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의푸른색 Jul 24. 2023

온탕은 가고 이제 냉물의 시대다.




바다 수영도 좋고 가끔은 호텔 수영장도 좋다. 그렇지만 우리는 온천을 포기할 수 없다. 온천에 가기 위해 안개로 가려진 중산간도로를 지난다. 비가 민들레 씨앗처럼 가볍게 흩날리고 비 오는 숲길마다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비에 젖은 흙냄새와 풀 내음이 그림처럼 그려지는 아침이다.




오늘은 서귀포에 있는 산방산 탄산온천에 간다. 온천도 하고 노천탕에서 물놀이도 할 수 있는 곳이라 아이들의 들뜬 표정이 느껴진다. 피로도 풀리고 피부도 뽀득뽀득해지는 물의 마법이 시작된다. 노천탕에서 튜브를 타고 돌고 또 돈다. 빙글빙글 물속에서 발레를 하듯 돌고 나면 잠수 놀이 시작, 물속에서 숨 참기 숨 참고 박수 한 번 치고 나오기 등 각자의 방법으로 물놀이를 즐긴다. 실컷 물놀이를 즐겨도 사우나에 가면 다시 시작되는 물놀이, 물놀이 옆에 더 재밌는 물놀이가 있는 곳이 바로 여기다.



노천탕에서 보이는 산방산



첫째는 자주 사우나를 다녔지만, 둘째는 사우나도 온천도 처음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물이 가득한 수영장에 빙 둘러앉아 있는 모습도 신기하고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차례대로 앉아 몸을 씻는 모습도 아직은 어리둥절하다. 사우나라기보다 아직 수영장 느낌이 나는 것 같다. 노천탕에서 물놀이를 실컷 했지만 다시 실내 수영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코로나를 겪은 아이들은 다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을까.




탄산온천은 게토레이의 노란색 물빛을 닮았다. 노란 물속에 어머님들이 양파망과 닮은 그물을 머리에 쓰고 앉아 계셨다. 빨간색 연두색 보라색 망을 쓰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둘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엄마 저기 머리에 쓴 거는 뭐예요?


머리카락 때문에 쓰고 계신 것 같은데 엄마도 처음 봤어.


단체로 관광을 오신 어머님들이 색색의 그물을 쓰고 탄산온천을 즐기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탄산온천에 앉아있으면 피부에 탄산이 붙어 보글보글 움직인다. 나와 첫째는 호기심에 계속 앉아 있었는데 둘째는 잠시 온천을 즐기더니 이내 밖으로 나간다. 그러더니 옆에 있던 작은 탕을 손으로 가리켰다. 두꺼비 입에서 물이 나오는 모습이 특이했는지 나에게 다가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엄마 냉물에 손가락 하나만 넣어봐도 되나요?


(냉물?) 그.. 그래.. 차가우니깐 손가락  딱 하나만!


네~ 엄마.


옆에서 보고 있던 첫째.


엄마 그럼 저도~


그래 알겠어.



두 자매는 신나는 발걸음으로 차가운 물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다니 동시에 검지 하나를 쑤욱~ 넣어보았다.

얼음처럼 시원한 물. 태어나서 이렇게 시원한 물에서 놀아본 적은 없었던 자매들은 얼음처럼 시원한 물에 냅다 한쪽 발을 집어넣는다.


너네~~~~~


유난히 크게 울리는 사우나 내부에 외마디 비명.

자매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더니 씨익-웃고서는 다시 온탕으로 돌아왔다.



엄마 물이 엄청 차가워요!

언니 그치? 냉물 진짜 차갑지?


응응 그럼~ 차가워서 또 들어가고 싶다.


너네 손가락만 살짝 찍어 보고 온다고 해놓고

둘 다 다리를 집어넣더라?


씨익


귀여운 아이들. 이렇게 사우나가 좋은데 그동안 집에만 있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근데, 잠깐.


물이 뭘까. 냉무-내용이 없다는 이 단어는 아는데 어색하고 귀여운 냉물의 어감이 자꾸 어긋나는 발음이라 머릿속에 가라앉지 못하고 계속 동동 떠있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던 공주 시리즈 한자사전에 한참 심취해 있던 둘째는 '냉'자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냉 + 물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계속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럼 온탕은 온+물인가? 생각만 해도 귀엽다. 온면과 냉면도 이렇게 결을 같이 하는 건가 싶었다.




아이가 처음 말을 배울 때 발음을 뭉개는 단어가 유독 귀여우면 바로 고쳐주지 않고 그대로 쓰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귀여운 발음이 주는 단어의 느낌이 솜사탕 같아서 녹이고 싶지 않은 엄마의 마음이랄까.

오늘의 냉물도 냉탕이라고 수정하지 않은 채 당분간은 그대로 두고 싶었다. 아직 순수한 아이를 보고 있는 느낌이 좋아서.



냉탕이라는 단어를 모르고 7세가 되어버린 아이. 가여운 마음이 들지만 코로나 시대는 장점도 단점도 수면 위로 명확하게 떠오르는 시기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분명 힘든 시간이었지만 덕분에 이런 귀여운 단어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노곤하고 배도 부른 아이들이 잠들자마자 남편에게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차 안에서 커피를 마시다 웃음이 터져버린 우리.

둘째는 둘째만의 생존법칙이 있다. 미우나 고우나 둘째는 이쁘다.



백미러를 보니 헤드뱅잉을 하며 잠든 첫째와 입을 아 벌리고 곯아떨어진 둘째가 보인다.


둘째는 오늘 첫 냉물의 시대를 맞이했다.





이전 06화 요가하러 갔다가 잠만 자고 왔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