 소식이 있었다. 아침부터 맑은 하늘, 습한 공기 그리고 축 처지는 몸. 삼박자가 적절하게 어우러져 여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오늘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요가를 시작하기 위해서다. 제주에서의 버킷 리스트 최상단에 있던 요가하기. 아이들을 돌보느라 여유가 없던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운전석에 앉아 플레이리스트를 살펴본다.

오늘은 이거야. 휘루의 바람 부는 날.

전주가 흘러나온다. 볼륨을 높여서 차 안의 공기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든다. 곧이어 휘루의 목소리. 나지막이 바람 부는 날야~노래를 따라 부르며 요가원으로 향했다.




서둘러 도착해서 주차를 했다. 비가 와서 질퍽한 바닥 위로 저 멀리 선명한 하늘이 눈앞에 펼쳐졌다. 얼른 휴대폰을 열어 사진을 찍었다.

찰칵-

시작이 좋다. 너무 오래 쉬었던 요가를 다시 하려니 마음이 무거웠지만 열심히 먹고 쉰 대가를 이제부터 치른다고 생각하고 결연한 의지를 다진다.




요가를 좋아했고 요가를 하는 내가 좋았다.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했다. 정말 탈출구가 필요한 시기에도 나는 제왕절개를 한 배로 플라잉 요가를 다녔다. 요가 선생님께서 절개 부위에 해먹으로 체중을 싣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고 했지만 나는 그것보다 해먹에 매달려 나의 고난을 이겨내야 하는 시절이 있었다. 18개월을 울었던 둘째를 매일 안고 있었으므로 허리는 정말 말도 못 하게 망가졌는데 이상하게 플라잉만 다녀오면 허리의 통증이 사라졌다.


거꾸로 매달려서 거꾸로 보는 세상도 재미있었지만 서커스처럼 공중에서 빙글 돌아서 해먹을 감을 때 그 고통과 즐거움이 나를 계속 해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명상을 하는데 해먹 안으로 들어가 박쥐처럼 온몸을 해먹으로 감싸고 좋은 노래를 들으며 몸과 마음 그리고 귀가 쉬어가는 시간을 가졌다. 육아에 지쳐 매일 눈물짓던 그때의 나에게 요가는 나를 지탱하는 힘이었다.



오늘 그런 요가를 다시 마주했다. 안으로 들어가 인사를 나누고 선생님께서 소개를 해주셨다.

오늘부터 같이 수련하게 될 여름의 푸른색님입니다.


반가워요 커피 할래요?


가장 안쪽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반겨주시는 우아한 여성분이 계셨다.


네 감사합니다.


커피를 받아 들고 쭈뼛거리는 나.

아직도 처음이 이렇게 힘들어서야 되겠냐. 어이구.




곧이어 차를 준비하시는 선생님의 분주한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어디서 작은 그릇을 가지고 오시더니 햇밀의 향을 맡아보라고 하셨다. 한 분 한 분 얼굴 앞으로 그릇을 내밀어 요리조리 향을 전해주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맛있는 차가 있어서 일부러 가지고 오셨다고 했다. 이 사랑방 같은 분위기는 무엇일까? 소소하게 일상의 안부를 묻고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오랜만에 앉은 매트도 어색하고 나의 자세도 어색하다.

활짝 웃으며 눈을 맞춰주시는 선생님.

사람의 표정은 만들어지는 것 같다. 너무 예쁜 웃음을 가지고 계셨다. 그러나 반전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선생님의 발성과 딕션은 귀와 몸을 울리고 내가 좋아하는 보스 스피커의 깊은 베이스 음이 들리는 듯했다.


옴~~~~~~


정신 차리자, 눈치껏 따라 하는 거야.

공간을 크게 울리는 당황스러운 소리에 선생님께서 오늘 처음이라 좀 놀라실 수도 있겠네요 듣고만 계셔도 된다고 친절히 알려주셨다.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어떤 구절을 외우기 시작하셨는데 어느 나라 언어인지 모르겠으나 발음이 엄청 어려웠다. 그래도 또 눈치껏 따라 했다. 첫날이니깐.

노래 같은 구절을 따라 하고는 본격적으로 요가에 들어갔다.


어디서 뚝-하고 뼈의 외침이 들린다. 다리였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의 뚝뚝 소리는 조용한 공간의 정적을 와장창 깨부수고 나를 민망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내가 얼마나 원하던 시간이었던가. 아이들이 모두 각자의 자리에 간 후에 가지는 내 시간. 한없이 소중하고 소중하다.




마지막으로 명상에 들어갔다. 라디오 디제이 같은 음성으로 긴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잠들지 말라고 계속 당부하셨는데 긴장이 풀려서인지 잠이 부족했는지 잠깐 졸았다 깼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다시 나를 이 공간으로 깨워서 데리고 와 주셨다. 명상을 하는 동안 계속해서 글감이 떠올랐다. 오늘 꼭 이 이야기를 써야지 이런 에피소드를 중간에 넣어 재미를 더해야지 하면서 슬쩍 딴생각에 빠졌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선생님이 다시 돌아오라며 나를 불러주셨다.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모든 수련이 끝나고 눈을 뜬 순간. 머리와 눈이 맑아진 상태였다. 몸은 한결 차분해졌고 귀는 온전히 쉼을 가졌다.


때마침 창문 밖으로 장맛비가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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