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눈이 오고 있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에 있다. 푸른 하늘을 보여주던 이곳도 어느새 회색빛 기운이 감돈다. 둘째의 등원을 보류하고 집에서 다 같이 뒹굴기로 했다. 냉장고를 살피고 오늘의 식단을 공유한다. 아이들이 집에 있으면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바로 밥이다. 밥도 먹고 빵도 먹고 면도 먹지만 그래도 메뉴는 항상 모자란 느낌이다. 왜 그런 걸까.
완전히 내려놓고 푹 쉬었다. 아이와 함께 방학을 즐겼다. 늘어져서 실컷 책도 읽고 이곳에서의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역시 너무 과몰입하면 탈이 나는 법. 적당히 쉼을 가져가며 글을 써야겠다는 결론이 났다.
다시 컴퓨터 앞에 앉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될지 나조차도 몰랐다.
사진출처_미세미세
태풍이 오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꼼짝없이 집에 있겠구나 했다. 사실은 여름의 제주를 맞이하느라 들떴던 마음이 태풍의 기세 하나로 한풀 꺾였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러면서 매일 릴스를 만들어 올리는 재미에 푹 빠져버렸다. 어색한 릴스에 아직도 적응 중이지만 그래도 매일 아침 도달 계정을 체크하며 차근차근 쌓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모든 플랫폼에 글쓰기를 중단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글쓰기 플랫폼에서 소액의 금액을 주면서 글을 모으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고유의 창작물을 모아 누구의 이익이 되는지 얼마나 함께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계속해서 의문이 들었다. 초심을 잃었나. 그럴지도 모르겠다. 동기부여를 하기에는 너무 소액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가까워짐도 멀어짐도 자유롭지만 사실 아쉬운 마음은 든다. 그래도 언젠가는 플랫폼과 글을 쓰는 사람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는 날이 오리라 기대해 본다.
지금은 모두에게 첫 태풍이 불어닥치고 있나 보다.
아침부터 울리는 알람들이 낯설다. 제주의 태풍은 아파트 차단기까지 사라지게 하는구나. 바람에 날아가는 모든 것들을 줄로 묶어두고 베란다에 물건들도 집 안으로 들여놓았다. 알 수 없는 자연의 힘 앞에 한없이 무력해진 인간의 삶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
조용히 지나갈지 모든 것을 할퀴고 지나갈지 모르지만 지금은 나의 생활도 나의 글도 밀도에 집중하며 태풍이 지나가기를 가만히 기다려야겠다.
모두의 안전을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