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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푸른색 Oct 26. 2023

아직도 에어컨 켜는데요?

10월이지만 따뜻한 남쪽나라 제주



매일이 다르다. 온도와 습도 바람에 실려오는 꽃의 향기까지 다채로운 하늘을 맞이한다.  그중에 단연 돋보이는 것은 먼 바다까지 보이는 탁 트인 시야와 따뜻한 온도다. 아침마다 오늘의 기온을 체크하고 아이들의 옷을 챙긴다. 더웠다가 쌀쌀했다가 종잡을 수 없는 제주의 날씨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이것은 따뜻한 남쪽나라가 주는 혜택이 아닐 수 없다.




서울에 있는 지인의 연락을 받았다.


"언니 서울은 지금 너무 추워요"


"아 정말요? 여기는 아직 낮에는 에어컨을 틀고 있어요"


"에어컨이요?"


"네"


같은 아파트에 살던 우리. 아파트 사이로 불어오는 칼바람이 매섭던 곳이었다. 가을에도 바람이 불면 초겨울만큼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웅크리고 아이들의 옷깃을 여미곤 했었다. 서울의 가을은 체감상으로는 2주쯤 되었던 것 같다. 이후로 몇 개월 동안은 겨울만 있는 느낌이었다. 봄,여름, 가을 잠깐, 그리고 겨~~~울.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지금은 가끔 눈도 내리고 겨울이면 불어오는 차가운 바닷바람 때문에 예전보다는 많이 추워졌지만 내가 어린 시절에는 2~3년에 눈이 한 번 내릴까 말까 했다. 그래서 눈이 오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 눈을 맞이했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눈이 오면 버스가 다니지 않았다. 체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그냥 집에 있었다. 그만큼 나의 어린시절은 눈과 추위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남편을 만나 서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신혼 첫해, 나는 서울의 추위를 경험하고는 솔직히 다시 부산으로 가고 싶었다. 집 밖으로 나갈 때면 부츠를 신고 두꺼운 패딩을 입고 모자도 쓰고 장갑까지. 눈만 보이고 걸어 다니는 패딩처럼 온몸을 꽁꽁 싸매고 다녔다. 뒤뚱거리며 무거운 겨울 장비를 껴입는 사람은 오직 나 한 사람뿐이었다. 스키장도 아닌데 말이다. 그만큼 나에게 추위란, 견딜 수 없는 따끔함이었다.




어제 제주의 기온은 24도였다. 아침저녁으로는 아직 쌀쌀하지만 유독 따뜻한 날씨였다.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따뜻한 봄 날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의 따사로움에 우리는 다시 에어컨을 틀었다.


"아니 10월인데 아직 이렇게 따뜻해?"


"부산은 항상 그랬어, 서울이 추워서 그렇지.

아직도 생각난다 나는 겨울이 너무 추워서 정신이 없었는데..."


"그런데 계속 이렇게 따뜻하다고?"


"그럼 여긴 따뜻한 남쪽나라잖아"


"이런 가을은 평생 처음이야"


반팔 티셔츠를 입은 남편도 적잖이 당황 한 모양이다.

내가 서울에서 연달아 내리는 눈을 보고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서울 토박이들은 항상 이렇게 이야기했다.


"눈 내리는 거 너무 싫고, 눈 녹을 때는 더 싫어. 아무런 감흥이 없어"




그래도 나에게는 여전히 반가운 눈. 평생을 눈을 그리워하며 자랐던 어린시절의 추억때문인지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눈이 반갑다. 따뜻한 온도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면서도 겨울의 눈이 그리워지는 걸 보니 나에게 눈이란 가끔 찾아오는 하얀 천사의 선물 같아서였을까.




오늘 아침도 따스함이 감돈다. 아이들의 옷가지를 챙기며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따뜻한 바람이 창문을 지나 집으로 들어온다. 바람이 주는 포근함이 거실을 한 바퀴 돌아 반대쪽 창문으로 나간다. 우리에게 남기고 간 훈기로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평생에 한 번뿐인 2023년 10월 26일 가을 아침에.




지금의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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