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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푸른색 Jul 12. 2023

님아, 그 먹태깡 사 오지 마오.

먹태깡 득템기

우리집에 먹태깡이 찾아왔어요




매운 새우깡. 너는 왜 맛있는 거니?


제일 친한 친구가 제주에 왔다. 저녁을 먹고 들어와 아이들이랑 놀고 있는 사이 친구의 남편에게 무언가 슬쩍 부탁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혹시 필요한 것이 있나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오빠 소주랑 먹태깡 좀 사다 주면 안 될까?

소맥이 좀 마시고 싶은데~


서준맘의 손동작과 함께 눈웃음을 날리는 친구와 그 표정을 보자 흔들리는 친구 남편의 눈동자.


알겠어 애들 부루마블 좀 해주고 다녀올게

또 다른 건 필요한 거 없어?


먹태깡 없으면 매운 새우깡~




이 커플은 내가 이어준 커플이다. 나의 베프와 친오빠의 친구를 잘 엮어서 부부의 연을 맺었다. 연애결혼이었던 친구는 아직도 그렇게 사이가 좋다. 알콩달콩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술과 안주를 부탁하는 애교스러운 모습은 내가 봐도 좀 귀여웠다.


맥주는 한 박스 준비되어 있다. 원래 소주를 즐겨하던 친구는 아니라 따로 준비하지 않았는데 딱 한 병만 사다 달라고 했다. 그렇게 친구 남편은 소주와 매운 새우깡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먹태깡을 사장님이 주문하셨는데 물건이 부족해서 입고가 늦어지나 봐


괜찮아 괜찮아 매운 새우깡도 좋아


아무리 봐도 귀여운 부부다. 




이 대화를 들은 남편,

산속에서 믿을 것이라고는 편의점 하나라, 매일 드나드는 편의점에서 매의 눈으로 먹태깡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며칠째 매운 새우깡만 사 오던 남편, 그래도 매콤 짭짤한 매운 새우깡은 우리에게 훌륭한 맥주 안주가 되어주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아이들과 함께 편의점 쇼핑을 다녀와 현관문에 서 있는 남편. 자세가 살짝 거만하다. 그리고 맥주가 보인다. 뭐지? 왜 갑자기 맥주? 금요일도 아닌데?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눈치를 살피는 나.


나. 먹태깡  사 왔어.


누가 보면 나라를 구한 줄 알겠다. 그래서 엄청 신나는 마음으로 먹태깡을 껴안고 왔겠구나 싶었다.




우린 또 리액션 하나는 끝내준다. 하늘 위에 구름이랑 하이파이브를 할 만큼 남편에게 폭풍 칭찬을 날렸다.

미션을 주면 완벽하게 해내는 스타일이다. 오직 직진만 있는 그런 남자다.


나에게 전혀 먹태깡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그는 매일 편의점 새우깡을 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먹태깡이 두 개나 있었다고 했다.




하나 남겨두고 온 먹태깡



두 개 다 사 오지~


다른 사람들도 먹어야지  


쓸데없이 착하다. 덕분에 나만 항상 나쁜 여자구나.




우리는 자주 먹던 먹태가 있다. 친한 언니네서 처음 먹어보고 중독된  먹태. 이 먹태는  와사비 소스와 가맥 소스가 포함되어 있어 입에 착착 감긴다. 먹태는 오븐에 살짝 구워 바삭함을 살린다. 간단히 먹고 싶은 날에는 고소한 먹태가 최고다.




쿠팡에 있어요




그렇다면 궁금하다. 먹태깡은 도대체  어떤 맛일까?

일단 초록창에 검색을 시작한다. 먹태깡은 청양 마요 소스에 찍어 먹어야 맛있다고 한다.

그럼, 만들어야지. 지금 필요한 건 스피드.






오늘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고추를 다져왔나 싶을 만큼 정성스럽게 다진 고추를 마요네즈 위에 치즈처럼 뿌린다. 간장은 티스푼을 벽에 바짝 붙여 쪼르르 르게 만든다. 예쁘게 만들고 싶어서다. 안주를 만드는 데 진심이다. 옆에서 쳐다보는 남편은 뭘 저렇게까지 열심히 하냐는 표정이지만 만들면 제일 잘 먹는 사람은 남편이다.



금요일은 아니지만 경건하게 마주 앉았다. 맥주잔에 가득 하얀 맥주 거품이 일어난다. 이제 드디어 먹태깡을 영접할 시간이다.

소스에 푹 찍은 나와는 달리, 남편은 먹태깡 본연의 맛을 음미해 보겠다고 했다. 또 쓸데없이 진지하다. 둘 중에 한 명은 말려야 하는데 똑같이 이러고 있다.


매콤함이 살짝 섞인 새우깡에 고소한 새우깡의 맛과 중간중간 느껴지는 먹태의 맛.

오~생각보다 괜찮다.

그럼 청양 마요 소스에 찍은 먹태깡은?







드셔보시면 알겠지만 맛있었다. 소스가 맛있는지 먹태깡이 맛있는지 모르겠지만 맛이 조화로운 안주의 탄생이다.



우리는 낄낄거리며 먹태깡 신고식을 치렀다. 먹태깡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며 뿌듯했을 남편이 너무 귀엽다. 맥주를 마시고 곤히 잠들어있는 남편을 보니 행복이 별건가 싶다. 우리는 오늘 먹태깡과 맥주 한 잔에 소소한 행복을 느꼈다.


제주의 소박한 밤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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