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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푸른색 Sep 29. 2023

명절에는 뭐 먹어요?


"우리 내일 뭐 먹을까? 그래도 명절인데."


어색한 대화가 오가는 식탁, 우리는 아직도 적응 중이다. 명절 음식을 만들지 않음에, 명절에 딱히 할 일이 없음에, 무엇보다 자유로운 해방감에.




지글지글 기름기가 가득한 음식을 한 상 가득 차려두고 먹고 치우고 먹고 치우고를 반복했던 그동안의 시간들이 있다. 사실 명절 음식을 만드는 당사자는 하루 종일 기름 냄새를 맡다 보니 사실 기름에 부친 음식에는 젓가락이 잘 가지 않는다. 극강의 매콤함으로 뼛속까지 스며든 기름의 느끼함을 한시라도 빨리 날려버리고 싶은 마음만 간절하다. 떡볶이나 정말 매운 닭발 같은 음식을 재빨리 투입하여 기름의 반대편에 우뚝 서는 것이다. 가족들은 맛있게 먹지만 눈으로만 봐도 느끼한 음식들. 나는 기쁘지 않고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행복한 것. 이것이야말로 평범한 명절의 풍경이었다.




엄마와 사위 그리고 나.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아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긴 연휴에 메뉴 고민은 필수였다. 적당히 사 먹기도 하고 밀키트도 이용하지만 명절 음식을 먹지 않는 명절이 아직도 낯설기만 하다. 엄마는 60 평생 나는 40 평생 우리는 명절 음식에 대한 고민이 처음이다. 기름 냄새가 현관문을 타고 나가 동네 이곳저곳을 날아다녀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보송하고 건조한 주방을 보며 통쾌하면서도 새로운 기분을 느꼈다. 시대가 변하고 있구나, 제사에 공을 들였던 우리 집마저 이런 순간을 맞이하다니.




그래서 잡채를 하기로 했다. 엄마는 어색했나 보다. 잔치 음식의 대명사, 재료도 여러 가지라 손질에 시간이 걸리는 만들기 귀찮은 잡채를 아침부터 하시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해왔던 몇십 가지의 음식 대신 가족들과 나눠먹을 단 하나의 음식을 만들어 보는 것. 하루 종일 종종거리며 손에 물을 묻히는 대신에 즐겁게 메뉴 고민을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새로운 시도라서 더욱 반갑다.




음식을 만들면서도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다른 시선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살아왔던 시간들은 어쩔 수 없었으나, 내 딸들이 우리의 딸들이 살아가는 시대가 조금은 남녀가 동등한 가족 구성원이기를 바란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날들이 오기를 그리하여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 앉는 그 시간들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양의 행복을 나누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명절 그잡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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