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집 최고의 화두는 대학이다. 수능 시험을 코앞에 둔 시점이라서가 아니다. 그럼 고3 수험생이 있는 집이냐. 그건 아니다. 초등학교 3학년과 미취학 1명이 있는 집에서 갑자기 왜 대학교 이야기를 할까.
평범했던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식기를 정리하고 있었다. 남편과 두 딸은 잠시 소파에 앉아서 쉬면서 어떤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주방에 있던 나는 귀만 쫑긋거리고 있었는데 몰입하며 보는 세 사람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그 프로그램은 바로, '대학 전쟁'
쿠팡 플레이에서 하고 있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서울대, 카이스트, 고대, 연대, 포항공대 그리고 하버드 학생들이 벌이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다. 과연 대학생들이 나와서 문제를 푸는 방송을 아이들이 재밌어할까? 의문이 들었지만 첫 회부터 눈길을 사로잡은 멋진 언니 오빠들의 모습에 아이들은 넋을 잃고 빠져들기 시작했다.
300개의 수학 문제를 능수능란하게 풀어내는 대학생들의 모습에 모두가 경의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차분하고 진지하게 자기만의 속도로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집중해서 풀어내는 모습은 어른이 봐도 참 멋있었다.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암산과 서로가 서로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특별했다.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해서 그 노력을 인정받은 학교에 갔을까. 아이들은 아직 잘 모르지만 이번 기회에 대학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그런데 저 학교가 좋은 학교에요?"
(이 글을 S대를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S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작은 포부를 처음 마음속에 품어본 초3의 이야기입니다.)
"그럼, 초중고 1등만 해야 갈 수 있을걸?"
"우와~"
"그럼 저는 힘들겠네요?"
"아니야 누구든지 열심히 하면 갈 수 있어!"
(열심히만 해서는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자라나는 새싹을 밟을 수가 없었습니다.)
"초중고 10년만 딱 집중해서 공부에 시간을 투자하는 거야, 꼭 좋은 대학이 아니어도 괜찮아.
하지만 좋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꾸준했던 노력을 모두가 인정하게 되는 거지."
계속해서 멋진 언니 오빠들이 300문제를 다시 검산하고 또다시 검산하며 문제를 정면으로 부딪혀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숨죽이고 화면을 응시했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 남편의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늦은 저녁시간에 온 전화라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난다. 남편의 지인이었는데 종종 지인의 점을 봐주셨던 분이었다. 우리의 임신 소식은 양가 부모님 정도만 알고 계셨는데 대뜸 "와이프 임신했지?" 하며 연락이 온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날 남편이 지었던 놀란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물론 다 믿지는 않지만 그분은 남편에게 아이가 셋 보인다고 했고(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죠..) 첫째는 예체능 쪽이라는 말과 신촌에 있는 학교를 가겠다는 말. 그리고 작명소에 가서 이름을 지어야 병치레가 없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신촌을 지날 때면 우스갯소리로 "신촌에 있는 대학을 가겠네~"라고 말하곤 했다. 말이 씨가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랬던 첫째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엄마! 저 S대 가고 싶어요!"
남편과 나는 마냥 귀여운 포부에 맞장구를 쳐줬다.
"그럼~엄마 아빠는 S대가 아니라서 너에게 강요할 수는 없지만 네가 가겠다면 엄마 아빠는 너무 응원하지!"
첫째가 갑자기 공부를 하러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첫째의 행동이 기특하기도 귀엽기도 했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하루 종일 책을 보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자유분방한 첫째 아이라 별다른 터치를 하지 않고 제주에서 건강하게 지내기만을 바라고 있다. 물론 학원이 없는 이곳의 환경에 유독 엄마만 불안감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렇게 아이는 처음으로 마음에 작은 불꽃을 품기 시작했다.
"엄마는 너의 인생은 너의 것이니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고 수학 문제 하나 더 풀라고 하지 않을 거야.
물론 기본적인 공부는 해야겠지만 지금처럼 책 많이 일고 엄마랑 같이 글 쓰고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너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