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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얼려두는 냉장고

by 여름의푸른색


눈물은 무엇일까. 어떤 상태로 멈춰있다가 어떤 자극에 의해서 다시 밖으로 나오는 것일까. 그냥 나오면 좋겠는데 온몸을 감싸는 통증과 알 수 없는 감정의 회오리 속에서 터져버리는 걸까. 마음속에 꽁꽁 얼려두었던 눈물이 언제부터 다시 흐르기 시작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나는 울지 않기로 했다. 아빠의 병명과 여명이 6개월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동요하지 않았다. 내가 무너지면 나를 바라보는 아빠의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았다. 그래서 아빠 앞에서 절대 울지 않았다. 정말 눈물을 참기 힘들어지면 화장실로 달려가 수돗물을 틀어놓고 소리 없이 울었다. 아빠가 돌아가실 때까지 내가 아빠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평소처럼 아빠를 대하는 것, 슬픔으로 집안의 공기를 채우지 않는 것 딱 두 가지였다.




아빠는 어쩌면 서운했을지도 모르겠다. 매일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을 살아가는 내가, 꺼이꺼이 울며 아빠에게 안기지 않는 내가, 피도 눈물도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한가하게 울고 있을 시간이 내게는 없었기에 나는 무너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아픈 아빠가 나에게 의지할 수 있도록 단단한 딸이 되고 싶었나 보다. 말기 암 환자의 마음 깊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지만 아마 나보다 아빠가 더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다.




소리 내어 울지 않았던 눈물을 차곡차곡 마음속 냉장고에 얼려 두었다. 개수를 알 수 없는 얼음들을 안고서 제주에 내려왔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 덕분에 제주의 환경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바빴기에 눈물 얼음들을 잠시 잊고 살았다. 그러다 글을 쓰면서 다시 눈물 얼음의 존재를 자각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글쓰기 주제였던 "내가 글을 쓰는 이유"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심한 갈등을 경험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굳이 나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나 때문에 첫 수업의 분위기가 어두워지면 어떡하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써보자' 하며 용기가 생겼고 아빠가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나의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눈물 콧물 범벅에다 휘몰아치는 감정의 덩어리를 어찌할 수 없어 당황스러운 나의 모습을 직시하게 되었다. 나는 나를 돌볼 시간도 없이 일상으로 돌아와버렸던 것이다. 엄마의 직함을 가진 사람들은 누군가를 슬퍼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과 나의 표정을 보고 있는 두 딸의 눈망울을 보면 마냥 슬퍼하고 주저앉아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눈물 얼음은 얼려진 상태로 냉동 보관되고 있었기에 나는 차라리 냉동상태가 편하다고 느꼈다. 냉장고는 잘 돌아갔고 별일 없을 줄 알았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을 나는 너무 자만하고 있었다.




찰랑거리던 수위를 무시하고 얼음 얼리기에만 열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냉장고 전원은 꺼졌고 얼음은 녹기 시작했다. 한 번 녹기 시작한 얼음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기뻐도 슬퍼도 눈물이 터져 나왔다. 냉장고가 완전히 고장 나 버린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가슴속에 있던 눈물을 모두 녹여내기로 했다. 차갑고 딱딱한 형태로 꽉 채우고 있던 응어리들을 뜨거운 액체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왕 녹이기 시작한 거 다 털어내보자 굳은 결심도 했다. 서서히 녹아내린 슬픔의 잔여물이 휴지를 적실 때마다 내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나의 눈물을 마주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나는 이 시간의 따뜻함과 함께 했던 사람들의 눈동자를 잊지 않으려 한다.




자기 해방의 글쓰기 8회 차 마지막 글이다. 제주에서 만난 글쓰기 그리고 함께 시간을 나눈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나는 글을 쓰며 진심으로 해방감을 맛보았다. 힘들었지만 후련했고 따끔거렸지만 이제 제법 상처의 깊은 곳까지 들여다볼 용기가 생겼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눈물을 얼릴 냉장고가 필요하지 않다. 눈물이 흐르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더 이상 눈물에 익사하지 않도록 최대한 정성스럽게 나의 마음을 보살피려 한다.




1기와 2기, 나와 함께 시간을 나눠주었던 모든 사람을 기억한다. 그 속에서 주고받았던 눈빛과 표정 그리고 글과 말로 전해졌던 모든 마음이 나에게는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여있다. 눈물과 웃음 속에서 우리의 이야기가 방향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의 글에 진심을 담아주시는 소연 에디터님과 1기, 2기 멤버들의 목소리로 전해졌던 글에 대한 따스함을 간직하며 이 글을 마친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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