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의푸른색 Oct 24. 2023

나만 모르는 하얀 원피스의 진실

바다는 푸르지만 원피스는 하얀색이다. 바다를 찾는 그녀들의 옷차림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다. 디자인만 살짝 다를 뿐 모두가 하얗고 긴 원피스 차림이었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의 한 가운데 나는 호기심을 가득 안고 그녀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하얀 원피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비가 내리던 함덕 바닷가, 따끈한 해장국을 호로록 거리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가 와도 보이는 하얀 원피스의 그녀들. 모두가 긴 원피스를 비바람에 휘날리며 걷고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고개를 들 때마다 한 명 또 한 명.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녀들이 흘러갔다. 바람을 타고 비를 따라 그녀들의 행진은 계속 되었다.




오랜만에 찾은 월정리도 마찬가지였다. 월정리는 정말 하얀 원피스를 입은 그녀들이 모래알만큼 많다. 이럴 수가. 내가 모르는 하얀 원피스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이쯤 되면 그녀들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을 지경이다. 오른쪽 왼쪽 어디를 보아도 보이는 하얀 원피스의 그녀들을 따라가보자.




그녀들은 보통 바닷가에 위치한 작은 돌 위에 서 있다. 오늘의 그녀는 주로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이 보였고 바람에 흩날리는 긴 원피스는 흡사 하얀 커튼이 휘날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 뒤로 다리를 ㅅ자 모양으로 엉거주춤 서서 사진을 찍어 주는 그가 있다. 남자친구다. 그는 그녀의 전속 스냅 기사가 되어 기꺼이 오케이 컷을 만들어 간다. 찍고 확인하고 다시 찍고 확인하고 반복된 사진 촬영에도 지친 기색이 없다. 사랑의 힘이란 실로 위대하다. 그녀는 마지막 오케이 컷을 확인한 후, 다시 바위 위로 올라갔다.




훌러덩. 그녀는 갑자기 하얀 원피스를 벗기 시작했다. 원피스 안에는 다행히 또 다른 옷이 존재하고 있었다. 한 장소에서 두 가지 버젼의 사진을 찍고 싶었나 보다. 그렇지만 훌러덩 원피스를 벗는 순간. 나는 사실 좀 놀랐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이런 걸 꼰대라고 하는 거겠지? 그렇게 그녀의 두 번째 촬영은 다시 시작되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여름이 지나간 제주 바다에는 여전히 하얀 원피스의 그녀들이 있다. 포카리 스웨트 광고의 손예진처럼 푸른 바다의 청량감과 하얀 원피스의 청순함이 대명사가 되어서일까. 예쁜 시절의 추억을 사진으로 남길 열정과 체력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드레스 코드를 맞춘 듯한 그녀들의 나풀거리는 발걸음이 나비처럼 가볍다. 가만히 그녀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나도 그 시절의 그녀가 되는 듯한 착각이 든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더랬다.

내 앞에 놓인 식어가는 커피처럼 식어가는 인생이 되지 않기를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귤 가족의 패키지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