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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푸른색 Sep 27. 2023

제사라는 파도가 밀려온다.

여자의 엄마는 맏며느리다. 그리하여 엄마는 집안의 맏며느리로써 1년에 11개의 제사를 지냈다. 말이 11개지 월평균 1건의 제사가 있었고 가끔 2개가 있던 달도 있었다. 제사는 결혼 후에 매월 돌아오는 양가의 가족 생일만큼 자주 찾아왔다. 눈을 감고도 만드는 제사 음식, 그때 여자의 나이는 겨우 초등학생이었다.




여자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제사 음식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엄마 혼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음식을 만드는 엄마가 안쓰러웠다. 여자는 결국 제사 음식 만들기에 투입되기로 스스로 결정했다. 엄마를 돕겠다는 오직 단 하나의 목적을 향해 여자는 전력투구했다. 물론 엄마 이외에 다른 며느리도 있었지만 각자의 인생은 다른 법이니 여자는 상관하지 않았다. 다만 억울한 마음은 있었다. 손녀인지 며느리인지 모르는 알쏭달쏭 한 포지션에서 노동을 하기에는 여자는 생각보다 어렸다.




지역마다 각 가정의 풍습마다 다른 음식이 올라가는데 여자의 집은 음식의 가짓수가 많아 더 힘들었다. 게다가 모든 음식은 당일 제조를 원칙으로 했다. 그래서 일찍부터 목욕을 하고 깔끔하게 머리를 묶고 정갈한 옷차림으로 신선한 재료 앞에 더 말끔한 모습으로 앉았다. 할머니로부터 제사가 싫다는 나쁜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면 안 된다는 세뇌를 수없이 들어야 했다. 그렇게 복종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올라가는 과일 대추 밤 황태포 가위로 문양을 만든 오징어포 떡 돼지 수육 삶은 닭과 삶은 문어 살짝 말린 생선 종류별로 스무 마리 정도 굽는다. 나물도 일곱가지 마른 홍합과 마른 문어를 작게 자르고 큰 대합과 소고기 곤약 두부가 들어가는 탕국도 있다. 튀김도 고구마 새우 쥐포 오징어  전도 육전 부추전 명태전을 비롯해 계절에 맞는 전이 최소 다섯 가지.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음식과 특히 장을 보고 재료 손질에만 며칠이 걸리는 정성에 다시 정성을 더한 제사상을 완성했다. 잔치 음식인지 제사 음식인지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음식의 가짓수도 양도.




남아선호사상이 극에 달했던 할머니 덕분에 여자와 엄마는 꼼짝없이 이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었다. 남자는 주방 문턱을 넘으면 안 된다나 뭐라나. 지금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지만 어린 여자는 그러려니 했다. 그냥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엄마를 같은 여자로서 안쓰러워했다. 그래서 환상의 콤비처럼 제사 음식에 발을 맞추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베테랑이 되었다. 나는 주로 전과 튀김 그리고 생선을 구웠다. 남자 팔뚝만 한 큰 생선을 굽는 커다란 전기그릴에 뒤집개를 양손에 하니씩 들고 부서지지 않도록 요령을 다해 뒤집었다. 일단 한 쪽 면을 익히고  잽싸게 전을 부친다. 전을 부치다가 다시 생선의 반대쪽을 익히러 밖으로 나갔다. 다 익은 생선위에는 간장과 참기름 그리고 깨소금으로 만들어진 양념을 발랐다. 왔다 갔다 종종거리며 여자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었다. 모든 음식을 마무리하면 마른 홍합과 딱딱하게 말린 문어를 새끼손톱만큼 작은 크기로 잘랐다. 일곱 가지 나물의 손질도 했다 콩나물 다듬기 같은 것 말이다.




글을 쓰면서도 숨이 차는 이 모든 것을 여자와 엄마는 잘도 해냈다. 그러고는 제기를 닦고 제기 위에 음식을 예쁘게 쌓아 올리는 것 제사가 끝나면 헛 제삿밥을 만들어 다시 식구들의 밥상을 차리는 것 그리고 나머지 정리와 설거지까지, 꼬박 하루의 시간을 완전히 제사에 저당 잡힌 채, 이것이 무엇을 위한 일인지도 모른 채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제사는 몸 안으로 물처럼 흡수되어 살아갔다.




올해 아빠가 돌아가시고 혼자 긴 명절을 보내기가 어려운 엄마를 여자가 1년 살기를 하는 제주도로 모셨다. 여자의 시댁에는 미리 다녀오고 양해를 구했다. 곧 명절인데 여자가 살던 서울도 아니고 엄마가 사는 부산도 아닌 제주에 있다. 오늘 아침, 여자와 엄마가 마주 앉아 밥을 먹다가 문득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엄마 근데, 우리가 명절에 제사 안 지내고 만나는 게 처음이네요?"

"그러네? 진짜 처음이네."


어색한 시간과 공간 여자와 엄마가 동시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 명절이 처음이라는 사실에 화들짝 놀랐다. 이런 날이 오다니 지금도 여자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인지하지 못했던 사실이 머릿속에 정확한 입력값이 되어 또박또박 찍혔다. 엄마가 스물한 살에 시집와서 여자가 마흔이 되었으니 그 긴 시간 동안 우리는 명절이라는 감옥에 갇혀있었다. 그러다 오늘에서야 드디어 해방의 날을 맞이한 것이다.




힘들었다. 좋아서 했던 일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다리가 퉁퉁 부어서 찌릿거리는 몸으로 마지막 설거지까지 끝내고 나면 몸살이 났다. 기름을 뒤집어쓰고 생선 냄새가 배어있는 옷을 얼른 세탁기에 집어넣고 시원하게 돌려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지긋지긋한 제사와 일상을 벗어나고 싶었다. 분명 여자만 그랬던 건 아니었을거다.  시절에는 그것이 당연했고 지금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속도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제사를 만들어가면 된다. 제사 음식을 맛있게 먹을 만큼 배를 굶주리는 시대도 아니고 노동을 달갑게 여기지 않을 지혜도 있기 때문이다.




제사보다 마음이 중요하다. 고인을 온전히 그리워하는 것, 우리가 받았던 사랑에 대한 추억을 가슴에 담아둔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보다 지금 나의 곁에 살아있는 사람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노동을 갈아 넣어 만든 제사 음식은 관연 누구를 위한 음식인지. 며느리라는 이름표를 가슴팍에 붙여두고 얼마나 많은 노동이 강요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명절 이후에는 왜 이혼율이 증가하고 사건 사고들이 뉴스를 장식할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배려 없는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어떤 분노를 야기하는지 이제라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정면으로 응시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물론 우리는 지금 진통의 한 가운데 살고 있지만 앞으로 여자의 딸들이 살아가는 시대에는 가볍고 산뜻한 형태의 제사가 새로운 모습으로 지내게 될 것 같다. 예를 들면 커피와 베이글 그리고 샐러드로 만들어진 브런치 제사상 김밥과 치킨으로 만든 봄맞이 피크닉 제사상 쌀국수에 고수가 가득 들어간 태국 음식 제사상 등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으로 차린 개성 가득한 제사상 말이다.

변화는 생각보다 빨리 다가오고 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파도의 높이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가장 멋진 모습으로 제사라는 파도 위에 올라타면 된다. 그리고 새로운 서퍼의 탄생을 축하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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