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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푸른색 Nov 28. 2023

오늘 안에 텐트 칠 수 있어요?

캠린이 커플의 고군분투기


눈앞에서 텐트를 치던 커플.

처음부터 그 커플을 바라보지 말았어야 했다.




캠핑을 좋아하지 않는다. 캠핑보다는 호텔과 리조트를 사랑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 된 것은 순전히 아빠 때문이다. 낚시를 좋아하셨던 아빠는 시간이 나면 우리 가족들을 데리고 섬으로 갔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섬으로 들어가 캠핑을 하며 낚시를 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캠핑이 나에게는 달가울 리가 없었다. 캠핑의 낭만은 잠깐이고 사실은 고생 그잡채가 아니던가.




다른 가족들이 있어도 텐트는 아빠와 내가 쳤다. 왜냐하면 텐트는 둘의 합이 맞아야 단시간에 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의 사인이 맞지 않으면 텐트 치는 시간은 무한정 늘어질 수 있다. 아빠는 오빠 대신 나와 텐트 치는 걸 선호했었고 자연스럽게 나는 텐트를 치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나는 어른이 되었고, 어느덧 전 국민이 캠핑을 사랑하게 되는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게 되었다.




남편은 캠핑을 좋아하지 않는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래도 가끔 글램핑을 가거나 당일치기 캠핑을 갔다. 아이들이 캠핑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다. 역시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 그랬던 우리가 제주에 와서는 자주 당일치기 캠핑을 즐긴다. 집에서 15분만 이동하면 바다와 산이 있는 작은 캠핑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보는 하늘이 참 예뻤다. 맥주 한 캔과 책 한 권으로 충만한 행복을 느낀다. 자연 속에 어우러지는 시간을 가지다 보니 캠핑을 싫어하던 남편도 어느덧 캠핑의 매력에 스며들었다.



별일 없이 날씨가 좋았던 주말 아침이었다. 우린 간단히 먹을 것을 챙겨 캠핑장으로 내려갔다. 캠핑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있었고 우리 옆으로 커플로 보이는 남녀가 있었다. 원터치 텐트를 치고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얼마 후 다른 커플이 와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커플끼리 놀러 왔나 봐 여보"


"그런가 보네"




원래 있던 커플은 잠시 자리를 비웠고 원터치 텐트 옆으로 방금 도착한 커플이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웃으며 텐트를 치던 젊은 남녀. 근데 뭔가 이상했다. 바람을 따라 펄럭거리는 텐트는 일어났다 누웠다만 반복할 뿐 20분이 넘도록 제자리였다. 느낌이 왔다. 저 남자 오늘 텐트 처음 치는 거다.


"여보 저 남자 어떡해 텐트 처음인가 봐"

"그러네 큰일났다. 이미 여자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어."


갑자기 윤종신의 '오르막길' 가사가 생각났다. "지금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원터치 텐트였으면 좋았을 텐데.. 폴대를 끼웠다 뺐다 하면서 우왕좌왕하는 남자를 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사건이 터졌다. 폴대가 튕겨 나와 여자의 다리를 강타하고 말았다. 여자는 악!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한 편의 드라마가 되어가는 커플들에게서 이제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깜짝 놀란 남자는 한 손으로 폴대를 잡고 여자에게 괜찮냐고 물어보기만 했다. 텐트를 내려놓고 달려와서 괜찮냐고 물어볼 줄 알았는데 남자는 다시 텐트를 치기에만 몰두하기 시작했다. 여자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행히 원터치 텐트 커플이 다시 돌아와 남자 둘이서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근데 여보 원터치 가져온 친구가 폴대를 끼울 수 있을까?"


"그러네 원터치를 가져올 때는 이유가 있었겠지"


남자 둘이서 텐트를 금방 칠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은 저 멀리 날아갔다. 그리고 텐트는 여전히 누웠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바람에 휘날리는 커다란 텐트가 마치 주유소 앞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팔이 긴 광고풍선 같았다.





'조금 있으면 어두워질 텐데 오늘 안에 텐트 칠 수 있을까?' 텐트 치는 커플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슬슬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짐 정리를 하는데 뒤에서 텐트는 포기해야겠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40분간의 사투는 그렇게 끝이 났다. 텐트 정리도 미뤄두고 그들은 의자에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폴대에 상처가 났던 여자도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그래, 포기해야 할 순간에 포기하는 것도 용기지!

그렇게 해피엔딩을 꿈꿨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우리는 짐 정리를 끝내고 남편은 차로 짐을 하나씩 옮기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나는 의자에 앉아서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순간 눈앞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분명 커다란 불기둥이었다. 토치를 손에 든 남자는 아까 텐트를 포기했던 그 남자였다. 바람이 심해서 플라스틱 카트를 바람막이 삼았나 보다. 그런데 화로와 너무 가까웠던 게 화근이었다. 부탄가스를 토치에 연결하고 가스를 조절했어야 했는데 아마 이 또한 처음이었나 보다. 불길은 무섭게 화르르 치솟아 옆에 있던 민트색 카트를 훑고 하늘로 사라졌다. 순식간이었다. 플라스틱 타는 냄새가 캠핑장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남자는 넋을 잃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짐을 옮기던 남편이 돌아와 어디서 플라스틱 타는 냄새가 난다고 했다. 나는 거의 실신 직전이었다. 그 남자의 머리가 몽땅 탈 뻔했기 때문이다. 큰불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커플들은 꺄르르 웃으며 다시 캠핑을 즐겼다. 작은 해프닝이 있었지만 언젠가는 이 또한 추억이 되겠지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때론 서툴고 어색할지 몰라도 처음을 수없이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달라진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게 아닐까.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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