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알라. - 자존감 수업

나의 마음 바로 알고 스스로를 사랑하기

by jjjwy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참 많이 사용하는 사회다. 서점에만 가도 자존감과 관련된 책을 무더기로 찾을 수 있고, 방송에 출연한 연예인들도 자존감이 낮았던 과거를 고백하며 눈물짓는다. SNS에는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 10가지' 과 같은 제목의 게시물이 수많은 '하트'를 받고, 부족할 데 없어보이는 내 친구는 자존감이 낮은 게 고민이라며 털어놓는다.


공식적인 신분이나 계급은 사라졌지만 자본이 사람들을 보이지 않는 선으로 계급화하고, 초연결이 가능해지면서 타인의 삶을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현대에서는 '나' 스스로의 가치를 지키기 어렵다.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정신과 치료 환자 수만 봐도 물질의 풍요와 정신의 풍요는 결코 동반자가 아니구나 싶다.


나 역시 낮은 자존감의 소유자(였)다. 평범한 직장에 다니고 있고, 평범한 취미생활을 누리고, 무척 많지는 않지만 나와 잘 맞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특출나게 못난 외모는 아니(남들 눈에는 다를 수도 있다)지만, 나의 마음은 늘상 낮은 고도에 머물며 높은 곳을 우러러보곤 했다.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완벽할까"하는 감탄과 동시에, 그렇지 못한 자신을 비난하는 행위를 지속해서 해왔다. 그것이 나 스스로를 더 나은 존재가 되도록 채찍질했다면 좋았겠지만, 딱히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자존감이 낮다는 건 단순히 자신감이 낮다는 것과는 다르다. 나의 자신감은 A라는 일을 할 땐 높고, B라는 일을 할 땐 낮을 수 있다. 그러나 자존감은 아니다. 자존감은 나 스스로를 떠받치는 기둥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버텨내는 게 신기한 일이다.


20대의 많은 시간을 섭식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리며 보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물을 처방받기도 했고, 심리상담소에서 상담을 받아보기도 했다. 나아지는 것 같은 순간들이 많았다. "아, 이제는 정말 괜찮겠구나." 라고 방심하는 순간, 그래서 내 마음 돌보기를 잠시 소홀히 하는 순간 다시 시작이었다. 그렇게 내 자신을 괴롭히는 게 일상이었다. 자존감이 멀쩡할 리 없었다.


여느 때처럼 폭식으로 인해 내 자신을 괴롭혔던 어느 날, 이혜성 아나운서의 유튜브채널에서 한 동영상을 보았다. 그 역시 다이어트강박과 낮은 자존감으로 고통받던 시간이 길었다고 한다. 고통은 모두 낮은 자존감과 연결되어 있었고, 그래서 자존감을 케어하기 위한 책들을 여럿 읽었으며, 그 중에서 언급되었던 책이 바로 <자존감 수업>이었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다. 구원받고 싶어서. 책 하나로 무슨 구원이냐고. 힘든 사람에겐 떨어지는 낙엽도 구원처럼 붙잡고 싶어진다. 구덩이에 빠져보면 정말로 그렇게 된다.


책을 읽고 나서의 총평은... 나의 문제를 인식할 수 있어서, 자존감이 낮은 이유를 깨달을 수 있어서, 내가 단순히 '멘탈이 약했'던 게 아니라는 걸 알아서,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할지 알게 되어서, 정말 읽기 잘한 것 같다.



좋았던 문장들


스스로를 불쌍한 존재로 인식하면서 자신을 위로하고 위로받는 생활에 갇혀버린다.

-> 나는 내 스스로가 너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를 이렇게 만들어버린 과거의 선택들을 상기하며, 그 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했다. 과거의 나로 인해 현재의 내가 불쌍하다는 동정을 했다. 스스로를 술로 위로했다. 그래서 위로를 받았냐 하면, 그 순간에만. 결국엔 나를 파괴하는 행위로 항상 끝을 맺었으니까.


문제는 '사랑받음'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데에서 온다.

-> 나 역시 사랑받고 싶었다. 내 스스로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니까, 다른 사람들에게서 받는 사랑으로 내 존재를 인정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유독 예민했고,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땐 우울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받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반면, 원치 '않는' 것을 정해놓고 그곳으로 '안' 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좀 복잡하다.

-> "나는 공부 잘하는 사람이 될 거야. 그게 멋있으니까." 하고 생각하는 것과 "나는 공부 못하는 사람이 되면 안 돼. 한심하니까."라고 생각하는 건 동기부여 자체가 다르다는 것. 긍정적인 의지를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사랑받지 못하면 안 돼."가 아니라 "사랑받으면 좋지." 하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자신의 가치란 반드시 누구에게 인정받아야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먼저 '내'가 '나'를 인정해야, 사랑해야 다른 이로부터의 인정과 사랑을 당당하고 열등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터.


과정에 집중한다는 건 결국 오늘 할 일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일이다.

-> '카르페 디엠'. 결국 내가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건 현재밖에 없다. 과거를 후회하면 무얼하나. 미래를 걱정하면 무얼하나. 지금 당장 이 순간에 집중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옳은 결정, 후회 없는 결정을 하겠다며 차일피일 미룬다. 결정을 잘하는 사람들은 결정을 언제까지 해야할지 잘 안다. (중략) 세상에 '옳은 결정'이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중략) 결정한 후에 어떻게(how)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결정을 잘하는 사람들은 결정하기까지 에너지를 많이 낭비하지 않는다.

-> 나를 궤뚫어보는 말 같았다. 난 정말 결정을 잘 하지 못한다. 항상 여러 개의 선택지 중에서 계속 고민하고, '이제는 정말 결정해야 해'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 결정을 미룬다. 자신이 없으니까 그랬던 것 같다. A라는 선택지로 가서 불행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B를 선택했다가 A 할걸, 하고 후회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한마디로 '지금의 나'로서는 내다볼수도, 확신할 수도 없는 것들을 내내 생각하느라 시간들을 허비했다.

->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결정을 최선의 결정으로 만드는 것은 나의 역할이다. 현재의 내가 할 일이다. 선택하자. 결정하자. 고민해봤자 답은 나오지 않는다. 고민해서 답이 나올 문제면 애초에 결정장애에 걸리지도 않았다.


감정으로 느끼던 것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게 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 나는 한심하거나, 도태되거나, 나약한 사람이 아니라 아파서 그랬던 것이다. 뇌가 그렇게 뒤틀려서 그랬던 것이다. 그러니까 나 스스로를 '나약하다'며 깎아내리는 짓은 이제 그만 해야겠다. 이젠 나를 돌봐주어야겠다. 아픈 사람을 간병인이 간병하듯이. 내 스스로가 나의 간병인이 되어야겠다. 그렇지만 이 말은 자기연민에 빠지겠다는 말은 아니다. 나를 더 잘 이해하고, 나의 행동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겠다는 뜻이다.


자신이 나쁜 원단에 속하는 분노, 슬픔, 자기 연민 같은 옷을 입고 있다 하더라도 빈티지로 멋지게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행복과 기쁨처럼 화려한 옷을 입고 있더라도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 입었다면 결코 좋은 패션이라 할 수 없다.

->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다른 친구들에 비해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편이었다. 그러한 성격도 타고나는 게 크다고 했다. 남들에 비해 우울감을 잘 느끼도록 태어났다.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나 스스로를 케어해도, 분명히 우울하고 힘든 시간이 올 것이다. 그럴 때 절대로, 구덩이에 빠지지 말 것. 그 감정을 빈티지로 소화시킬 것.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잘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 테니까. 타인에 대한 공감 같은 것들. 우울함으로 인해 매력없는 사람이 아니라, 우울감을 멋지게 소화하고 또 승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


감정은 눈앞에 펼쳐진 파도와 같다. 파도에 휩쓸릴 게 아니라 그 파도를 탈 준비를 해야 한다.

-> 내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다. 여러 가지 외부 요인들이 있을지라도, 결국에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끼는지에 따라 나의 감정은 달라진다. 계속해서 노력을 해야 한다. 성공적인 파도타기를 위해서.


과거에 느낀 감정은 어땠고, 현재는 어떻게 느끼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 같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분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거기에 하나 더해, 이 모든 게 내가 느끼는 감정일 뿐이라는 것도 확인해야 한다.

-> 모든 것은 감정이다. 세상이 끝날 것처럼 우울해도 그냥 감정일 뿐이다. 단순히 그 감정으로 인해서 내가 죽지는 않는다. 다른 누군가도 아닌 '나'의 감정이다. 감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받아들이자. 고통을 회피하지 말자. 당연한 일이니까. 그렇게 받아들이고, 이겨내면 된다.


지금 상황이 문제라기보다는 그 일이 진행되고 진행돼서 파국으로 이어질까봐 미리 걱정하는 게 문제다.

-> 사소한 일로 인해서 파국까지 걱정하는 것.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그 순간의 일일 뿐이다. 그로 인해서 내가 죽거나, 파산하거나,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림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쁜 습관을 완전히 끊어내려면, 끊기를 간절히 바라야 한다. (중략) 나에게 만족하는 내가 되면 행복해진다고 믿어야 한다. 그 사실을 믿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야 한다.

-> 나는 간절히, 나를 힘들게 했던 것들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마음 문제를 풀 때, 사람들은 원인 분석에 지나친 에너지를 낭비하느라 문제 해결을 위해 남겨놓은 에너지가 없다.

->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힘든 거지?'라고 생각하는 것 따위는 관둬야겠다. 그 에너지를 더 행복한 현재를 만들기 위해 투자할 것이다. 생각해봤자 답은 안 나오니까. 과거를 후회하고 우울해하며 자기연민과 자기혐오에 빠지는 것 따위는 그만할 것이다. 나는 더 행복한 내가 되겠다.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 속 유명한 구절이 있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남들의 사랑만이 사랑의 전부가 아니다. 그리고 그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에는 한계도, 제약도 없다. 그냥 사랑하면 된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남들의 사랑이 건강하게 다가올 리 없다. 나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한, 그것은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다.


보아도 그랬지. "나는 나인 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어." 나는 이 세상 속 One and Only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나 스스로를 사랑할 이유는 충분하다.


내가 그동안 힘들었던 이유를 바로 알고,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바로 알았으니, 이제 실천할 때다.


다시 힘들어지는 순간이 오면 내가 쓴 이 글을 다시금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분명 그런 날은 올 것이다. 그럴 때마다 다시 이겨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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